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겨울철 야생동물
겨울철 일본에서는 눈 덮인 새하얀 산봉우리와 증기가 솟아나는 온천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홋카이도와 혼슈의 산악지대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혹한을 견뎌내는 두루미, 큰고니, 일본원숭이 등 각종 야생동물들이 신비감을 더해준다. 과연 일본인들은 인간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이 야생동물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다른 계절이라면 우리는 20명,녀석들은 몇 마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겨울인 지금 우리는 20명, 녀석들은 150마리다. 시끌벅적한 우리는 조류관찰자·과학자·사진가들로 구성돼 있는 호모 사피엔스이고 녀석들은 그루스 자포넨시스, 그 유명한 희귀조 두루미다. 들판은 하얗고 가장자리의 상록수 숲은 짙은 푸른색이다. 고운 눈으로 뒤덮인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들판에 덩치 큰 흰 두루미들이 몰려든다. 널찍한 양 날개의 검은 셋째 날개깃이 우아한 버슬(스커트 뒤를 부풀리기 위해 덧댄 허리받이)처럼 꽁무니를 덮고 있다. 일본에서 '단쵸(丹頂)'로 알려진 두루미는 아메리카흰두루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희귀한 두루미종으로, 전세계에 서식하는 개체 수가 2500마리도 안 된다. 다른 계절에는 자기 영역을 철저히 고수하는 녀석들이 지금은 왁자지껄하게 한데 모여 농민들이 뿌려놓은 겨울 먹이를 쪼아먹느라 정신이 없다. 근처 강의 보금자리에서 날아온 여섯 마리가 미끄러지듯 내려와 다른 녀석들 사이에 사뿐히 내려앉더니 머리를 숙여 흩어져 있는 옥수수를 쪼아먹는다. 머리는 심홍색 모자를 쓴 것 같은데 마치 눈 위에 뿌려진 피처럼 선명하게 빛난다. 일본어에는 가슴에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어떤 덧없는 사물의 절절한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느낌을 의미하는 '아와레(あはれ)'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물의 연약함이나 상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의 소멸이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가리킨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어 두루미들이 한데 모여 있는 환상적인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어 신이 났고, 한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새들이 한데 모여 부리로 날개를 가다듬고 날갯짓을 하며 열정적인 구애의 춤을 추는 광경을 보려고 사람들이 비행기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버스·기차·페리를 타고 이곳에 와서 폭설 속에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일본인들이 두루미를 경이롭게 여기고 지극히 사랑해 예술의 소재로 끊임없이 사용하는 것 또한 놀랄 일이 아니다. 겨울철 일본에서만 이러한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고 두루미와 독수리에서부터 일본원숭이와 일본사슴에 이르는 동물들이 무리 지어 홋카이도와 일본열도 최대 섬인 혼슈(本州)의 산악지대에 있는 작은 천연 및 인공 피난처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 장관도 펼쳐진다. 이들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 중 일부는 수가 많거나 또는 지나치게 많은 경우도 있다. 반면에 수렵으로 멸종위기에 처하거나 인간의 침입으로 마지막 자연서식지에서 쫓겨난 희귀종들도 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섬나라 일본이기에 소규모 서식지에 이들 동물이 몰려 사는 풍경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그리고 때로는 깜짝 놀랄 만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홋카이도에 온 것은 이러한 장관 속에 내재한 교훈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야생과 생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수수께끼 같은 관계에 대해 어떤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