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바족
수단의 누바족은 정부로부터 배척당하고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음에도 종족의 전통을 고수하며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수단의 통치자들에게 이교도로 낙인 찍힌 누바족은 전통을 고수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누바족 전통 씨름 대회에서 상대편을 쓰러뜨린 한 어린 선수가 승자에게 뿌려주는 재로 축복을 받고 있다. 반세기 전에는 우승한 전사에게 같은 편 동료가 목말을 태워주었다. 수단의 내전 동안, 누바족은 정부군의 공격과 봉쇄 조치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려 체격이 왜소해졌다. 하지만 인고의 세월을 보낸 끝에 누바 산맥에서 전쟁이 끝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된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문화가 살아남게 되리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누바족 여인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이들이 짐을 나르는 유일한 방법) 언덕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다. 평원지대에 사는 누바족 사람들은 내전이 발생할 때마다 이런 구릉지대로 피난하곤 했다. 1985년, 남부에 근거지를 둔 반군인 수단인민해방군(SPLA)은 누바족의 터전인 수단 중부의 누바 산맥에 침투했다. 당시 수단 북부의 아랍화된 이슬람계 다수파에게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오면서도 전통을 고수하고 있던 소수 종족 중 하나인 누바족 부족원의 상당수가 반군에 가담했다. 그러자 누바족 전체를 적으로 매도한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산맥을 포위하고, 마을을 점령했으며, 평원에서 테러를 자행했다. 마을과 농장을 불태우는 것은 물론 마을 사람들을 납치하고, 죽이고, 부녀자들을 강간하기도 했다. 누바족 사람들은 이를 피해 구릉지대로 숨어 들었지만 끼니를 해결할 만큼 충분한 곡물을 재배할 수가 없었다. 한편 하르툼의 수단 정부는 누바족이 먹을 것이 없 으면 항복할 것으로 보고 인도적인 차원의 항공 원조를 금지시켰다. 그 결과, 수만 명이 사망했고, 수십만 명이 정부가 만든 '평화 캠프촌'에 강제 수용됐다. 생존자들 100만여 명 가운데 35만 명은 반군 지역에 머무르고 있다. 오랫동안 내전의 고통을 겪고 살아남은 여성들이 피부에 윤기를 주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참기름을 혼수로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아랍 세계와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 누바 산맥 근처로 수단의 송유관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일대를 둘러싼 전쟁은 전략상 중요하다. 바위투성이인 구릉 아래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축에 드는 토지가 펼쳐져 있어 경제적 가치도 크다. 또한 이 지역은 문화적으로도 중요하다. 언론인 오즈월드 아이튼은 누바족이 사는 이 일대를 "두 가지 삶의 방식이 만나는 최전선"이라 일컫는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누바족은 아랍계가 지배하는 수단 북부에서 검은 아프리카의 섬을 이루고 있다. 누바족 사람들은 대부분 아랍어를 사용하고, 절반 정도는 이슬람교도다. 하지만 수단의 아랍인들은 전통 치료요법이나 벌거벗고 지내기, 맥주 마시기, 여자 씨름과 같은 누바족 관습들을 업신여긴다.강인한 정신 수수 맥주를 마시고 취한 누바족 사람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에서 길게 줄을 이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모피, 구슬, 진흙 등 눈에 띄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동원해 몸을 치장했다. "열광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100명이 됐지요. 광란의 축제는 남녀가 언덕으로 달려가 씨름판을 벌이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서너 무리들이 풀풀 날리는 먼지 속에서 웃으며 뒹굴더군요. 여자들이 남자들을 땅바닥에 쓰러뜨리기도 했어요!" 사진기자 메러디스 데이번포트가 말했다. 이후, 좀더 차분한 의식에서는 부족의 치료사인 '쿠저스'들이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상징적인 뜻으로 지난해의 액운들을 묻었다. 2001년, 누바족은 한때 정부군의 공격을 받아 거의 몰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미국의 중재 하에 휴전이 성립돼 누바 산맥에서 전쟁이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