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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이라크의 도굴 현장을 가다

이라크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바로 이라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굴과의 전쟁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원정팀이 바그다드에서 바빌론까지 도굴 현장의 소식을 전해준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쏘지 말아요! 우린 미국인이에요!" 헨리 라이트가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외쳤다. 주위는 어두웠지만 전조등 불빛에 드러난 도로 한가운데에서 젊은 미군 해병이 우리가 탄 흰색 차량의 앞유리창에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라크 고대 유적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러 온 고고학자들과 기자들로 구성된 우리 팀은 무장한 도굴꾼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는 받았지만 아군의 총격을 조심하라는 경고는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날이 저문 후 지역 박물관을 찾아 파괴된 나시리야 시내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던 우리는 해병대의 바리케이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박물관은 이제 군대 막사가 돼 있었다. 암울한 대량 도굴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5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미시간대학 인류학박물관의 헨리 라이트 교수를 대표로 하는 원정팀을 구성해 이 건조한 사막 지대를 찾아왔다. 바로 이곳이 인류 최초의 대도시들이 번성했던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평원이다. 언론의 관심이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박물관 소장품의 도난과 회수에 집중되고 있는 동안 우리는 가난에 찌든 현지 주민들과 조직 도굴단이 이라크 전역에서 고분을 약탈해 유물을 해외로 밀반출하고 있다는 소식들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섰다. 우리 팀의 고고학자 5명은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 정부가 자국민의 이라크 발굴작업을 금지한 이후 10년 동안 유적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갓 파낸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는 일부 유적의 풍경은 달표면을 방불케 한다. 이곳에서 도굴꾼들은 몇 주 만에 고고학자들이 수십 년간 발굴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유물을 파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훼손되지 않고 사막의 열기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는 유적들도 있다. 원정팀의 절반은 이라크 남부를 찾아다니고 나머지 절반은 북부의 상황을 조사했다. 북부의 피해 상황은 덜한 편이지만 여전히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나시리야에서 우리는 운이 좋았다. 미 해병대의 글렌 사다우스키 소령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그는 무장 호위대를 조직해 이라크 고고학자 압둘 아미르 함다니가 현지 유적을 조사할 수 있게 했으며 우리를 불러 그와 동행하게 해주었다. 사다우스키와 함다니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 쌍이었다. 다부진 체구의 예비역 장교인 사다우스키는 1991년 걸프전 때 소대원 7명을 잃었다. 상냥한 과학자인 함다니는 자신의 일터인 박물관을 비워줘야 했다. 그들은 서로의 언어를 모른다. 하지만 함다니는 날마다 다시 찾아와 사다우스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장터에서 사람들이 고대 유물을 팔고 있어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라크의 보물들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경비 인력이 현재로서는 태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함다니는 유적의 피해 정도를 신중히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저 사람이 이 일에 열정을 쏟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사다우스키 소령이 호위대를 보내주기로 하고 나서 말했다. 이러한 실낱같은 신뢰와 존경에 메소포타미아 유적의 미래가 달려 있다. 엘리자베스 스톤, 고고학자 "이런 파괴를 부추기는 장본인들은 불법 반출된 유물을 구입하는 서구인들입니다. 꼭 마약 거래 같지요. 도굴이 왜 문제냐구요? 도굴꾼이 구멍을 팔 때마다 역사라는 직물에 작은 구멍을 내는 것과 같으니까요. 역사란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밝혀내는 겁니다. 그런데 전체 맥락에서 찢겨져 나온 물건은 그것을 만든 사람과 사용한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없애며 제 목소리를 잃고 침묵하는, 단순히 예쁜 물건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이 지역에서는 많은 물건들이 과거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서들은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살아남았어요. 견고한 점토판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죠. 개인 서한이나 계약서, 문학작품, 공문서가 그것들이 쓰여진 건물 안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대 유물 시장에 나와 있는 점토판들은 어떨까요? 그것들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부숴진 점토판 조각들은 방치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많아요. 성경의 대홍수 이야기와 유사한 수메르 설화처럼 고고학자들이 보존해온 주요 문헌의 일부는 조각들을 공들여 끼워 맞춘 것들이죠. 지금 벌어지는 도굴 때문에 우리가 뭘 잃어버리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요. 이를테면 우리는 다하일라 공동묘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게 됐습니다. 3700년 전에는 수만 명이 살았으며 지금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이 중요한 지역에 도착한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도굴꾼들이 이곳에 유물이 많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합니다. 온통 구멍투성이였습니다. 나는 언제나 이곳에서 발굴을 하고 싶었어요. 이 도시는 사람들이 한동안 살았다가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온 서판과 공예품을 통해 고대 바빌로니아시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파괴를 막으려면 나라마다 유물 수집가들이 꼼짝 못하도록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국경 통제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인류 유산은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정치가들과 대중이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새로운 임무 무기를 든 미 해병들이 수메르 도시 기르수를 수색하며 도굴꾼을 찾고 있다.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새 구멍들, 방금 찍힌 발자국과 타이어 자국들로 미루어 해병대와 우리 원정팀이 조금 전에 진행되고 있던 도굴을 중단시킨 것이 분명했다. 일부 골동품 거래상들과 수집가들은 이런 유적들에서 훔쳐온 원통형 부조 인장이나 설형문자 서판에 1만 달러 이상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이런 물건을 발견해 신고한다면 훨씬 더 적은 돈을 받게 될 것이다. 한 해병이 네브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2세가 통치했던 바빌론의 거리를 걷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이곳을 관광지로 복원했다.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성난 군중이 인근 박물관을 부수고 선물가게를 불태웠다. 당시 나이 많은 경비원이 낫으로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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