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인들
불교 전통을 보존하느라 애쓰면서도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티베트인들의 변화된 삶을 조명해본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노르부 초덴은 사다리에 올라가 새로 지은 커다란 통나무집에 니스를 칠하고 있는 딸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비록 몇 십 년 간이나 티베트를 점령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쫓아낼 수는 없어도 이런 현실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법은 터득했다. "그들이 우리를 도와줄 리 만무하다는 걸 알게 되면 미래는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죠." 그의 말이다.노르부는 가축을 치는 목자에서 중간상인으로 변신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개척했다. 중국 치하에 사는 500만 티베트인의 상당수와 마찬가지로 그도 48년 생애 대부분을 티베트 동부에서 보냈다. 털이 많은 야크떼를 고산지대 목초지로 몰고 다니고 야크 고기와 버터로 연명하며 성긴 검정 야크털로 짠 천막 안에서 혹독한 겨울을 한 해 한 해 힘겹게 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고된 일에서 손을 떼고 물건을 사고 파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다.
중국에서는 중간상인이 역사가 길고 잘 알려져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의 대부분은 중간상인의 중요한 경제적 역할에 대한 개념이 없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인접한 쓰촨성(四川省)에서 중국인들이 찾아와 노르부를 포함한 이곳 유목민들이 여가 시간에 땅에서 채취한 쭈글쭈글한 동충하초를 사가곤 했다. 그러고는 포자가 유충에 침입해 자란 버섯류인 이 약재를 한약방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노르부는 중간상인으로 변신하기 전에는 이런 현실을 그저 부러워하기만 했다.
그런데 점차 노르부는 중국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티베트인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으며, 급기야는 자신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전에 개인의 부가 더 이상 사회악이 아니라고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이미 1980년대에 덩샤오핑이 부자가 되는 것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2년 전, 노르부는 두려웠지만 희망을 갖고 가축들을 다 팔아치운 뒤 동충하초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노르부는 쓰촨성의 중심지인 청두(成都)의 한약방들로부터 1kg에 최고 1500달러까지 받고 있다. 모험을 감행한 대가를 충분히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부자로 평가하는데, 실제로 그에게서는 신흥 부자의 면모가 엿보인다. 그와 아내의 손가락과 손목, 목, 그리고 길고 매끈한 검은 머리에 치장한 산호와 터키석이 박힌 장신구라든가, 번쩍이는 구리 냄비들이 있는 넉넉한 통나무 벽 부엌, 안방에 걸려 있는 화창한 정경의 산을 그린 벽화 등이 그것이다. 양쪽 뺨이 발그스름한 그의 아내는 티베트 전통 의상으로 남녀 모두가 여전히 즐겨 입는 추바(모직 가운)를 입지만 키가 크고 강인해 보이는 노르부는 티베트인들이 '중국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짙은 색 바지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바꿨다.
그래도 노르부가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집 건너편 비포장 도로변에 있는 법당이나 스투파(돔형이나 피라미드형의 불탑) 복원사업에 자기 재산 일부를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도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처럼 항상 불교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생각하며, 복을 받고 궁극적으로는 환생을 보장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의식에 참여한다. 그리고 여느 불교 국가들처럼 티베트에서도 신자들이 복을 받기 위해 스투파를 세우고 그곳에 사리를 넣어둔다. 노르부가 복원한 법당은 1966년부터 10년 간 계속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파괴한 수천 개의 불교 건축물들 중 하나다. 문화대혁명 말기에는 극단적인 청년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을 학살했으며, 그 중에는 티베트인도 수만 명 포함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