1865년 4월 9일, 미국 버지니아주 애퍼매톡스에서 북부 연방군이 남부 연합군을 포위하자 로버트 E. 리 장군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복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장군은 한 참모 장교를 적진으로 보내 율리시스 S. 그랜트 중장과 만날 때까지 휴전을 요청하도록 했다. 무사히 적진을 통과하기 위해 남군의 R.M. 심즈 대위는 둘레에 술 장식이 달리고 하단에 빨간색 가느다란 줄무늬 세 개가 그어져 있는 흰 행주를 들고 갔다. 1865년 4월, 남부 연합군의 로버트 E. 리 장군이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에서 북부 연방군의 율리시스 S. 그랜트 중장에게 항복한 사건은 신문 기사와 여러 회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회화 중에는 장 레옹 제롬 페리스의 작품 <우리에게 평화를 달라>도 있다.
‘연합군의 휴전기’로 알려진 이 행주의 절반은 현재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 미국사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돼 <미국 대통령제>라는 전시의 일부로 공개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색이 바랜 이 유물은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중대하다고 손꼽히는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깃발은 국보예요. 미국 역사에서 끔찍한 유혈 사태를 끝내고 대화의 물꼬를 트게 만든 깃발이죠.” 깃발을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북아메리카 기학 협회’ 소속 기학 자문 위원인 제임스 페리건은 말한다.
왜 하필 행주였을까? ‘백기’라고도 불리는 휴전기는 역사를 통틀어 수건이나 이불, 베갯잇 같은 가정용품으로 만들어지곤 했다. “세상 어느 군대도 이 깃발을 공식적으로 지급하지 않습니다. 사기를 떨어뜨리니까요.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더 많은 무기와 병력을 가진 적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그게 뭐든 찾아서 들고 나가야 하죠.” 페리건은 말한다. 휴전을 이끈 당시의 휴전기. 사실은 평범한 가정용품인 행주였다.
이 경우에도 심즈 대위가 들었던 행주 덕분에 리 장군은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에서 그랜트 중장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만날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리 장군과 남부 연합군은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순간을 남북 전쟁의 실질적인 종결 시점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과 닷 새 후, 당대 배우 존 윌크스 부스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총격해 암살한 것이다. 그 후로 남군과 북군 간의 전투는 약 1년 반 동안 지속됐고 결국 1866년 8월,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공식적인 종전을 선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전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