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커거위아
새커거위아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십대에 아기 엄마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루이스와 클라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능력 있는 통역관이었다는 사실뿐이다. 과연 그녀는 누구일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메리웨더 루이스 대위와 윌리엄 클라크 중위가 이끄는 이른바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대'는 1805년 5월 14일,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날 밤 미주리 강에 몰아친 거센 바람은 재앙을 예고하는 듯했다. 오후 늦게 갑작스럽게 돌풍이 일면서 탐험에 필수적인 장비들이며 교역 물품, 종이 등을 실은 흰 보트 한 척이 뒤집힐 뻔한 것이다. 루이스의 탐험 일지에 따르면 "탐험의 진행과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을 거의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 보트의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은 하필이면 탐험대의 통역을 맡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모피상(毛皮商) 투생 샤르보노였다. 그는 위기가 닥치면 겁부터 먹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헤엄칠 줄도 몰랐기 때문에 루이스의 말마따나 "세상에서 가장 겁이 많은 선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루이스와 클라크는 당시 강기슭에 좌초돼 옴짝달싹도 할 수 없던 터라 대원들을 진정시키고자 공포(空砲)를 발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물결은 점점 높아졌고 강물은 뱃전까지 차올랐다. 샤르보노는 큰 소리로 신의 가호만 빌 뿐 놓쳐버린 키조차 다시 잡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루이스가 강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얼음장같이 차갑고 거친 물 속에서 보트까지 275m를 헤엄쳐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 나간 행동이었다. 보트에 타고 있던 다른 대원이 키를 잡지 않으면 쏴버리겠다고 위협을 하자 샤르보노는 비로소 제정신을 차렸다. 이런 고함과 총성, 거센 물결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기지를 발휘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샤르보노의 스무 살도 채 안 된 어린 아내, 새커거위아였다. 탐험대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휩쓸려가는 물건들을 낚아채 건져올렸다. 하루하고도 한나절이 지난 뒤 물에 젖었던 물품들 대부분이 말라 다시 짐을 꾸린 후에야 루이스는 최악의 사태를 면했음을 깨달았다. "인디언 여성 새커거위아가 사고 당시 보트에 있던 어느 대원에도 뒤지지 않는 결단력과 용기를 보여주며 떠내려가던 자잘한 물건의 대부분을 건져냈다." 루이스가 5월 16일자 탐험 일지에 적은 내용이다. 이 부분은 루이스의 일지에 기록된 새커거위아에 관한 짧지만 동시에 매우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 새커거위아는 미화 1달러짜리 금화에 새겨진 주인공으로, 일반에는 주로 미국 전설 속에 등장하는 불굴의 여성으로만 알려져 있다. 소설가들이나 여권운동가들이 이 여인에게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투영한다거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그녀를 자신들의 부족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이처럼 그녀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한몫했을 것이다. 모두 그녀를 한 사람의 인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커거위아는 정녕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녀 생전에 제작된 초상화는 없으며 유품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 일지에 기록된 얼마 안 되는 내용마저도 전부 백인 남성들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여성이자 인디언이었던 그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대하기란 힘든 노릇이다. 새커거위아에 대한 기록이 당대에 살았던 어떤 인디언 여성에 관한 기록보다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이 탐험 일지 덕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루이스와 클라크를 처음 만났을 때 새커거위아는 17세 정도였고 첫 아이를 임신중이었다. '코어 오브 디스커버리(Corps of Discovery)'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탐험대는 1804년 11월, 현재의 노스다코타 주에 해당하는 미주리 강 상류의 만단족(族)과 히다차족 영역에 당도한다. 이 농경 부족들이 백인들에게 우호적이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겨울을 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새커거위아는 13세쯤부터 미주리 강과 나이프 강이 합류하는 지점 인근에서 히다차족과 함께 생활했다. 현재 미국의 국가사적지인 그곳에서 나는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오후 나절을 보내며 새커거위아가 살았던 때를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원형대로 보존된 유적은 하나도 없었지만 아름답게 복원된 가옥 한 채를 보니 그 옛날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넓고 시원한 집 내부에서는 기분좋은 짐승 가죽이며 연기 냄새가 난다. 진흙과 나뭇가지로 엮어 올린 지붕에서는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황금 기둥처럼 햇빛이 쏟아진다. 그때 나는 새커거위아를 연구하는 에이미 모셋과 함께 있었다. 노스다코타 주 뉴타운 출신으로 만단족과 히다차족의 혼혈인 모셋은 호리호리하고 우아한 체형에 허리춤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린 검은 머리채 등 새커거위아처럼 꾸미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유치원에서 수녀원, 오토바이광(狂)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새커거위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강연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