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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가져올 혜택

일반 국민들의 희생 하에 천연자원들이 강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새로운 석유 개발지역인 가난한 나라, 차드가 공정한 개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흰 수염과 잦은 웃음, 땅딸막한 체구의 오토 혼케(58)는 1978년부터 자신이 몸담아 온 아프리카 개발사업에 신물이 나면 언제든 산타클로스역의 배우로 전업할 수 있을 것처럼 생겼다. 우리는 혼케가 2002년부터 일해 온 차드 남부의 유전지대를 자동차로 함께 돌아보며 석유업체인 엑슨모빌과 페트로나스, 셰브론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보건, 교육, 상수도 프로젝트를 점검했다. 이 컨소시엄은 우리가 타고 다닌 자동차 밑의 지하 1800m에서 하루 20만 배럴에 육박하는 석유를 퍼 올린다. 엑슨모빌은 혼케가 소속된 독일의 원조단체 GTZ와 손잡고 차드 남부의 여러 마을에 깔끔한 학교 시설을 지어 주었다. 예전에 아이들은 밀짚 지붕 밑에서 나뭇가지를 깔고 앉아 공부해야 했다. 예전의 우물 대신 태양전지로 가동되는 급수탑도 들어섰고, 소금기 있는 우물물은 사질토 아래의 좀 더 깊은 지하에서 끌어올린 깨끗한 담수로 바뀌었다. 화창하고 건조한 이 날 나는 이번 여행에 동행한 혼케가 이미 산타클로스 같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벽촌에서 소박한 소망들을 이뤄 주며, 석유의 발견이 반드시 보통사람들에게 저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도 심어 주려 애쓰는 모습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는 사이 나의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곧 무너지고 말았다. 개발도상국 전역, 특히 이 지역에서 석유가 몰고 온 부정적 인식과 순식간에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서쪽 국경에 접한 나이지리아나, 좀 더 나아가 남쪽의 적도기니, 콩고, 가봉, 앙골라만 보아도 어째서 아프리카의 석유가 해결책이 아닌 문제만 일으키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이 검은 물질을 가지고 이곳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최소한 우리가 시찰 중인 마을에서 벌이고 있는 개발사업들이 그러한 현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석유업체들은 자선을 목적으로 이런 공사를 해 주는 게 아니다. 이 프로젝트들은 2003년 차드가 아프리카 산유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단행한 토지 강제매각이나 환경파괴 혹은 불쾌감에 대한 철저히 계산된 보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석유업체들이 석유 채굴을 위해 차드에서 치른 대가는 40억 달러다.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민간 부문 투자 중 최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걸음마 단계인 차드 석유산업은 석유업체, 정부, 세계은행이 함께 벌이는 합작사업이다. 이들 세 주체의 임무는 간단히 말해 석유를 수익성 있게 채굴하고, 수익을 투명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며, 환경을 보호하고, 정부 수익금 대부분을 빈곤 퇴치에 투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큰 의문점은 이 새로운 계획이 아프리카의 여러 후진국 중 하나인 차드를 제대로 된 나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내전과 부정부패, 격변 끝에 1인당 국민소득 1600달러를 기록 중인 1000만 정도의 차드 인구에게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인가? 우리가 방문한 마을들은 이런 위업의 달성을 기다리면서 감사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곳에는 불신과 충족되지 못한 기대가 팽배해 있었다. 카이라티 마을 주변에서 목화, 쌀, 기장을 재배하는 호리호리한 소작농 음방톨룸 은가람베는 "주민 대다수가 부유해질 것이라고들 했지만 결국 더 가난해졌을 뿐"이라며 "주민들이 석유로부터 덕본 것은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망고나무 그늘 아래 서서 아낙네와 아이들이 새로 설치한 물 펌프에서 법랑 물동이에 물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구경했다. 물 펌프는 꽤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듯했다. "저 펌프 쓸 만하지 않은가요?" 나는 은가람베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만도 차단할 겸 손가락으로 펌프를 가리키며 물었다. "물론 좋죠." "그리고 저기 새 교실들은요?" "그것도 좋죠." 우리가 이곳에 필요한 것들, 다시 말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현대적인 경제, 가까운 병원, 포장도로, 치안 등을 모두 거론하는 동안 은가람베는 작은 나뭇가지로 이를 쑤시며 나를 계속 곁눈질했다. 우리는 프랑스어로 대화했다. 프랑스어는 1960년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차드의 식민지 잔재이다. 나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여 은가람베에게 외국 석유회사들로부터 왜 그토록 많은 것을 바라는지, 또 차드 정부로부터 바라는 것은 왜 그렇게 적은지 물어 보았다. 은가람베가 답했다. "차드 정부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선생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옆에 있던 작지만 단단한 체격의 또 다른 농민 위베르 노짐바이는 나를 석유업체에서 보낸 끄나풀로 간주하는 듯했다. 그가 대화에 끼여들었다. "마을에서는 새벽 5시부터 오가는 트럭으로 먼지가 일기 시작해요. 아이들은 기침을 달고 살죠. 에소측 사람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해요." 이곳 사람들은 엑슨모빌을 '에소'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에소는 노짐바이의 주장에 대해 뭐라고 할까? 그동안 에소는 차드 남부의 도바 유전과 인근 카메룬에서 석유를 뽑아 올리면서 주민들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카메룬에서는 1067km의 송유관으로 크리비 인근 연안 터미널까지 중유가 운송된다. 차드에서 에소의 홍보 담당 고문을 맡고 있는 마일스 쇼는 통계치를 늘어놓으며 "지금까지의 그 어느 아프리카 유전 개발 프로젝트보다도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도시만큼이나 큰 컨소시엄의 운영센터 '코메 파이브 캠프(KFC)'에 자리잡은 조립식 사무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마을회의를 6000번도 넘게 했고 환경, 안전 프로그램 담당자를 150명 이상 고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매우 특이했기 때문입니다. 차드와 카메룬에서 협상해야 할 토지 이용권자만 1만 4000명이나 됐어요. 그들 모두 개별적으로 보상 받았죠." 특히 코메 근처의 인구 492명이 살고 있는 단마자에서 협상은 오래 지연된 듯했다. 유전시설 건설로 밭과 야생 과실수가 더러 손상되자 단마자 촌민들은 개별 보상은 물론 집단 보상도 받았다. 다소간의 논란 끝에 주민들은 쌀, 땅콩, 기장, 참깨, 콩, 카사바 등 자신들이 경작한 농산물을 팔 수 있는 지붕이 있는 시장을 요구했다. GTZ는 현지의 한 건축업체에 단순하지만 튼튼한 철골 구조물을 세워 달라고 의뢰했다. 하지만 꼭 집어 내기 힘든 여러 이유로 인해 새 시장은 방치돼 있었다.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철제 대들보는 벌써 녹슬기 시작했다. 다니엘 아쇼 추장과 마을 사람들이 설명해 준 시장이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들 가운데 세 가지가 가장 두드러졌다. 지붕 있는 공간이 합의했던 것보다 좁다는 점, 건축업체가 신축 시장의 화장실 열쇠를 가지고 가 버렸다는 점, 그리고 현지의 원로 족장이 기공식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에소의 임원진이 함께한 자리에서 혼케는 분통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혼케는 마을 사람들에게 "시장을 이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이튿날 엔지니어를 보내 마무리 공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을에서 벗어나는 동안 나는 혼케에게 마을을 방문한 소감에 대해 물었다.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석유를 둘러싼 주민들의 기대감은 터무니없이 높았어요. 주민들은 돈이 '만나'처럼 하늘에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요." 혼케의 대답이다. 일종의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유전지대 주민들이 펼치는 전략 중 하나는 컨소시엄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결코 품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들의 속셈은 분명했다. 계속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기업들이 이 지역에 머무는 동안 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마음껏 쓰는 상황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차드에서 석유사업을 시작하는 데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까다로웠다면 일상적 운영 절차 역시 만만치 않다. 다국적 전문가 집단이 차드 프로젝트에서 세계은행의 역할을 엄밀히 점검하여 세계은행 총재에게 직접 보고한다. 또한 차드 정부 산하 기술위원회와 일단의 해외 및 현지 비정부기구(NGO)들이 수익의 흐름, 공해 수준, 석유 생산, 오염물질 방출, 먼지, 피해 보상, 고용 형평성 등을 감시한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단체는 '석유자원통제감시단(CCSRP)'이다. CCSRP의 임무는 학교, 병원, 도로 같은 최우선 사업에 대한 정부 지출을 감시하는 것이다. 석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캐나다인으로 엑슨모빌 차드 사업부 사장인 론 로열은 KFC의 첨단 시설을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좋은 점은 차드의 석유사업이 백지처럼 깨끗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세상이 변했어요. 기본 바탕이 투명해지고 있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한 차드 사업은 순탄할 겁니다." 도바 유전에서 활동 중인 컨소시엄은 차드 정부 및 세계은행과 함께 부패를 크게 줄여야 한다는 데 강력한 합의를 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반부패 합의가 1억 2839만 9956ha의 차드 땅 밑에서 개발 가능한 새로운 석유 매장지를 찾고 있는 현 컨소시엄이나 다른 석유업체들에도 일관성 있게 적용될까? 주요 당사자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다른 석유업체들처럼 반사회적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까? 석유업체들로서는 반사회적 방식이 싸게 먹히는 데다, 현지 권력층에게도 더 수지맞는 장사가 아닌가? 차드에서 진행 중인 실험이 첫번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지는 않을까? 나는 차드의 유수프 아바살라 석유장관으로부터 그 답을 듣고 싶었다. 차드 수도 은자메나에 있는 장관의 집무실에서 컴퓨터는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장관과 관리들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세계 석유업계의 동향을 컴퓨터 없이 어떻게 따라잡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속으로 묻어 두고 차드 정부가 컨소시엄과 합의한 매출 관리 시스템을 계속 고수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석유업체들이 차드를 좀먹고 있다는 익명의 맹렬한 공격에 대해 장관에게 물어 보았다. 몇 달 전 차드 대통령이 성명서에서 언급한 익명성 공격이 미국 석유업계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아바살라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석유 매출 수익을 빈곤 퇴치에 이용한다는 원칙은 존중하되 향후 협정에서 세부 방식이 수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석유 생산을 시작한 지 18개월 만에 수익이 뚝 떨어졌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바살라는 석유 수익이 배분되기도 전에 1배럴당 20달러가 운송료 및 할인으로 공제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차드산 석유를 정제할 수 있는 정유시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차드 국고에 들어가는 돈의 액수는 국민의 예상과 달리 아주 미미합니다." 차드는 지구상의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고, 은자메나는 아프리카에서 환경이 가장 열악한 도시 중 하나다. 이는 우리에게 뭔가 시사하는 점이 있다. 시당국이 환경미화원에게 임금을 지급해도 그들은 자신의 일에 소홀하기 일쑤다. 아프리카 대륙 어디에나 널려 있는 비닐봉지는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잡초처럼 모래땅에서 절로 자라는 듯 보일 정도다. 규모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도바는 언젠가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이나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처럼 석유산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처럼 보이게 될 수도 있다. 현재 도바에는 긴 도로가 하나 있다. 도로 양 옆에 줄지어 선 나무로 지은 노점과 간이 매점에서는 고기 구이, 갈라 맥주, 중고 타이어를 비롯한 온갖 잡화들을 판다. 도바에는 포장도로나 인터넷 카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전력조차 없다. 차드 전역을 통틀어 주유소가 10여 곳이 안 되는데, 그나마 도바에는 한 곳도 없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도로변의 행상들이 나이지리아산 휘발유를 커다란 유리병에 담아 판매한다. 이것을 고무호스를 대고 입으로 빨아 연료탱크에 넣어야 한다. KFC에서 자동차로 40분쯤 떨어진 곳에서 하루 20만 배럴의 석유가 송유관을 타고 흐른다. 대규모 발전소가 유전에 120MW의 전력을 공급한다. 차드 전역에서 쓰는 용량의 5배가 넘는 용량이다. 어둠이 깔려도 이런 극명한 대조는 여전해서, 도바 주민들은 양초와 등불을 밝힌다. 한 지역을 오랫동안 접하다 보면 그곳의 앞날을 종종 예측할 수 있다. 나는 1982년과 1990년에 차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비닐봉지가 얼마나 널려 있는지 세어 보든가, 차드 정부의 예산관리에 대해 질문할 시간조차 없었다. 사실 당시 이 나라에는 제대로 된 정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두 번 모두 쿠데타가 일어난 바로 다음날 차드에 입국하는 불운을 겪었다. 쿠데타는 1970~1980년대 아프리카에서 흔한 일이었다. 1982년 구쿠니 우에다이는 히센 하브레에게 쫓겨 샤리 강을 건너 달아났다. 그로부터 8년 뒤 하브레도 차드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하브레는 중앙은행에서 현금을 털고, 그의 경호원들이 300명 이상의 정치범을 학살한 현장인 대통령궁 지하감옥을 찾아간 뒤 달아났다. BBC의 한 동료와 내가 숨을 헐떡이며 수라장으로 변한 은자메나에 당도했을 당시, 이드리스 데비가 이끄는 자가와족(族)이 이미 사태를 장악한 가운데 검문소마다 약탈해 놓은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데비는 이후 지금까지 차드의 대통령으로 군림해 왔다. 사실이든 소문이든, 그 동안 몇 차례 쿠데타 모의도 있었으나 데비 대통령이 샤리 강에 도피용 바지선을 준비해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데비는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의 배후 세력인 자가와족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수 년 전부터 존재가 알려져 있었지만 분쟁 때문에 개발하지 못한 석유가 비로소 채굴되기 시작했다. 이제 차드를 진정한 국가로 인정한다고 비웃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세계은행, 석유업체, 정부로 이뤄진 삼발이 다리 가운데 하나가 여전히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데비 정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삼발이는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여권운동가 테레즈 메콤베는 1999년 석유 프로젝트가 2년간 유예돼야 한다는 차드 내 NGO들의 주장을 지지한 바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프로젝트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남부 농민 모두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NGO들의 호소는 먹혀들지 않았다. 이듬해 세계은행이 프로젝트를 공식 인가하자마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우리는 지난 1월 어느 날 오후 찌는 듯한 날씨 속에 은자메나의 한 국제 호텔에서 메콤베와 만났다. 그녀는 실용주의적이고 능동적인 인물인 듯했다. 소형 자동차를 손수 몰고 다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석유자원 감시위원회인 CCSRP의 위원으로 차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녀는 "나이지리아, 콩고, 가봉 등 다른 산유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라며 "그 나라들의 실패 경험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 동기"라고 설명했다. 메 콤베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NGO는 차드 사람들의 순진함, 무능력, 석유생산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의 부족 등을 악용하려 드는 이에게 미약하나마 어느 정도의 억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석유 문제와 관련해 차드인들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속성으로 공부해야 했다. 온갖 세미나와 외국 현장 견학, 석유 중개상 및 세계은행 소속 경제전문가들의 브리핑에도 불구하고 기대되는 합계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착취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차드인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은자메나에서 반부패 워크숍이 성황리에 열렸다. 메콤베와 함께 CCSRP 위원으로 활동 중인 도비앙 아싱가르는 워크숍 휴식시간에 나와 대화하면서 "석유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고, 석유업체는 가공할 힘을 지닌 거인이자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메콤베와 마찬가지로 변호사인 그는 친민주 성향의 NGO 분야에서 활동하며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들 NGO는 데비 정권에 깊은 불신을 품고 있다. 실권은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 좀 더 넓게는 북부 사막지대의 무슬림들이 장악하고 있는 듯하다. 아싱가르는 법정에서나 어울릴 듯한 권위적인 어조로 CCSRP가 직면한 몇몇 문제를 지적했다. 데비의 형 다우사 데비는 차드 최대 도로 건설업체 사무국장으로, 그의 회사는 석유 수익금으로 진행되는 몇몇 짭짤한 토목공사에 연이어 입찰하고 있다. 입찰 과정에 정치적 압력이 개입될 소지는 다분하다. 아싱가르에 따르면 컨소시엄에서 나오는 '오일머니'의 용도가 제한되어 있는 데다, 실제로 그 돈을 타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든든한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꿀단지로 탐욕스러운 손을 뻗치기 마련이라고 한다. 지난해 지방세, 관세 같은 정부의 기존 세입이 뚝 떨어졌다. 아싱가르는 "이들 세원이 한 집단의 용돈으로 전락한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오일머니가 유입되기 전인 지난해 차드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142위를 기록했다. 나이지리아는 144위였고, 방글라데시와 아이티가 각각 145위와 최하위를 차지했다. 석유 매출이 차드 국고로 처음 유입된 지난해 CCSRP의 성과를 평가해 달라고 말하자 아싱가르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CCSRP가 관리하고 있는 기금 중 무려 76%가 공식 승인을 받은 사업에 지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올해 초 차드의 교사들이 3개월분 임금 체불을 들먹이며 파업하겠다고 위협하자 정부가 해명에 나섰지만 납득하기 힘들었다. 3개월이라면 석유가 생산되기 전 교사들이 겪곤 했던 체불 기간보다 훨씬 긴 것이었다. 당시 평신도로서 로마가톨릭 교회에서 일하던 앙주 가브리엘 술라셍가르는 "오일머니로 국고가 채워지는 판에 교사들 임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로마가톨릭 교회는 차드의 유전 개발을 가장 강력히 비판하는 집단으로 떠올랐다. 술라셍가르는 로곤 강 동쪽에 자리잡은 소도시 라이의 주교 관구에서 일했다. 폭이 넓은 로곤 강은 비옥한 평원과 습지를 형성하면서 남쪽으로 굽이굽이 흘러간다. 로곤 강 유역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엑슨모빌과 캐나다의 석유업체 엔캐나로부터 경제성 있는 석유가 발견됐다는 성명은 아직 나온 바 없다. 한편 현지 주민과 성직자들은 벌써부터 앞날을 걱정하는 실정이다. 도바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라이까지는 자동차로 세 시간이 걸렸다. 논과 사탕수수밭이 로곤 강까지 뻗어 있었다. 뿔이 긴 소들이 풀라니족 목동들이 휘두르는 막대에 일렬로 어슬렁어슬렁 우리 옆을 지나갔다. 망고와 야자 나무들이 그늘진 쉼터를 제공했다. 마을은 활기차고 깔끔했다. 멍석으로 만든 벽이 흙벽돌 오두막과 곡물 창고를 둘러싸고 있었다. 목가적인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이런 모습은 사실 심하게 왜곡된 것이다. 48세라는 평균수명이 차드 남부 주민들의 실상을 대변한다. 말라리아와 확산되는 에이즈로 수명이 단축된 것이다. 제복 입은 무장 세력의 의도를 둘러싼 두려움, 변덕스러운 기후 속에서 농사 외에 달리 할 만한 경제활동이 없는 현실, 환금작물의 정당한 가격을 위한 협상조차 하지 못하는 무기력감이 이곳을 짓누르고 있다. 도바에서 석유가 발견되더라도 라이 주민 1만 5000명의 삶이 나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알렉산드레 카날레스 마사 신부는 1978년 이래 이곳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당시 교사로 봉사했고, 술라셍가르는 인근 소도시의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올해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사 신부와 술라셍가르는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의 라이 지부에서 동료로 함께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현실에 눈을 떴어요. 도바는 석유생산에 대한 실질적 준비가 안 돼 있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죠. 라이에서 석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는 주민들에게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마사 신부가 들려 준 말이다. 내가 라이에 당도했을 때 마사 신부와 술라셍가르는 놀랍게도 석유 관련 워크숍을 막 끝낸 참이었다. 워크숍에는 석유업체, CCSRP, 현지 농민, 몇몇 핵심 NGO의 대표 140명이 참석했다. 워크숍은 중요한 목표를 달성했다. 즉, 현지 주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한 풀뿌리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이 땅과 나무, 물고기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이니 잠시 기다리라'는 것이 주민들의 의견입니다." 술라셍가르가 워크숍 분위기를 한 마디로 전한다. 누가 알겠는가? 석유업체가 고질적인 버릇을 버리고 라이 농민들의 말에 귀기울일지. 그럴 경우 세계는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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