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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평화

글 : 로버트 드레이퍼 사진 : 에이미 바이탈리

스리랑카에서 끔찍한 내전이 막을 내린 지 7년이 지났다. 여전히 수만 명의 스리랑카인들이 집을 잃고 실종된 상태다. 스리랑카 정부는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한 젊은 여성이 들고 있던 사진은 겨우 우표만 한 크기였다. 하지만 이는 그녀가 친정에서 찾아낸 유일한 남편의 사진이다. 그녀의 친정 부모는 결혼을 반대했다. 자신들은 몇 대째 스리랑카 북부의 대도시인 자프나에 살고 있는 반면 딸이 결혼하려는 상대가 해안 소도시 마나르 출신의 어부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 그녀의 남편은 넓적한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는 인상이다. 그는 그녀와 만찬가지로 타밀 족이다. 10년 전 실종된 남편의 작은 사진 한 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적갈색 눈이 빛났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99년 인도 남부의 난민촌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7살이었다. 두 사람 모두 다수 민족인 신할라 족이 장악한 정부군과 타밀 반군 사이의 끔찍한 내전으로부터 도망친 난민이었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이웃 사람들의 시신을 뛰어넘으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피해 자프나를 빠져나왔다. 그녀의 남편은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이 막내 여동생을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후 마나르를 도망쳐 나왔다.


2002년에 그들은 마나르로 돌아왔고 남편은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탈 수 있었다. 벌이가 얼마 되지 않았던 남편은 타밀 반군에 휘발유를 팔아서 수입을 보충했다. 그녀는 그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나르의 타밀 족 남자들이 흔히 하는 일이었다. 남편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찾지 말고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도 그녀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하지만 2006년 12월 27일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남편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 후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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