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D CONTENT] 제주에 새겨진 지구의 시간을 만나다
글 : 윤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 사진 : 더네이쳐홀딩스
2026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부산에서 열렸다.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전을 논의하며 우리 유산을 세계에 알리고 다음 세대에 전할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였다. 세계유산의 가치는 연구와 보전, 지역사회와 미래 세대의 참여 속에서 이어진다.
2007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화산섬 제주가 형성되고 변화해온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빚어낸 독특한 지하 경관과 용암동굴의 형성과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세계적인 사례다. 그중 김녕굴과 만장굴은 이러한 자연과학적 가치에 더해, 지역의 정체성을 지닌 장소로 탐방과 기록을 거쳐 조사와 보호의 대상으로 거듭난 자연유산이다.제주 동북부에 자리한 김녕굴과 만장굴은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해안 방향으로 흐르며 형성된 대표 용암동굴로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두 동굴은 오늘날 서로 다르게 불리고 있지만 본래 하나로 이어진 통로였다가 후대에 내부로 유입된 용암이 중간 부분을 막으면서 나뉜 것으로 판단된다. 만장굴은 길이 약 7.4km, 최대 높이 23m의 높고 넓은 통로와 다층 구조에 용암동굴 생성물의 보존 상태가 뛰어난 웅장한 동굴이다. 김녕굴은 약 700m 길이의 굴곡진 S자형 동굴로, 용암폭포를 비롯해 용암의 흐름과 지형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사굴(뱀의 굴)이라고도 불린 김녕굴은 뱀의 설화와 상상이 깃든 두렵고 위험한 곳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직접 확인하고 싶은 신비로운 장소였을 것이다. 그림 하단에 높이 30척, 너비 20척, 길이 5리의 굴이라 기록돼 있지만 현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여러 동굴 입구와 지하의 모습을 한 장면에 담고 동굴 안을 실제보다 크게 표현해 탐방의 긴장감과 장소성을 부각했다. 지질학적 가치에 더해 자연을 경외하고 탐구해온 인간의 태도와 기억까지 담아낸 소중한 기록이다.
동굴은 자연유산 탐방지로 주목을 받지만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민감해 안전성과 접근성 개선에 한계가 있다. 사람의 출입과 조명, 온도와 습도, 지표의 토지 이용과 물의 이동은 동굴 안의 환경과 생성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동굴 내부뿐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아우르며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공개 제한 구간은 엄격하게 보호하는 한편, 정밀 측량과 모니터링,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전시와 해설로 동굴의 가치와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있다. 주민은 유산의 기억을 이어가고, 지자체와 관리 기관은 연구와 보전, 교육을 연계하며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계기로 제주 김녕굴과 만장굴의 지질학적 가치와 장엄한 지하 경관뿐만 아니라 이를 탐방하고 연구하고 기록하며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도 함께 전했다. 두 동굴은 지구의 시간을 품은 자연유산이자 인간이 자연의 경이를 발견하고 지식과 기억으로 전해온 장소다. 세계의 시선이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지금, 제주 세계자연유산의 이야기가 국제 사회에는 깊은 이해로, 우리 국민에게는 유산을 지키고 이어갈 자긍심으로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탐험가 인터뷰]
지난 6월, 두 탐험가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형성한 거대한 힘의 자취를 따라 탐험에 나섰다. 두 탐험가에게 용암동굴의 중요성과 탐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들어본다.
A 석회암동굴은 보통 물이 오랜 시간 암석을 녹이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종유석이나 석순처럼 물방울이 만들어낸 구조가 많습니다. 반면 용암동굴은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용암이 흘렀던 방향과 속도, 온도, 높이를 보여주는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동굴 벽의 줄무늬인 용암유선, 천장의 용암종유, 바닥의 흐름 자국 같은 것들이 모두 용암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Q 용암동굴은 왜 쉽게 훼손되나요?
A 용암동굴은 겉으로 보면 단단한 암석으로 이뤄진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섬세한 환경입니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거의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발자국 하나, 손으로 만진 흔적 하나, 조명의 변화, 온습도의 변화도 동굴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동굴 내부는 외부와 단절된 미세한 균형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용암동굴을 보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동굴 입구를 막는 일이 아니라 그 안의 균형과 생태계를 지키는 일입니다.
Q 앞으로도 탐험은 계속돼야 할까요?
A 탐험은 계속돼야 합니다. 다만 예전처럼 더 멀리 가고, 더 깊이 들어가고, 더 많이 차지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합니다. 앞으로의 탐험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해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미지의 공간을 발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다음 세대와 공유할 것인가입니다. 저에게 탐험은 결국 자연 앞에서 인간의 위치를 다시 배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배움을 통해 우리가 이 행성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일입니다.
A 기준선 이동 증후군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는 각 세대가 점점 훼손된 환경을 물려받고 그 상태를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환경에 대한 명확한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남아 있는 자연환경을 계속 조금씩 훼손하게 됩니다. 소중한 자연유산 중 일부를 잃게 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굴 같은 장소는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연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해야 합니다.
Q 궁극적으로 탐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저는 탐험이 본질적으로 내면을 향한 여정 또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관점을 가진다면 탐험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와 공동체 안에서도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됩니다. 사실 자연과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으려면 집 주변의 자연을 탐험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존재 자체가 가진 경이로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주변의 자연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환경 속에서 이러한 경이로움을 다시 찾아보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탐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탐험은 반드시 과학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뭔가를 발견하거나 인간이 거의 보지 못한 장소를 찾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변 세계에서 경외감과 놀라움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탐험은 자연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