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열풍에 휩싸인 불가리아
글 : A. R. 윌리엄스 사진 : 케네스 개릿
현재 불가리아에서는 고대 트라키아의 황금유물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유물이 도굴되거나 유적지가 개발되기 전에 서둘러 발굴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고고학자 게오르기 끼토프는 일을 빨리 한다. 굴착기와 불도저를 이용해 고대 트라키아 통치자의 돌무덤을 발굴하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조심스레 파헤치는 기존 방식으로는 수개월이 걸리는 일을 일주일 만에 해치워 버린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명한다. 도굴꾼이 도처에서 호시탐탐 유적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자들은 나보다 돈도 많고 장비도 좋습니다.” 끼토프는 말한다. “난 그들이 훼손하려는 유물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지금까진 아주 성공적이에요. 수많은 도굴을 막았으니까요.”
그러나 끼토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웅으로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악당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올해 63세인 그는 고고학계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시절 일찌감치 기계장비를 사용한 발굴작업을 익혔다. 소련 동료들의 방법을 배워 재빨리 ‘개종’을 한 것이다. “손으로만 작업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서두르고 꼼꼼하지 않아 여러 동료 학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일부에선 그를 보물 사냥꾼이라고 대놓고 비난한다. 연예인 고고학자라고 부르는 동료도 있다. 쇼맨십을 부리면서 오로지 흥미 위주의 기삿거리만 언론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불가리아 대형 박물관에 소장된 금은 세공 출토품 중 거의 절반을 끼토프가 발굴했다고 강조한다. 끼토프가 아니었다면 유물은 고스란히 도굴꾼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것이다.
도굴꾼들에게 불가리아는 엘도라도나 마찬가지다. 귀중한 보물이 엄청나게 묻혀 있으며 황금이 들어 있는 무덤 중엔 그 연대가 BC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다. 불가리아는 아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오랜 세월 침략자와 정복자, 군인, 여행자, 상인, 정착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트라키아인와 마케도니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페르시아인, 슬라브인, 불가리아인, 비잔틴인, 터키인 모두 이곳에 자신들의 족적을 남겨 놓았다. 누구든지 파내기만 하면 돈벌이가 되는 유물도 포함해서.
BC 5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조성된 트라키아 왕릉을 도굴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잡초가 무성한 벌집 모양의 커다란 무덤 둔덕이 길가와 논밭에 서너 층 높이로 솟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끼토프가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곳은 94km 길이로 뻗어 있는 카잔륵 계곡. 이곳에도 약 1000기의 무덤이 스레드나 산맥과 발칸 산맥의 봉우리 아래에 펼쳐진 장미 농원에 자리잡고 있다. 이 밖에도 약 2만 5000기에 달하는 무덤이 불가리아 도처에 흩어져 있다. 많은 무덤에 최근에 도굴한 흔적이 남아 있다. 풀과 덤불로 뒤얽힌 둔덕 표면이 들쭉날쭉 패어 적갈색 흙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도굴꾼은 옛날에 이미 털린 적이 있는 무덤을 파헤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금이나 은 대신 채색 항아리나 청동 조각상, 벽화를 훔치기도 하는데 이런 유물 역시 골동품 시장에서 높은 값을 받는다.
불가리아에서 고대 보물은 국유 재산이며 과거에는 이런 규정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1949년 파나규리쉬테 근처에서 타일용 진흙을 파던 세 형제가 2000여 년 된 화려한 순금 그릇 9개를 발견했다. 당시 불가리아는 소련에 종속된 지 몇 년밖에 안 된 터라 새로 들어선 전체주의 정권은 법을 어기는 자는 누구든지 가혹하게 처벌했다. 그래서 형제들은 발견한 물건을 순순히 관계 당국에 넘겼다. 그 무렵에는 뜻밖의 횡재를 팔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과일 통조림부터 칼라슈니코프 소총까지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공장들은 완전 고용을 보장했고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관리했다. 발견된 보물은 모두 안전한 박물관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어림없는 소리다. 1989년 소련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불가리아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강제로 문을 닫은 공장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실업자는 여전히 수십만 명에 이르며 직장이 있어도 한 달 평균 임금은 200달러밖에 안 된다. 중산층이 무일푼으로 전락하자 많은 사람이 도굴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사람들은 이를 지하 고고학이라고 부른다. “유물 거래가 마약 밀매보다 훨씬 더 짭짤합니다.” 불가리아의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리는 고고학자 니콜라이 오브차로프는 말한다. 과장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으며 관계 당국까지 도굴에 손을 대고 있다. 그리고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시장이란 사람이 친구나 가족과 함께 시골로 소풍을 나와 괜찮은 유물이 있는지 땅바닥을 파헤쳐 본다. 땅을 파다 현장에서 체포된 도굴꾼 중에는 순찰차를 구덩이 바로 옆에 세워 놓은 경찰관도 있다. 수백만 달러나 나가는 고대 동전과 보석이 박물관에서 사라진 적도 있다. 이는 분명 내부인의 소행이다.
소피아 시내에 있는 노점에는 비교적 작은 유물이 진열되기도 한다. “의회에서 50m밖에 안 떨어진 곳이었죠.” 오브차로프가 화를 내며 말한다. “트라키아 마차에서 떨어져 나온 유물과 동전, 걸쇠 같은 걸 내다 팔더라고요. 모조품이 아니라 전부 진품이었어요.”
예술품 수준의 귀금속과 석조품, 아름다운 도자기 등 고가품은 일부 돈 많은 불가리아 수집가에게 은밀히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부자들은 대금을 현금으로 지불하며 출처는 불문에 부친다. 수집가가 도굴꾼을 고용해 유물을 찾거나 도굴꾼이 범죄 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하지만 이런 불법 거래에는 무기를 소지한 범죄 조직이 연루돼 있어 내막을 아는 사람도 없고 정보를 캐내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