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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비아

글 : 로버트 드레이퍼 사진 : 조지 스타인메츠

리비아 국민은 지난 수십 년간 자신들의 과거를 일그러뜨린 독재자의 지배 아래 살아왔다. 이제는 미래를 꿈꿀 때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눈엣가시로 여겼던 로마 황제의 동상은 한 박물관의 어두컴컴한 창고 안 나무상자 속에 똑바로 누워 있었다. 황제의 이름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였다. 그는 카다피처럼 지금의 리비아에 해당하는 지역 출신으로 AD 2세기와 3세기에 걸쳐 18년 동안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황제의 출생지 렙티스 마그나는 모든 면에서 제2의 로마가 되었다. 이 지역은 당시 페니키아인들이 ‘오에아’라 불렀던 오늘날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130km 떨어진 상업도시였다. 세베루스 황제가 죽고 나서 1700여 년 후 리비아를 식민지로 삼은 이탈리아 통치자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만들었다. 턱수염을 기른 황제가 오른손으로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근엄한 모습의 동상이었다. 이 동상은 1933년 리비아 트리폴리 중앙광장(지금의 순교자 광장)에 세워졌고 그 후 리비아의 새 통치자가 된 카다피의 미움을 사기까지 반세기 동안 광장을 지켰다.


“그 동상은 반정부 세력을 대변하는 상징이 됐죠. 카디피가 처벌할 수 없었던 유일한 인물이었으니까요.” 리비아 태생으로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하페드 왈다 교수는 말한다.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묻곤 했어요. ‘오늘은 세베루스 황제가 무슨 말을 했지?’ 그래서 카다피는 그 동상을 갖다 버리게 했는데 렙티스 마그나 시민들이 버려진 동상을 되찾아 황제가 태어난 곳으로 가져온 거죠.” 그렇게 그곳에 옮겨진 동상을 내가 우연히 보게 됐죠. 동상은 한 나무상자 속에 고이 누워 새로운 리비아에서 자신이 맞게 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다피는 이 동상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과거에 리비아가 지중해의 한 지역으로서 바다 건너 세계와 활발히 교류하며 엄청난 문화·경제적 풍요를 누렸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장장 1800여km에 걸쳐 해안선이 펼쳐지고 주변의 고원지대가 차츰 반건조 지대의 와디(건천)로 이어지다 마침내 텅 빈 구릿빛 사막으로 바뀌는 리비아는 오랫동안 상업과 예술 교류가 활발하고 억누를 수 없는 사회적 열망이 표출되던 곳이었다. 렙티스 마그나, 사브라타, 오에아 세 도시를 잇는 트리폴리타니아 지역은 한때 로마 사람들에게 밀과 올리브를 공급하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다피는 리비아가 이탈리아와 그리스 바로 남쪽에 있어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 중 하나라는 점, 영토가 이탈리아의 6배인데도 인구는 700만 명이 채 안 돼 인구를 관리하기 쉽다는 점, 원유 매장량이 엄청나다는 점 등 리비아의 여러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는 개혁을 막고 표현의 자유도 압살했다. 초등학생들은 카다피가 집필한 <녹색서>로 그의 왜곡된 철학을 암기한 탓에 리비아의 역사가 두 시기로 나뉜다고 알고 있었다. 하나는 서방 제국주의의 군홧발에 짓밟힌 암흑 시대이고 또 하나는 ‘형제 같은 지도자’ 카다피가 이끈 영광의 시대다.


이제 독재자 카다피와 그가 왜곡한 리비아의 모습은 사라졌고 전국이 환골탈태의 처절한 진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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