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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핵심지역

"그건 사랑 얘기랍니다." 오염으로 탁해진 물 위로 배가 서서히 움직이자 이 지역의 유명한 환경운동가인 노아 아이데총이 말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이런 사랑 얘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비이브는 아름다운 소녀고 나무는 소년이에요. 소녀의 엄마는 거대한 조개구요." 그러고는 강물을 탁하게 만든 토사가 대량으로 유입된 이유 쪽으로 화제가 옮겨가자 그의 사랑 얘기도 잠시 중단되었다. 배가 갈색으로 오염돼 있는 강물을 지나 푸른 바다로 한참을 나아가서야 그 사랑 얘기를 마저 들을 수 있었다. 다 듣고 보니 그 얘기는 다름 아니라 내가 여행하고 있는 섬들의 생물다양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름답고 강렬하며 복잡다양한 반면에 염려스러운 이곳의 생태계 얘기 말이다. 나는 섬나라인 팔라우에서 노아를 만났다. 팔라우는 9개의 독립국과 18개의 속령, 미국의 하와이 주(州)로 구성된 미크로네시아-피지-폴리네시아 일대의 생물다양성 핵심지역에 속해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인 국제환경보존협회(CI)는 전세계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토종생물이 풍부한 25군데를 생물다양성 핵심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곳 생물다양성 핵심지역은 미 본토 면적의 2배가 넘는 바다에 흩어져 있는 1400여 개 섬들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생물다양성 핵심지역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여행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팔라우를 출발지로 정한 이유 중 하나는 노아가 들려준 이야기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녀 비이브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비이브는 사람이 아니라 새다. 팔라우 사람들은 팔라우에서만 사는 애기청비둘기류(fruit doves)의 한 종을 비이브라고 부른다. 나는 비이브뿐 아니라 널리 분포해 있는 비이브의 근연종(近緣種)들도 찾아보려고 했다. 비이브는 동남아시아에서 망망대해를 건너와 섬 곳곳으로 흩어져 서서히 진화해왔기 때문에 이곳의 다양한 생물학적 변화를 상징하는 새다. 거대한 생명의 산실인 이곳에서는 지금도 진화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들이 빚어지고 있다. 이 지역의 중요성은 우선 수치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서식하는 식물의 절반에 해당하는 3334종이 이 도서군(島嶼群) 외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토종생물의 비율이 이렇게 높은 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서식지는 매우 협소하다. 이 생물다양성 핵심지역의 육지 면적은 약 4만 6000km2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치만으로 이곳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실, 비이브와 그 근연종을 직접 찾아 다니다 보니 수치 따위는 큰 의미가 없었고 수많은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특한 한 개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비이브 소리를 처음 들은 곳은 내가 해파리를 관찰하기 위해 잠수했던 호수 근처에서였다. 경솔하게도 해파리에 쏘일 위험을 무릅썼던 것은 이 동물이 이 도서군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진화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곳 섬들에는 나름대로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돼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생물종들이 우연히 이 섬들에 도착해 정착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섬에 이주한 생물들은 이전에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접하게 되었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서식지에 적응해야만 했다. 이곳 생물다양성 핵심지역에 해당하는 1400여 개의 섬들은 각기 독립된 '진화 공장'이라고 할 만하다. 마찬가지로 팔라우의 섬들에서도 진화는 대단히 복잡다양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팔라우의 많은 섬들은 오래전에 형성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난 여러 차례의 빙하기에 흘렀던 담수에 의해 생성된 터널과 동굴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거나 싱크홀(석회암 함몰지)로 패어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1만여 년 전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했고 이런 천연 석조 배관들을 통해 물이 스며들면서 싱크홀에 호수들이 생겨났다. 석조 배관들은 내륙수를 염수화시켜 조수 간만의 영향을 받게 하지만 온갖 해양생물들이 바다와 호수들을 자유롭게 오가게끔 할 수는 없다. "팔라우의 호수들은 해양판 갈라파고스 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호수들이 고립돼 있었기 때문에 해양생물들의 진화 과정이 생생히 드러나지요." 생물학자 로라 E. 마틴이 말했다. 그녀는 역시 생물학자인 남편 마이크 도슨과 함께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해파리를 관찰하기 위해 나는 로라와 그녀의 동료 두 명과 함께 배를 타고 팔라우의 수도 코로르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향했다. 섬에 도착해서는 숲 속으로 수백m를 걸어들어가 호숫가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스노클과 오리발을 착용한 후 수온이 30°C 정도 되는 물속으로 잠수했다. 나는 곧바로 너울거리는 수백 개의 황금빛 덩어리들에 휩싸였다. 헤엄치며 나아가자 해파리들이 내 마스크에 슬쩍 부딪히거나 팔과 다리를 타고 미끄러지기도 하고 목과 발을 스쳐가기도 했다. 호수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마스티기아스해파리가 살고 있었다. 다행히 해파리에 쏘여도 자극이 미약해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아직 이 호수의 해파리는 별개의 종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수천 년 동안 독립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온 것은 분명하다. 매일 아침 해파리들은 호수 끝자락에 모여 일제히 물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자신들의 몸 속에서 자라면서 먹이를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조류(藻類)에게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을 쬐어준다. 녀석들은 대부분 호숫가에 드리운 홍수림 그림자의 경계선을 따라 헤엄쳐 다닌다. 오후가 되면 호수를 가로질러 되돌아간 다음 물속 깊이 내려가 필수 영양분을 섭취한다. 왜 이 호수의 해파리는 의식을 치르듯 이런 복잡한 행동을 할까? 어쩌면 팔라우의 다른 염호(鹽湖)와는 달리 이 호수의 물속 가장자리를 따라 대거 번식하고 있는 말미잘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미잘은 해파리를 잡아먹는다. 따라서 해파리들은 위험한 호숫가를 피하고 최대한 햇빛을 많이 쬐기 위해 그림자 경계선을 따라 이동하는 행동을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 외에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집단 행동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화의 한 사례다. 호수에서 배로 돌아오는 길에 난생 처음 비이브 소리를 들었다. 연이어 지저귀는 새 소리는 멀리까지 울려 퍼질 정도로 강렬했지만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울음소리는 한 음 한 음 단계적으로 짧아지다가 마침내 고요 속에 묻혀버렸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새가 어디서 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에 조류학자 필 부르너가 애기청비둘기류는 울음소리만으로는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새는 마치 복화술사 같아서 "이쪽에 있다 싶으면 실제로는 저쪽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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