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이들은 미국시민으로서 자신들의 나라를 사랑하며, 또한 자신들의 고향인 이 섬을 사랑한다. 사실상의 미국 식민지가 된 지도 50년.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자국의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본토로 이주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 선거권이 없으며 연방 소득세도 내지 않는다. 또한 미 의회에 대표를 파견하고 있지만 표결권은 없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방, 외교 및 사회복지는 미 정부가 맡고 있는데 푸에르토리코 주민 중 거의 60%가 복지수당 수혜 대상자다. 그 밖의 내정은 푸에르토리코 자치정부 관할이다. 이런 상황이 50년간 계속돼왔지만 대미 관계를 둘러싼 유권자들의 뜨거운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선거 때마다 투표율은 평균 약 85%를 기록한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투표율은 정권이 바뀔 경우 푸에르토리코 전체 일자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많은 정부 관련 일자리가 새 집권당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현재 자치령 유지를 원하는 정당의 지지도가 미국의 51번째 주로 승격할 것을 주장하는 정당의 지지도를 웃돌고 있다. 한편 완전 독립을 원하는 유권자는 약 5%다. 대미 관계에 대한 논쟁은 엉뚱한 곳으로 번지기도 한다. 루이스라는 헤로인 중독자는 나와 대화하던 중 진지한 표정으로 푸에르토리코의 마약값이 뉴욕보다 비싼 것도 "대미 불공정 무역관계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처럼 색다른 시각을 접한 곳은 바로 마약중독자들의 소굴인 라페를라였다. 외부인들이 기피하는 이곳에는 경찰도 웬만해선 오지 않는다. 루이스는 밑에 보이는 삐죽삐죽한 바위들을 가리켰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 라페를라의 내부 규율을 어긴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장소다. 루이스는 당당한 목소리로 "이곳이야말로 섬 안의 섬"이라고 말했다. 푸에르토리코 안에는 각기 다른 문화를 지닌 '섬'들이 많다. 길이 175km, 폭 55km의 좁은 공간에서 북적대며 사는 400만여 명의 주민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다양성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들은 똑같은 사물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섬의 동북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산후안에서는 5센트짜리 동전을 '베욘'이라고 부른다. 반면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산간지대에서는 '피차'라고 한다. 산후안 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후손이 주로 사는 로이사는 독특한 '봄바' 음악과 춤의 본고장이다. 그러나 섬 전체에서 접할 수 있는 변형된 봄바는 최소 13개나 된다. 각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몇 년 전 섬 서쪽에 있는 소도시 카보로호의 주민들은 아기가 인근 마야구에스에 있는 병원에서 태어나도 법적 출생지는 카보로호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19세기에 황금기를 구가했던 남쪽 해안도시 폰세의 주민들은 산후안이 품위가 없다고 깔보지만 정작 자신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로부터 속물 취급을 당한다. 이런 지방색과 경쟁의식에도 불구하고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서로를 농담거리로 삼지는 않는다. 농담의 대상은 외부인들이다. 변호사 엑토르 곤살레스 페레이라는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쿠바인이 늘 도마에 올랐어요. "뻔뻔하다.", "쿠바에서 도망쳐 나올 때 두고 온 재산이 엄청나다고 큰소리치더라." 하는 따위의 내용이었죠. 지금은 도미니카 사람들이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멍청하다는 거죠. 예전에 미국에서 폴란드 출신들을 두고 농담했듯 말이에요." 도미니카 사람들 대다수는 보트피플로, 산토도밍고에서 모나 해협을 거쳐 푸에르토리코에 당도한 뒤 저임금의 비숙련 노동자로 살아간다. 산후안 자체가 팽창일로에 있는 '섬 안의 섬'으로, 내륙 산간지대 경사면을 따라 확장되고 있다. 또한 이 거대도시 중앙에 자리잡은 구시가지는 자갈이 깔린 거리를 따라 우아한 집들이 늘어선 또 하나의 섬이라 할 수 있다. 이 자갈은 16세기 초에 대형 범선의 부력 조정용 바닥짐으로 실려온 것들이다. 보석처럼 고색창연한 이 구시가지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방어용 전초기지였던 푸에르토리코의 400년 역사를 대표하는 매혹적인 유산으로 소중히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