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인스타그램 보기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키즈

매거진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우편번호: 아칸소주의 머프리즈보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기념품으로 사가라는 광고판,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우일하게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다이아몬드 광상이 있어, 채굴꾼이건 관광객이건 하루에 5달러만 내면 보석을 캐갈 수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셜리 스트론은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18개월 동안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4m 깊이로 파놓은 구덩이에서 퍼낸 흙 한 양동이를 체에 막 쏟아 부었을 때였다. "체에 그게 있는 거예요." 셜리는 그 전에도 다이아몬드를 여러 개 발견했지만 이렇게 큰 것은 처음이었다. 3캐럿이 넘었다. "그게 뭔지 한눈에 알아봤죠. 잽싸게 집어들고는 꽉 움켜쥐었어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근처에서 다이아몬드를 찾고 있던 친구이자 조언자인 제임스 아처를 향해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을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그녀가 손바닥을 펴보이자 제임스는 놀라 소리쳤다. "세상에, 대단한 걸 건졌군." 그날 이후로 셜리는 유명해졌다. 적어도 아칸소주 파이크 카운티의 머프리즈보로에서는. 이곳의 별명은 '다이아몬드 도시'다. 다이아몬드가 없다면 머프리즈보로를 도시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1764명의 주민(셀마 사이먼 시장은 인구조사 결과가 실제보다 적게 나왔다고 미심쩍어 하지만)이 인근 도시로 출퇴근하거나, 타이슨 식품에 납품할 닭을 기르거나, 근처 소나무숲에서 벌목하며 살아가는 아칸소주 남서쪽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먼 옛날, 화산이 폭발하면서 지구 깊숙한 곳에서 이곳으로 용암이 흘러나왔다. 용암에는 다이아몬드가 섞여 있었는데, 근 100년 전 8월의 어느 날 오후, 자기 땅에서 금을 채취하던 한 농부가 흙 속에서 반짝이는 결정체 두 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침식이 진행되는 분화구 속에 수천 년 동안 묻혀 있었다. 곧 이어 본격적으로 다이아몬드 광산이 생겨났지만 수익성이 별로 없어 1919년 화재 발생 이후 복구되지 않았다. 나중에 생긴 광산들도 경영부실과 소송 등에 의해 급속도로 위축됐고 결국 1949년에 마지막 광산이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다가 1972년에 주정부가 광산을 포함한 360ha의 다이아몬드 분화구 주립공원을 조성해 개방하자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다이아몬드의 환상을 품고 이곳을 찾고 있다. 분화구의 흔적은 예전에 사라졌지만 누구든지 주립공원 안에 있는 15ha 면적의 다이아몬드 광상(채굴이 쉽도록 정기적으로 쟁기질을 해줌)에 들어가 보석을 캐면 갖고 나갈 수 있다. 삽·양동이·체는 빌릴 수 있고, 입장료는 5달러다. 6월의 어느 날 오전 7시 30분. 기온은 벌써 25°C를 넘어서는데 셜리의 친구 제임스는 공원 입구에서 참을성 있게 개장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난 제임스(76)는 오래된 채찍처럼 강인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30년 간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여기 와서 10세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가장이 된 뒤로 늘 그랬듯이 열심히 일을 한다. 다이아몬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내 글래디스가 이곳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때부터 시작됐다고. "나도 작은 다이아몬드를 하나 캐봐야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2년이 지나고야 겨우 하나 발견했을 정도죠." 그 후 제임스는 적어도 5000개를 더 캐냈다. 그렇다고 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주립공원까지 매일 왕복 50km를 오갈 기름값 정도는 된다. 대부분의 원석은 1캐럿도 안 되는데 그는 그것조차도 주민이나 보석상에 헐값으로 판다. 제임스는 이런 전력 덕분에 광산에서 비공식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연간 5만5000명에 이르는 이곳 방문객들에게 그는 "분화구의 비밀"을 잘 아는 "살아 있는 전설"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날 아침 나와 얘기를 나누다가, 매일 이곳을 찾는 단골로 우리 근처에서 서성이는 남자를 가리키며 재미있다는 듯이 "저 사람은 내가 오늘 어디를 파나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셜리의 집안은 벌목으로 생계를 꾸렸다. "온 가족이 숲에서 일을 했어요. 비가 오면 한푼도 못 벌었죠." 그러나 목재보다 다이아몬드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항상 광산 쪽에 마음이 끌렸다. 그녀는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뒤에도 채굴을 계속했다. 그 큰 다이아몬드는 은행에 맡겨놓았는데, 단 한 차례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금주법을 철저히 시행하는 파이크 카운티에서 주류 판매가 허가된 유일한 멤버십 클럽인 팀버즈의 당구대에 놓고 굴려보며 불빛 아래서 반짝이는 모습을 자세히 본 것이다. 그날 그녀는 다이아몬드를 청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는데 "푸근한 느낌"을 받았다고. 마침내 셜리는 발견한 지 8년 뒤 뉴욕의 보석 연마소로 원석을 보냈다. 원석을 1.09캐럿짜리 라운드 브릴리언트컷으로 연마하고 감정을 받는 데 3000달러가 들었다. 이 보석은 투명도·색상·연마 상태에서 최고 등급인 D-FL을 받았다. "D-FL 등급은 그 다이아몬드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아주 희귀하다는 말이죠." 셜리의 설명이다. 그녀는 그 다이아몬드에 남편의 성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성업하던 시절 이곳에서 일했던 존경하는 친척의 성을 합쳐 '스트론-와그너'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이아몬드의 감정 소식이 전해지자 아칸소주의 데모크래트-가제트지는 "10억 개 중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다이아몬드!"라며 대서특필을 했다. 그리고 어떤 아랍 부호가 그것을 30만 달러, 어쩌면 100만 달러에 사겠다고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이 보석은 분화구에서 나왔으니 분화구에 있어야 한다"는 셜리의 생각 때문에 주정부는 3만4700달러를 모금해 그녀의 다이아몬드를 매입했다. 그리고 반지로 세팅해 공원관리본부 입구에 전시해놓았다. 주위에서는 셜리가 감상에 빠져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사상 최고로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발견해놓고 그냥 내버린 셈이죠." 한 이웃의 말이다. 그러나 셜리는 이런 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다이아몬드를 판 돈의 일부로 그리슨 호수 위쪽 숲 속에 있는 집을 샀다. 지금은 E-Z 마트에서 밤 10시에서 새벽 6시까지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 주간 매니저로 승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채굴을 한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러면 광산이 뭔가를 선사할 거예요." 그녀의 조언이다.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