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 연결되는 세계
광섬유와 무선 통신망을 통해 이메일과 아이디어들이 전 세계로 전달되고 있다. 통신망으로 연결된 오늘날의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케이블이나 마찬가지이며 더 이상 거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워싱턴 DC 바로 위쪽에 위치한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 보도를 따라 작은 주황색 깃발들이 늘어서 있다. 나는 이런 깃발들이 보이면 인부들이 와서 땅을 판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제 조만간 인부들이 깜박이는 경고등과 굴착기를 가지고 와서 뭔가를 파묻기 위해 길을 파헤치느라 차량 소통을 지연시킬 것이다. 그런데 뭘 묻으려는 걸까?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전화국 인부들을 감독하고 있는 마틴 J. 드로니를 만나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에 대해 설명을 들어보았다. 여기서 세계란 육지와 해저에 매설된 케이블과 급성장중인 인터넷, 그리고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메일의 세계를 말한다. 특히 인터넷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양의 정보를 토해내며 그 규모도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다. 또한 이 세계는 통신망에 '연결된 인구'와 평생 전화조차 걸어본 적이 없는 수억 명의 '연결되지 않은 인구'를 갈라놓는 '정보화 격차'가 존재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의 통신 케이블은 1850년에 첫 선을 보였는데 새뮤얼 모스가 전신(電信)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한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영국 기술자들은 구리선으로 만든 케이블을 절연성이 강한 구타페르카(고무와 비슷한 말레이산 나무의 수액)로 코팅한 다음, 이 케이블을 영국 해협의 해저에 부설했다. 곧 이어 대서양 횡단 케이블이 부설되었다. 1858년 8월 16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미국의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에게 100단어로 이루어진 메시지를 보냈다. 여왕의 메시지 중 일부는 당일 워싱턴에 도착했으나 나머지는 그 다음날인 17일에 전달되었다. 이 케이블은 속도가 너무 느리고 신호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3주 만에 사용이 중지되고 말았다. 케이블을 흐르는 전기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고 확신한 기술자들은 다시 케이블 부설을 시도했고 이번에는 당시 세계 최대의 선박이었던 그레이트 이스턴호가 동원되었다. 이 선박은 1865년 7월에 선원 500명과 짐을 끌 황소 12마리, 신선한 우유를 제공해줄 암소 1마리, 베이컨을 공급해줄 돼지들을 잔뜩 싣고 영국을 출발했다. 물론 절연체를 두껍게 입힌 4500km 길이의 케이블도 실었는데 무게가 무려 4500톤이었다. 하지만 케이블 부설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에 케이블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 이듬해에 가서야 성공을 거두었다. 19세기에 시도된 케이블 부설 작업은 20세기에 와서도 꾸준히 이어졌는데 1866년에는 분당 12개의 단어밖에 전달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분당 200단어 이상을 전송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901년에는 무선 전신이, 1927년에는 상업용 전화가 전파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기 시작하면서 케이블은 경쟁에 처하게 됐으며, 1956년에 이르러서야 대서양 횡단 전화 케이블이 부설되었다. 그러나 1965년에 최초의 상업용 통신위성인 인텔샛 1호가 궤도에 진입하자 케이블은 다시 구식이 되고 만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광섬유가 등장하자 케이블은 다시 각광을 받게 됐으며, 미국에서 유럽·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연결되는 통화는 대부분 케이블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 데이터 패킷(통신망에서 블록으로 송신되는 정보의 단위)을 전송하기도 하는 광섬유 케이블은 80여 개국에 연결돼 위성이나 이동전화보다 훨씬 많은 통화량을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위성과 이동전화는 케이블 연결이 안 돼 있는 지역에 무선 통신망을 제공함으로써 정보화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