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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시카

지중해에 있는 섬 코르시카는 지도상에서 분명 프랑스령으로 표기돼 있지만, 많은 코스시카인들은 프랑스인이길 거부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내가 코르시카에 온 것은 프랑수아 산토니의 장례식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고 말았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작은 산골 마을의 한 집에서 장례식 주인공인 산토니가 내 앞에 누워 있듯이, 코르시카와 프랑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내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섬에 머문 지 며칠도 채 안 돼 나는 이미 섬의 역사와 정치를 직접 대면하고 있었다. 복수와 폭력, 분쟁으로 얼룩진 코르시카인들의 복잡한 삶, 합병된 지 234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와 계속되고 있는 불화 등을 말이다. 프랑스 문화와 코르시카 문화가 뒤섞여 있는 이 섬의 분열상과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행은 장례식의 긴장된 분위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날 고지대의 화강암 골짜기 끝자락에서 거행된 장례식은 마치 각본대로 진행되는 전통극과 같았다. 장례식 참석자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나이든 미망인들은 깔끔한 계단 위에 말없이 서 있었고, 빳빳한 양복을 입은 노인들은 구부정한 자세로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수군거렸다. 대가족들이 8월의 뙤약볕을 피해 돌로 지은 교회 그늘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지중해 출신 배우들처럼 건장한 체격을 지닌 망자의 친구들은 거리를 활보하며 험악한 얼굴로 기자들을 노려보았다. 살해된 프랑수아 산토니(41)는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코르시카의 비밀 분리주의 운동에도 몸담았던 인물이다. 싸늘하게 누워 있는 그 역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커다란 체구에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던 산토니는 사흘 전 범죄조직들과 코르시카 민족주의가 뒤얽혀 있는 암흑가에서 정적에게 살해됐다. 사람들은 그가 옛 친구들의 행적에 대해 쓴 두 권의 책 때문에 보복을 당했다고 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종지기는 금방이라도 화석처럼 굳어져버릴 듯 나이가 많아 보였다. 마을은 종소리 말고는 완전히 정적에 쌓여 있어 심장 뛰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종지기가 당기던 줄을 갑자기 멈추자 총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드르르륵!!드르르륵! 이는 산토니의 집 근처 언덕 꼭대기에서 쏘는 기관총 예포 소리로, 코르시카의 범죄조직원으로 오랜 세력 다툼과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쓰러진 이 전사를 기리는 것이었다. 이 드라마는 수십 년 전, 아니 수백 년 전부터 높은 산마루와 향기 그윽한 마키(지중해 지방의 관목숲)를 배경으로 지금도 계속 상영되고 있다. 이런 풍경은 결혼식에 더 어울릴 것 같다. 바로 이런 면이 코르시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움이다. 코르시카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많은 청춘남녀가 결혼하기 위해 찾는 바닷가 낙원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영원한 반항아로서의 모습이다. 휴가철이 되면 프랑스인들은 코르시카의 산과 해변으로 몰려온다. 반면에 이 섬은 사반세기 동안 규모는 작지만 격렬한 분리주의 운동의 진원지로 정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낙원의 모습은 금방 눈에 띈다. 한쪽 해안에는 울퉁불퉁한 산들이 높이 2700m까지 솟아 있고, 다른 쪽 해안에는 해변과 포도밭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내륙에는 들쭉날쭉한 산맥을 중심으로 골짜기들이 양쪽 해안을 향해 죽죽 뻗어 있다. 이 골짜기들은 숲이 무성하고 경사가 매우 가팔라서 양쪽 주민들은 수백 년 동안 서로 동떨어진 채 살았다. 물론 가문 간에 뿌리 깊은 원한을 품고 복수전을 벌여야 하는 경우에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그 원한이란 대개 닭 한 마리를 훔쳤다거나 여자를 슬쩍 쳐다봤다는 이유로 발생했는데, 몇 세대를 거치면서 정작 사건은 잊혀지고 복수심만이 남곤 했다. 카스타그니시아 지역 밤나무 숲에는 조그만 집들과 거대한 성곽들이 산허리에 위태롭게 붙어 있다. 지난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코르시카를 휩쓸었던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그런 곳에 마을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스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무어인, 제노바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인들이 코르시카를 거쳐갔다. 이곳에는 해변, 사막, 산악지대 등 다양한 풍광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한때 이곳에 살았던 한 미국인 외교관은 185km에 걸쳐 토양과 바위로 이루어진 변화무쌍한 경관에 감탄하며 "코르시카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라고 했다. 그러나 낙원 같은 코르시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프랑수아 산토니의 장례식이 바로 단적인 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는 지하 조직들 간의 살육전 와중에 희생됐다. 분리를 추구하는 조직들은 코르시카의 민족 영웅 파스쿠알 파올리 장군하에서 자치를 누렸던 전성기(1755~1769년)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들은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폭력을 동원한 독립운동을 벌인다. 이를 테면 한밤중에 공공건물이나 해변의 신축 건물을 폭파시키거나 불어로 표기된 도로 표지판을 코르시카어로 바꿔놓기도 한다. 그런데 독립운동이 분열하고 조직범죄화하면서 서로를 죽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2001년만 해도 산토니 외에 27명의 남자들이 세력 다툼으로 희생됐다. 조직들은 대개 시민과 관광객을 상대로 한 폭력은 피하고 있지만 가끔씩 공무원을 표적으로 삼기도 한다. 일례로 1998년에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러 가던 코르시카의 프랑스인 지사가 저격을 당했다. 하지만 암살자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이런 모든 소동에도 불구하고 코르시카의 독립운동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독립을 추구하는 코르시카 나지오네라는 합법적 정당도 가장 최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17%의 의석을 확보했을 뿐이다. 지난 20년간 프랑스 전역에서는 지방 분권화 바람이 거세졌고, 코르시카가 이런 논란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이곳의 정세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중앙집권 체제의 프랑스는 단일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브르타뉴인, 바스크인, 알사스인, 사부아인, 코르시카인 모두가 같은 프랑스인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별도의 언어나 예외 규정을 소유할 권리를 주장하거나 지방 자치를 강화하려고 하는 것은 프랑스가 오랜 세월 자국에 대해 갖고 있는 정의, 즉 '하나이며 분리될 수 없다'는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프랑스 영토 전역은 파리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는다. 경찰, 고등학교 교사 선발, 급수설비, 소방서 등 지방의 모든 제도와 시설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갑자기 대두된 것은 아니다. 이미 바스크인과 브르타뉴인도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이 간직해온 문화의 고유성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코르시카인이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 그들은 끈질긴 요구와 끊임없는 폭력으로 분리주의를 프랑스 국정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시켰다. 코르시카인들은 교육, 도로, 공공사업 등 모든 부문에서 자치권을 증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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