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생명의 숨결을 나누며
야자수, 훌라춤, 와이키키 해변 등이 연상되는 하와이의 원주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와이 왕국은 100여 년 전에 사라졌고 문화도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신세대가 자기 뿌리를 찾기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아예 섬의 주권 회복 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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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퍼드 네이올레이는 "내가 하와이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훌라를 통해서였죠"라고 말하며 훌라는 하와이어뿐만 아니라 역사와 가계, 그리고 영성(靈性)을 가르쳐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훌라를 추려면 하와이의 정체성을 이해해야 하므로 하와이 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배우게 된다고도 말했다. "훌라는 곧 삶이죠." 제39회 메리 마너크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할라우가 공연하던 날 레이모미 호가 내게 말했다. 이 페스티벌은 하와이섬 동부에 있는 힐로에서 일주일 간 열리는 연례 훌라 축제이며 레이모미는 '쿠무 훌라', 즉 훌라 교사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걷기도 전에 훌라를 먼저 가르쳤고 그녀도 자신의 딸에게 훌라를 가르쳤다. 레이모미의 할라우는 그날 밤 칼라카우아왕을 찬양하는 훌라를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1874년부터 1891년까지 하와이를 통치한 이 왕은 샴페인과 음악을 좋아하고 활기 넘치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메리 마너크(Merrie Monarch), 즉흥겨운 군주라고 불렸다. "훌라에 관심이 지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레이모미의 말이다. 축제 개막식 날 나는 조지 나오페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70대 후반의 노인인 그는 챙이 넓은 붉은색 모자와 붉은색 셔츠 차림에 참석자들이 준 화환들을 걸고 있어 아주 멋져 보였다. 쿠푸나인 조지 '아저씨(쿠푸나는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로 불린다)'는 1960년대 초에 전통 훌라인 '카히코'를 다시 소개하는 이 페스티벌을 출범시키는 데 일조했다. 당시 그는 공원 및 레크리에이션 담당 국장이었다. "카히코는 하와이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구비문학(口碑文學)인 셈이죠." 조지 아저씨의 말이다. 훌라는 선교사들이 들어온 후에도 살아남았다. "농촌에서는 훌라를 계속했죠. 전통은 농촌에서 살아남았어요. 도시에서가 아니라." 거의 40년 된 메리 마너크 페스티벌은 과거의 훌라 형태를 부활시켰을 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훌라가 출현하는 데도 기여했다. 현재 카히코는 20~30명의 젊은 남녀들에 의해 신명나게 공연되고 있으며, '오아나(현대 훌라)'는 보다 풍성한 멜로디와 관능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