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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된 중앙 첨탑 사진

글 : 안젤라 세라토레 사진 :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건축 위원회 재단

100년이 넘는 작업 끝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중앙 첨탑이 완성됐다. 19세기 거장의 설계를 21세기 기술로 어떻게 구현해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거리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서거 100주기를 맞은 올해 마침내 이 바실리카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회 측과 바르셀로나 당국은 1년 동안 이어질 기념행사를 계획했다. 새롭게 완성된 중앙 첨탑은 꼭대기가 유리와 세라믹으로 덮인 빛나는 강철 십자가로 장식돼 있으며 이 항구 도시 위로 약 150m 이상의 높이로 솟아 있다. 이로써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독일의 울름 대성당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회가 됐고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완결성이 더해졌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대성당이 완공되기까지 수세기가 걸렸고 그 과정에서 건축 양식도 계속 변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기발한 바실리카는 세세한 작업 하나하나가 가우디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그 대신 건축가의 의도를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한 층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다.

하지만 한 세기 동안 그 설계와 의미가 변화해온 건축물을 완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건축물은 종교적 헌신의 상징에서 이제는 바르셀로나의 상징이 됐다. 또한 가우디의 사후에도 계속된 이 건축 작업에서 가우디 본인의 구상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가우디의 작업을 완성하는 과정은 그의 구상과 현대적인 자재 사이에서 복잡한 조율을 거치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물은 건축물을 통해 표현한 신앙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수난의 파사드’는 남서쪽을 향하고 있다. 이 유명한 대성당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위로 우뚝 솟아 있으며 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실현이 불투명해진 가우디의 구상

“가우디가 살아 있는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완공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이 건축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책을 쓴 역사학자 마이클 오드는 설명한다.

사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처음 구상한 이는 가우디가 아니라 1872년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했던 바르셀로나의 한 서점 주인이었다. 그 서점 주인은 이 건축물이 국가나 바티칸 시국의 자금이 아닌 전적으로 개인 기부를 통해 건설되기를 원했다. 최초의 설계는 미국 뉴욕주의 성 패트릭 대성당이나 19세기 후반에 재건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궁전처럼 네오고딕 양식의 공중 부벽과 석조 조각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1880년대 초에 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가우디는 자신만의 화려하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설계를 변경했고 약 10년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목표였다.

19세기 후반 바르셀로나에서는 산업계 거물들이 화려한 도시 주택을 의뢰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고 그중 많은 건물을 가우디가 설계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대한 규모의 바실리카를 짓는 데 자금을 대는 일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오드는 “그들은 신앙심이 있었지만 그렇게 야심 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꾸준히 제공할 만큼 독실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결국 기부금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1926년, 가우디가 고해 성사를 하러 가던 길에 전차에 치여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때 성당은 일부만 완성된 상태였다. 가우디의 작업실에는 그의 구상 중 나머지 부분을 담은 모형과 도면, 석고 주형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10년 뒤 스페인 내전이 막 시작될 즈음에 무정부주의자들이 지하 성당에 불을 지르면서 그곳에 보관돼 있던 가우디의 자료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후 가우디의 제자들이 남은 기록을 최대한 복원했지만 최종 완성본에 대한 명확한 지침은 여전히 불분명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공사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고 여러 예술가와 건축가가 선봉에 서서 가우디의 독특한 양식과 현대적인 미학 요소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며 작업을 이어갔다.
 
지난 2월부터 이 성당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십자가가 빛을 발하고 있다.
중앙 첨탑의 완공

중앙 첨탑은 언제나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구상하며 세운 거대한 계획의 일부였다. 그의 상징적인 설계에 따르면 이 성당에는 총 18개의 첨탑이 세워질 예정이었다. 그중 12개는 사도들에게, 네 개는 복음서 저자들에게, 하나는 성모 마리아에게, 그리고 가장 높은 첨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정하는 것이었다.

지난 2월 말 그리스도 첨탑에 꼭대기 장식이 설치됐다. 교회의 중앙에서 돌로 된 산처럼 솟아오른 이 첨탑은 주변 탑들보다 의도적으로 높게 만들어졌지만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보다는 약간 낮게 설계됐다. 이는 인간의 작품이 결코 신의 창조물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가우디의 겸허한 철학을 드러낸 건축적 표현이었다. 이 첨탑을 세우는 일은 기술적으로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성당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첨탑을 설치하는 과정에는 “석재와 강철을 결합한 장력식 석재 건축 시스템”이 사용됐는데 이는 돌 패널 사이로 강철 케이블을 삽입하는 현대적인 건축 방식이다. 그 결과 첨탑은 바람을 견딜 만큼 견고하면서도 가우디가 처음 설계한 기초 구조가 충분히 떠받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구조를 갖게 됐다.

그리스도 첨탑의 정상에는 새로 설치된 십자가가 놓여 있다.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의 폭이 약 13m에 이르는 이 십자가는 스테인리스강 틀에 유리 패널을 끼우고 유약 처리된 흰색 세라믹을 덮어 만들어졌다. 이 십자가는 독일에서 제작됐지만 조립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내부에서 정교하게 진행됐다. 십자가 내부에 설치된 조명은 밤이면 빛을 발하는데 그 덕에 성당의 가장 높은 지점은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보이는 빛나는 상징물이 됐다. 이 십자가는 단단한 일체형 구조가 아닌 섬세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유리로 된 면이 낮에 햇빛을 받아 탑의 옅은 색 석재 위로 빛을 분산시킨다.

오드에 따르면 이 첨탑에는 분명 현대적인 자재가 사용됐지만 개념 자체는 여전히 건축가의 기존 구상에 충실하다. 가우디는 이 성당을 자연과 빛, 신앙이 결합된 공간으로 구상했는데 유리와 강철로 만든 십자가는 21세기의 공학 기술을 이용해 그 이상을 계승한다.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 만들어진 첨탑 중 가장 높은 곳에 놓인 이 십자가는 가우디가 100여 년 전 구상했던 하나의 수직 축을 완성한다. 즉, 어두운 신도석 바닥에서 시작해 나무처럼 뻗어 나가는 돌기둥 사이를 지나 상징적인 탑들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마침내 바르셀로나의 마천루 위로 높이 솟아 있는 빛나는 십자가에 이르는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그리스도 첨탑에 설치된, 사방으로 뻗은 십자가에는 360˚로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대성당 공사

관계자들은 2026년에 가우디의 계획이 완성될 것이라고 알리고 있지만 대성당의 한 면 전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거대한 파사드(건축물에서 주출입구가 있는 면) 세 개 중 가우디가 생전에 대부분 완성한 것은 ‘탄생의 파사드’뿐이다. 이곳에는 놀랄 만큼 세밀한 장식들이 차고 넘친다. 거북이들이 기둥을 받치고 있고 천사들이 나뭇잎에서 쏟아져 내려오며 성가족이 조각된 수많은 동식물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이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매일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카레르 데 마요르카 거리를 따라 줄을 선다. 이들은 가우디의 가장 유명한 걸작을 담은 수많은 이미지에 이끌려 바르셀로나를 찾는다.

가우디가 사망하고 수십 년 뒤 공사가 시작돼 20세기 말에 완성된 ‘수난의 파사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곳의 야위고 각진 조각상들은 예술가 호세프 마리아 수비라치스가 만든 것인데 많은 비평가들은 이 현대적인 스타일이 가우디 특유의 유기적이고 유려한 형태와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가우디가 원했을 모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원했는지는 사실 아무도 정확히 모르죠.” 오드는 말한다. 어쩌면 가우디 자신조차도 확실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종종 종이 위의 설계도보다 머릿속에 설계의 부분 부분을 담아두고 작업을 즉흥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매달린 체인 모형과 추가 달린 줄을 이용해 이상적인 곡선과 모양을 찾아가며 계속해서 형태를 조정하고 다듬었다.

세 번째 파사드인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수년간 미완성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가우디는 인류가 신을 향해 올라가는 길의 상징으로 성당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웅장한 행렬용 경사로를 구상했다.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하려면 도시의 한 블록 전체를 철거해야 하는 탓에 그곳에 사는 약 3000명의 주민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에 바르셀로나 시의회는 지금까지 해당 공사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자금 부족으로 인해 성당의 건설이 더디게 진행됐지만 오늘날은 풍부한 재정 덕분에 공사가 탄력을 받고 있다. 입장권 판매만으로 해마다 수억 유로의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이 성당을 찾는 연간 방문객 수가 450만 명을 넘으면서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기념물이 됐다. 이러한 수입 덕분에 성당을 관리하는 재단은 21세기에 들어 공사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고 여기에 컴퓨터 모형 및 디지털 제작 기술의 도움을 받아 가우디의 복잡한 기하학적 설계를 실제로 건설 가능한 구조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스페인 정부가 올해 가우디의 삶과 업적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가톨릭교회 측은 이 건축가를 성인으로 추대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은 2003년 이 예술가의 시성 절차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지지자들은 가우디가 깊은 신앙심을 보인 점, 한 여성이 시력을 되찾았다는 등 그의 중재 기도로 행해진 기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자체가 돌로 이뤄진 거대한 교리서와 같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전체가 완공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은 2034년이지만 이 일정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성당이 완공 선언을 서두르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오드는 가우디가 남긴 한 유명한 말을 떠올린다. 그 건축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는 바로 신을 가리키며 그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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