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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으로 가는 유럽

전쟁을 불식시키겠다는 바람으로 결성된 유럽연합은 고유의 의회와 화폐를 제정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공동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40여 유럽국가들이 점점 더 긴밀히 연결됨에 따라 통합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으며, 브뤼셀의 EU 관료들과 이들이 계속해서 내놓는 규칙과 규정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에서는 유럽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 간의 싸움이 중요한 정치적 현안이다. 스티브 서번이라는 평범한 청과상이 국민적 영웅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곱슬머리에 오른쪽 귀에는 금귀고리를 한 36세의 스티브는 옛날부터 조선(造船)업으로 유명한 선덜랜드라는 마을에서 청과상을 하는데 파운드 단위로 바나나를 팔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EU 지침 80-181-EEC에 따라 EU 회원국들은 가공되지 않은 농산물을 팔 때 리터나 킬로그램 등 미터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티브는 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영국 신문들은 그를 '미터법의 순교자'라고 부르며 대서특필했고, 유럽 통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명분을 내세우는 데 그의 사례를 이용했다. 스티브의 자그마한 가게는 브뤼셀 스프라우트(양배추의 일종)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산 부추, 스페인산 후추, 프랑스산 사과, 영국산 시금치 등을 취급하는 사실상 청과물의 EU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미터법의 순교자'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이런 호칭도 그렇거니와 자신의 사례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치에는 관심 없어요. 투표한 적도 없는 걸요. 난 미터법에 반대하지 않아요. 만약 가게에 찾아온 손님이 '아저씨, 바나나 1kg 주세요'라고 한다면 그렇게 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그런 식으로 달라고 하진 않거든요." EU 규정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팔 수 있게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 어떤 이들은 EU 탈퇴를 원하지만 EU에 가입하고 싶어하는 나라들도 많다. 현재 12개국이 정식으로 가입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고, 터키도 가입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는 아직 EU가 요구하는 인권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신청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신청국들은 철의 장막 뒤에서 공산주의 국가로 반세기를 보냈다. 따라서 EU 가입이 민주정부와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핀란드와 마주 보고 있는 호수와 숲의 나라 에스토니아에서는 이미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에스토니아는 모스크바로 목재·세금·징집병들을 거의 아무런 대가 없이 보내던 구소련의 한 공화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140만 에스토니아인들이 열성적으로 자본주의를 수용한 결과, 수도 탈린에는 10여 개의 카지노에서 나오는 네온사인 불빛이 밤새 환하게 밝혀져 있다. 나는 라우테리가(街)에 있는 카지노 빅토리아에 큰 맘 먹고 들어가봤다. 붉은 양탄자가 깔린 궁궐처럼 화려한 실내에는 턱시도 차림의 바카라(카드 도박의 일종) 딜러와 번쩍거리는 미니스커트에 망사스타킹을 신은 웨이트리스들이 있었다. 딜러는 에스토니아어·러시아어·핀란드어·독일어를 두루 구사했다. 운이 따르지 않았던 나는 수북이 쌓여 있던 에스토니아 화폐인 크룬을 룰렛 테이블에서 모두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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