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 유물들
터키 앞바다에서 기원전 5세기의 난파선이 발굴됨에 따라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됐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선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가족들은 알았을까요? 혹시라도 알았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잠수정을 타고 2400여 년 전에 침몰한 소형 상선의 유물들 바로 위를 지나고 있을 때 존 카운슬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더니 계속 말을 잇는다. "당시엔 무전기도 없었고, 해공(海空) 합동구조대 같은 것도 없었잖아요. 그러니 누가 알았겠어요?"우리는 터키 쪽 에게해 바닷속, 둥근 아크릴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잠수정 안에 앉아 있었고, 밖에서는 고고학자 엘리자베스 그린이 암포라(양손잡이가 달린 항아리)를 인양 바구니에 옮겨 담고 있었다. 그녀 뒤로는 바위가 많은 계곡이 보이고 거기에는 비슷하게 생긴 항아리들이 울퉁불퉁한 갈색 빙하 덩어리처럼 널려 있었는데, 그 거리가 10m는 족히 됐다. 또다른 고고학자는 현장을 뒤덮고 있는 침전물을 진공 흡입하고 있었는데, 손을 휘휘 저어 모래가 흡입관 입구로 빨려들어가도록 했다. 좀더 멀리에서는 두 명의 잠수부가 줄자로 꼼꼼히 재면서 펜으로 플라스틱판에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고, 또 한 명은 해저 바닥에 깔려 있는 유물들 위에 쌓인 단단하고 두꺼운 석회질층 더께를 벗겨내고 있었다. 모두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런 수심에서는 오전 임무를 20분 만에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간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난파선을 탐사해왔지만, 늘 측정·기록·발굴·유물 인양으로 이어지는 작업에 몰두하느라고 난파선 희생자들의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 그리고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구하다가 죽어갔을 그들의 절규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2000년 여름이 돼서야 존 덕분에 발굴작업의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다른 측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고학자가 아닌 그가 2인 잠수정 캐롤린호를 조종해줘서 우리 편에서는 발굴현장을 몇 시간이고 관찰하는 것이 가능했고, 존은 난파선에 대해 궁금한 것을 내게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배는 단순한 난파선이 아니다. 1996년 투펀 투런리가 내가 있는 텍사스 A&M 대학의 해양고고학연구소(INA)로 전화를 걸어왔는데, 당시 탐사선 비라존호에 승선해 있던 투펀은 터키 해안을 따라 INA 연례 수중탐사작업에 참여해 잠수부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난파된 배 한 척을 발견했어요. 수심은 40m쯤 되는데, 아름다운 암포라 수십 점이 모래에 묻혀 있는 게 보인다구요." 10분 만에 나는 그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충분히 알아들었네. INA에서 그 난파선을 다음 발굴 프로젝트로 정하기로 하지"라고 말했다. 투펀은 내가 그렇게 빨리 결정해준 것에 대해 지금까지도 놀라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