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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발자취를 찾아서

글 : 톰 오닐 사진 : 레나 에펜디

간디가 서거한 후 인도는 변했지만 ‘위대한 영혼’은 인도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그는 여느 날처럼 힌두교 수도원 아쉬람에서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사바르마티 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공터에서 기도 모임을 이끌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는 전통 의상인 도티를 입고 어깨에 숄을 걸친 채 대나무 지팡이를 쥐고서 문을 나섰다. 지난 13년간 그의 청빈한 삶과 숭고한 사상을 따르던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던 공동체를 떠나려는 것이었다.


모한다스 간디는 혼자가 아니었다. 간디가 자신의 고향 인도 구자라트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아마다바드 외곽의 흙길에 발을 디디자 그 뒤로 흰 옷을 입은 남성 78명이 둘씩 짝지어 줄을 섰다. 그를 응원하거나 호기심에 나온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길 양쪽을 가득 메운 채 “간디 키 자이”라고 외쳤다. ‘간디에게 승리를’이라는 의미다.


때는 1930년 3월 12일이었다. 간디는 인도 내에 서 인도인들의 소금 채취를 금지하는 불공정한 영국의 소금법에 저항하기 위해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아라비아 해까지 25일간 약 388km를 걸었다. 극적인 몸짓에 능했던 그는 해변에 이르자 허리를 굽혀 소금기를 머금은 진흙을 한 움큼 들어 올렸다. 그 이후 불법적인 소금 채취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갔고 체포와 폭행이 잇달았다. 간디는 9개월 가까이 투옥 생활을 했다. 당국이 하찮은 정치극으로 치부했던 이 행진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확산됐다. 신분과 성별, 그리고 힌두교든 이슬람교든 상관없이 수많은 인도인들이 처음으로 하나가 돼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항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지도자가 있었다. 간디는 소금 행진을 시작한 날부터 18년 후 사망할 때까지 인도에 정치적·영적으로 혁명적인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주의 철학을 ‘사티아그라하’, 즉 진리의 힘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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