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래
글 : 더글러스 채드윅 사진 : 브라이언 스케리
혼잡한 뱃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외딴 오클랜드 제도 근해에서 몸길이 12m의 남방참고래가 안전하게 헤엄치고 있다. 북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불과 몇백 마리만 남아 있는 참고래. 하지만 남반구에서는 그 수가 오히려 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수심 180m까지 잠수해 우둘투둘한 머리 윗부분을 해저 바닥에 문지른다. 침몰한 군함만큼 커다란 몸뚱이로 가끔은 배를 위로 한 채 헤엄치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해류가 밀려올 때, 온몸에 뜨거운 피가 도는 녀석들은 차갑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동굴 같은 입을 벌려 물살에 실려오는 먹이를 받아먹는다. 이것이 바로 미국 메인 주와 캐나다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 주 사이의 펀디 만에 사는 북대서양참고래들이 먹이를 먹는 방법 중 하나다. 정수리에 진흙을 묻힌 채 수면으로 올라오는 체중 40~70톤의 이 거구들을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녀석들이 그렇게 먹이를 먹는다고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진흙을 묻혀오는 것도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다른 행동 때문일 수 있다.
북대서양참고래의 정식 학명은 유발라이나 글라키 알리스(Eubalaena glacialis)로 ‘좋은, 혹은 진짜 얼음 고래’라는 뜻이다. 녀석들은 해안가 얕은 물을 좋아해서 곧잘 항구 근처를 기웃거리고 헤엄도 천천히 치는 데다 종종 수면 근처에서 노닌다. 거기다 몸의 지방층이 엄청나게 두꺼워서 죽은 다음에 물에 잘 떠올라 잡기가 쉬웠다. 참고래(right whale)라는 이름은 어부들이 사냥하기 참 좋은 고래라고 가져다 붙인 이름이다. 북대서양참고래는 상업적 포경의 희생양이 된 첫 번째 대형고래였다. 녀석들의 몸에서 나온 지방층은 등잔 기름이 되어 중세 암흑시대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옛 시대를 밝혔다. 16세기경 북대서양 동부에 사는 참고래들을 거의 모조리 잡아들인 유럽인들은 북아메리카 해안 쪽으로 눈을 돌렸다. 고래잡이들은 캐나다 래브라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참고래는 물론 근연종인 북극고래도 2만 5000~4만 마리까지 사냥했다.
그 결과 미국 북동부에 사는 사람들이 참고래 포경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남아 있는 고래가 몇 마리 되지 않았다. 이들은 5000여 마리의 참고래를 더 잡아들였다. 고래의 지방층보다 훨씬 귀해진 고래수염은 이 같은 포획을 적잖이 부추겼다. 고래의 입천장에서 커튼처럼 늘어져 있는 고래수염은 털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케라틴 성분으로 이루어진 강하면서도 유연한 소재다. 참고래 한 마리당 길이 2~3m의 고래수염이 수백 개씩 나 있다. 매일 최저 40만 칼로리를 섭취해야 하는 다 자란 고래는 벼룩만 한 요각류 10억 마리를 삼켜 이를 충당한다. 고래수염은 고래가 자기 몸의 500억 분의 1밖에 안 되는 이 조그만 먹이들을 걸러 먹을 때 필요한 일종의 거대한 ‘체’인 셈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고래수염은 코르셋 지지대, 우산살, 말채찍 소재로 가장 적합했다.
그리하여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참고래 수는 100마리에도 못 미쳤다. 작살을 이용한 상업적 포경은 1935년 이후가 되어서야 금지되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북대서양참고래 수는 약 350~400마리다. 녀석들은 북아메리카 동부해안을 따라 메인 만의 여름철 서식지와 훨씬 남쪽에 있는 월동지 사이를 오간다. 임신한 암컷 고래는 겨울에 새끼를 낳기 위해 고래들의 오랜 출산 장소인 조지아 주와 플로리다 주 해안 근처까지 편도만 2200km나 되는 거리를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녀석들은 지구상에서 배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해역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