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아칸소 삼각주
글 : 찰스 보든 사진 : 유진 리처즈
미국 미시시피 강 서쪽에 있는 삼각주는 과거 소작인들이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활기찬 마을을 이루고 살던 곳이다. 그러나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그들의 문화는 사라지고 드넓은 하늘과 텅 빈 마을만이 남아 있다. 40년 전 이들의 세계를 사진으로 기록했던 사진작가 유진 리처즈가 다시 이곳을 찾았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나는 한 사진작가와 차를 타고 아칸소 삼각주의 2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이 사진작가의 머릿속에 문득 잊고 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이 벌판을 가로지르던 장면을 다시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이 근처가 분명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애수에 젖은 눈으로 차창 밖을 내다본다. 경작지 너머로 지난 70년간 농업의 산업화로 이제는 쓸모 없어져버린 소작인의 오두막집이 폐허처럼 남아 있다.“나는 저 오두막집을 방문하기 위해 도로시아와 함께 경작지를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어요.”그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그때 농약 살포용 비행기가 나를 발견하고는 급강하해서 우리 머리 위에 농약 한 탱크를 다 쏟아부었지요. 도로시아는 그야말로 농약에 흠뻑 젖었어요.”
그는 말을 멈춘다. 그때 그 자리에서 함께 농약을 맞았던 여성은 그의 아내가 됐다. 그녀는 훗날 유방암에 걸렸는데 그는 그날 농약 세례를 맞은 일 때문이 아닐까 늘 생각했다. 4월의 공기는 상쾌하고 비 냄새를 살짝 머금고 있다. 숲속 입목들은 봄을 맞아 쑥쑥 자라나고 있다.
“이것 말고는 기억이 안 나요. 그날에 대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예요.”
이 백인 사진작가는 1960년대 말, 인권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시절에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에서 조지아 주의 오거스타라는 작은 마을을 찾았다. 이제 그는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 빈민지구 자원봉사대(VISTA) 소속으로 흑인과 백인 아동들을 위한 탁아소에서 일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마을의 백인 주민들이 그의 존재를 탐탁지 않아 하는 듯했다. 이 사진작가의 이름은 유진 리처즈로 수십 년 전, 어느 날 밤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에 당시의 일들을 온전히 기억해낼 수 없게 됐다.
이곳 삼각주에서 있었던 일 중 일부는 기억이 나고 어떤 일들은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이 더 많은 듯하다.
아칸소 삼각주는 세인트프랜시스 강, 화이트 강, 아칸소 강 등 서쪽에서 미시시피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여러 강의 유역들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노예제도, 소작 농업, 산업형 농업 등 다양한 농업 제도들이 시도됐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몇 안 되는 지주들의 배만 불렸을 뿐 소작인들은 대부분 가난을 면치 못했다.
아칸소 삼각주는 미국 남부의 정신을 담고 있는 곳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가는‘뉴사우스’지역이면서도 항상 과거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블루스 음악이 탄생한 장소이자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큐클럭스클렌(KKK)의 근거지이다. 1960년대에는 흑인 청년들 사이에서 불이 붙어 미국 전역의 백인 청년들에게까지 퍼져나간 사회 운동의 도가니였다. 이제 이 지역 전체가 거대한 농기구라도 된 듯 대지를 말끔히 갈아엎고 있다. 이곳에는 일꾼이나 마을이 전혀 필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