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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경 건축가였다. 작가, 기술자로 예리한 통찰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미국에 수많은 도시공원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오래전에 그는 우뚝 솟은 오크와 히코리나무들, 초록색으로 알록달록 뒤덮인 웰링턴힐의 자연적인 특징들을 보고 부지를 택했다. 이는 전형적인 그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경관이다. 빛과 그림자의 다양한 색조, 여러 자연 조건들이 이뤄 내는 미묘한 짜임새, 나뭇잎으로 아름답게 둘러싸인 목가적인 중심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조경이 매클린 병원의 정신병 환자들에게 약간이나마 평안을 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이곳의 환자가 된 지금, 그가 여기에서 느낀 것은 평온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미국 조경 건축의 창시자로, 최초로 대형 도시 공원을 만든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긴 생애의 말년에 노인성 치매에 걸렸고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한 세대 전 다른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지었던 이 병원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때는 1898년, 장소는 보스턴에서 멀지 않은 매사추세츠 주 벨몬트였다. 그는 간호사나 가족과 함께 마당을 거닐다가 아직 무뎌지지 않은 그의 천부적인 관찰력으로 원래의 설계와 다르게 만들어진 부분을 놓치지 않고 찾아냈다. "내 설계대로 짓지 않았어." 그는 가족에게 투덜댔다. "망할 자식들!" 옴스테드는 심한 편집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자신이 설계한 대로 따르지 않았던 몇몇 다른 고객들을 기억해 내고는 화를 내며 그들에게 망할 자식들이라고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아니면 타고난 재능으로 이룩한 자신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도 기억해 내는 순간이 벨몬트에서 있었을까? 분명 그는 자신이 20여 곳의 도시에 만든 공원들 중 가난한 도시민들에게 빛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어 준 보스턴과 버펄로, 루이빌과 뉴욕의 공원은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천재성을 발휘하여 공들여 만든 다른 작품들, 즉 대학 교정과 저택, 공동묘지와 수목원, 미국 국회의사당 주변의 정원,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콜럼버스 국제박람회의 대형 산책길, 뉴욕에 있는 미국 최초의 공원도로, 곡선 길들이 있는 최초의 교외 계획 도시 중 한 곳인 일리노이 주의 리버사이드, 또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야만적 행위가 오늘날보다 더 일상적이었던 시대에 요세미티 계곡과 나이애가라 폭포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 보고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작품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 중에서 옴스테드는 시카고 박람회가 열린 해에 그를 가리켜 "신세계가 낳은 최고의 예술가"라고 극찬한 '가든 앤 포레스트'의 사설 일부를 기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까지도 그가 만들어 놓은 쾌적한 경관을 감상하며 휴식과 활력을 얻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과 인물 됨됨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게 될 것이다. 작품 속에서 잊혀지는 것이 건축가들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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