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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도시를 발굴하다

글 : 알리제 코하리 사진 : 사라 카롱

5000년 전, 오늘날의 파키스탄 지역에 있던 인더스 문명의 도시 모헨조다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고대 대도시에 속했다. 현재 취약한 상태에 놓인 이 유적을 탐사하는 고고학자들은 무엇이 불규칙하게 뻗은 이 도시를 경이로운 도시 공학의 결정체로 만들었는지 다시금 명확하게 규명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모헨조다로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자랑하는 도시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다른 고대 문명은 하늘과 맞닿을 높이로 피라미드와 지구라트(신전 탑)를 세우고 사원과 궁전을 올렸으며 신성과 왕권을 상징하는 무덤을 황금으로 장식한 반면 BC 2600년에서 1900년 사이에 부상했다가 몰락한 인더스 문명은 화장실과 배수구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청동기 유적 위에 얹혀 있는 돔 모양의 사리탑은 모헨조다로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축물임에 틀림없지만 사실은 수백 년 뒤 이 지역에 불교가 융성했을 때 세워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류 최초의 공동체 제례용 수조로 추정되는 대목욕장 역시 인상적인 방수 기술이 적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이라크에 있는 우르나 이집트에 있는 멤피스처럼 비슷한 규모와 위상을 가진 다른 유적지는 범접하기 힘든 위압감을 풍기지만 현재 파키스탄 신드주에 자리한 모헨조다로는 경계심을 확 누그러뜨릴 만큼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모헨조다로에 인접한 파키스탄 신드주 수쿠르 지구에 살고 있는 카졸 바이(27)는 반짝이는 팔찌를 양팔에 겹겹이 둘러 화려하게 치장했다.
이 도시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려면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아침, 내가 이렇게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채 실눈을 뜨고 고대의 변소를 응시하며 수천 년 전 오수가 이동했을 경로를 되짚어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고 주둥이가 지면 가장자리에 닿을 정도의 깊이로 파묻힌 항아리가 바로 변소였는데 ‘변소를 비우려면’ 이 항아리에 물을 부어야 했다. 그러면 오수가 땅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항아리 밖으로 넘치는 오수는 집밖에 있는 정화조나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원리였다. 당대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나일강이나 티그리스강 또는 유프라테스강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썼던 반면 모헨조다로의 경우 집 안에 우물이 있는 가구가 많았다. 항아리 변소에 인접한 방에는 목욕 공간이 있었으며 배수가 잘 되도록 바닥이 약간 경사져 있었다. 이렇게 한 가정에서 나온 오수가 다수의 집에서 배출된 오수와 합쳐져 소용돌이치며 복개 배수구를 통해 도시 외곽의 평야로 빠져나갔다. 당시 모헨조다로의 주민 수는 최대 1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헨조다로의 공공 기반 시설은 그로부터 2000년 후 로마가 하수도와 수도교를 건설하기 전까지 지구상에서 필적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모헨조다로가 맨 처음 발굴됐을 당시 일부 욕실 바닥은 맨발로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 때문에 반들반들한 상태였다. 바닥의 다른 부분에는 짙은 붉은색 침전물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갈라진 발뒤꿈치에 바른 기름 성분 찌꺼기나 땀이 눌어붙은 흔적이었다. 배수구에서는 점토로 만든 장난감이 잇달아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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