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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다코타주, 픽스타운

남중부, 미주리강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위에는 2차대전 직후 육군 공병대가 보여준 &#39하면 된다&#39는 불굴의 정신과 자연을 통제하겠다는 오만이 깃들인 기념비가 서 있다. 바로 픽스타운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남중부, 미주리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는 2차대전 직후 육군 공병대가 보여준 '하면 된다'는 불굴의 정신과 자연을 통제하겠다는 오만이 깃들인 기념비가 서 있다. 바로 픽스타운이다. 픽스타운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주리강에 건설된 대형댐 5개 중 첫번째 댐을 건설하려고 모여든 인부들로 북적대던 활기찬 마을이었다. 이 댐의 명칭은 '시팅 불'(19세기에 미 기병대의 한 부대를 전멸시켜 유명해진 수족(族) 인디언 추장)이 수감된 적이 있는 근처의 옛 요새의 이름 '포트 랜돌'을 그대로 따왔다. 이곳은 댐 건설 인력의 갑작스런 유입을 감당하기 위해 공병대가 픽스타운이라는 마을을 새로 세워야 할 만큼 외진 곳이었다. 내가 일곱 살이던 1948년, 우리 가족은 사우스다코타주 서부에 있던 군기지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다.
우리가 방 3칸짜리 연립주택에 입주한 후에도 주변은 계속 공사중이었다. 도로가 포장되고, 병원·교회·경찰서를 비롯해 여러 시설들이 속속 세워졌다. 나는 최신식 교실과 운동시설을 갖춘 2층짜리 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아버지는 픽스타운 유지보수반의 중장비 기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우체국에 근무했다. 그때 나는 우체국에 붙어 있는 FBI의 일급 현상범 포스터를 열심히 보곤 했는데, 이들이 픽스타운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구가 급속히 늘어 3500명에 이르면서 마을에는 현상범들만 빼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타난 것 같았다. 미시시피주에서 온 불도저 기사, 몬태나주에서 온 용접공, 미네소타주에서 온 트럭 기사, 오클라호마주에서 온 정비사도 있었다.
우리 옆집에는 남부 일리노이주에서 온 아마추어 컨트리 & 웨스턴 음악가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우리집과 벽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 음악을 틀면 그 소리가 다 들리곤 했다. 그 덕에 나는 지금까지도 에디 아널드가 불렀던 '캐틀콜(Cattle Call)'의 가사를 대부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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