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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서피크 만 구하기

환경보호론자들은 이 만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의지력과 강제력의 부족으로 체서피크 만의 상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달도 보이지 않는 작년 2월 어느 날 저녁 진눈깨비와 눈발이 막 날리고 초속 7.5m가 넘는 강풍으로 체서피크 만에는 거친 파도가 일고 있다.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친구 돈 바우는 말한다. 플리스 소재 단열복과 드라이 슈트를 입은 채 한 시간가량 카약을 타고 길디긴 겨울밤을 지낼 야영지로 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습지와 모래 언덕으로 향한다. 본토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 지역은 바람으로부터 모닥불을 겨우 보호해 줄 수 있는 곳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모래 언덕이 바람을 막아 주는 곳에 방수범포를 고정시키고 장작불도 지폈다. 현지에서 잡은 통통한 굴들이 석쇠 위에서 탁탁 입을 벌린다. 저녁 무렵 자연이 들려 주는 음악에는 알래스카 주 노스슬로프에서 날아와 인근에서 겨울을 나는 고니 떼도 등장한다. 폭풍으로 본토의 어촌 불빛은 희미해지고 진눈깨비는 방수범포를 후두두 내리친다. 더 편안하게 체서피크 만을 체험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그곳의 진수를 맛본다. 겨울철 한밤중, 예전에는 더 넓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체서피크 만에서 안식을 찾고 심신을 회복한다. 과거 이 만에는 1만 9000km에 달하는 해안선에 수없이 많은 지류와 강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어 떠돌아다니기가 훨씬 수월했다. 꽃게와 굴을 채취하기도 훨씬 쉬웠고, 고속 모터보트들이 쉴 새 없이 물을 휘저어 놓지도 않았기에 배를 타고 떠 있기에도 좋았다. 그 사이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 굴은 거의 사라지고 꽃게도 사상 최저 수치에 근접했다. 그리고 전통 어촌은 사라져 가고 건물과 도로가 시골을 파괴하고 있다. 미국의 6개 주 일부와 워싱턴 DC를 포함하는 이 하구 유역에 사는 주민 수가 1950년의 800만 명에서 두 배인 1600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수질이 악화되었을 뿐 아니라 고즈넉함까지 사라졌다. 1983년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체서피크 만 계획'이라는 유례없는 대규모 복원사업을 시작했을 때, 이 계획이 수월하게 진행될 거란 환상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하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곳뿐 아니라 멕시코 만에서부터 유럽의 발트 해와 북해까지, 홍콩에서 칠레,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수많은 연안 지역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완전히 회복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역 환경 단체 중 하나로 1967년에 설립된 체서피크 만 재단(CBF)은 체서피크를 대변한다. 최신 환경평가 성적표에서 재단은 체서피크 만에 100점 만점에 27점이라는 낙제점을 주었다. 이제는 환경 교육가인 바우와 언론인인 나처럼, 만 지역의 이러한 쇠락을 역전시키는 일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 반성할 때다. 온전했던 이 만이 쇠퇴해 간 지난 60년 동안 이 만을 알고 지낸 나는 젊은 사냥꾼, 낚시꾼, 습지 탐험가로서 이곳의 풍요로움을 한껏 즐겼다. 나는 약 30년 동안 '볼티모어 선' 지의 환경부 기자였으며 12년 전에는 본지에 '위기에 처한 체서피크'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지난해 나는 하구 지역을 여행했다. 즐겨 찾던 곳들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 아니 어쩌면 희망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그곳에 일어났어야 했지만 일어나지 않을 듯한, 어쩌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취재에 나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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