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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족 셰르파

셰르파족의 기원 최초의 셰르파족은 1500년대에 티베트 동부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와 에베레스트 산 기슭에 정착한 것 같다. 현재 네팔 동북부에는 약 7만 명의 셰르파족이 살고 있지만, 등산 붐으로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려왔고 셰르파족의 신화를 만든 이들은 솔루-쿰부 지역에 사는 1만 명 정도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눈밭을 헤치며 8km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는 나의 생생한 체험담을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줘도 왜 그런지 전혀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이들에게 네팔 쿰중에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세운 고등학교에 다니는 하크파 셰르파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 하크파는 대학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 올해 16세인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매우 가파른 돌투성이 산길을 5시간이나 걸어서 등교한다. "장마철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겨울에는 눈을 맞으며 걸어요. 늘 힘들죠." 이렇게 말하면서도 하크파는 어려움 속에서도 밝은 면을 찾아내는 셰르파족 특유의 재능을 보여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3시간밖에 안 걸려요." 통학버스가 있다면 하크파가 등교하기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네팔 동북부의 독실한 불교도 종족인 셰르파족은 버스나 자동차는커녕 자전거 한 대 없이 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에베레스트 산 아래 면적 1100의 쿰부 계곡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포장도로가 전혀 없다. 쿰부의 셰르파족은 짐을 등에 짊어지고 어디든 걸어 다닌다. 좀 여유가 있다면 야크의 등에다 짐을 싣고 다니지만 역시 사람은 걷는다. 경비행기를 타고 루클라 마을의 임시 활주로에 내린 후, 거기에서 텡보체의 산에 우뚝 솟아 있는 사원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셰르파족 사람에게 물어보면 거리(23km)나 높이(그곳에서 1000m나 더 높음)가 아니라 시간으로 대답해준다. "텡보체? 거기는 나흘이면 도착할 거예요." 하는 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구인들에게는 장이 서는 마을인 남체 바자르까지 가는 데 이틀이 걸리고 거기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가 있는 곳까지는 엿새가 더 걸린다. 쿰부에 사는 셰르파 가족이 집을 새로 지으려면, 마루청부터 알루미늄 골판 지붕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건축자재를 등에 짊어지고 저지대에서부터 험준한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최근에는 서구식 편의시설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짐꾼이 대나무 바구니에 변기와 주방 싱크대를 담아 운반하는데, 그 뒤로 또다른 짐꾼이 최근 셰르파족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태양열 집열 온수 탱크를 끌고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셰르파족의 숙명처럼 보이는 걷기는 그들의 재산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53년 5월 최초의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계기로 관광 붐이 일어났고, 지금은 매년 2만 명 이상이 세계 최고봉들을 오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힘 세고 붙임성 있으며 사업 수완이 좋은 셰르파족은 세계적으로 다른 어떤 토착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광업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등산가들을 위해 높은 고지대로 짐을 운반해줄 뿐만 아니라, 6000m 이하 지역을 탐사하려는 많은 트레킹 관광객들의 가이드가 되어준다. 셰르파족은 300개가 넘는 숙박업소와 호텔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트레킹 여행 회사도 많이 소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사는 산악 종족 셰르파는 온화한 미소와 뚝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셰르파족이 해발 3000m 이상의 고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전적 특질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생 산소가 적은 환경에 적응해 살기 때문에 공기가 희박한 히말라야 산맥에서도 더 잘 버틸 수 있다. 그들은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보다 호흡을 더 빨리 함으로써 분당 더 많은 공기를 흡입할 수 있는 것이다. 셰르파족은 등산가로서 명성이 자자해 네팔 인구를 구성하는 30여 개 종족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해발 4000m 이하에 사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라이족, 타멍족, 머거르족 같은 셰르파족의 이웃 종족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셰르파'라는 말은 이제 상당히 친숙해져서 종족을 의미하기보다는 충실한 조수나 짐꾼 혹은 가이드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트레킹 관광업에 종사하는 셰르파족이라면 거의 누구나 고객에게서 "셰르파로 일한 지 얼마나 됐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네팔의 다른 소수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셰르파족도 그들의 종족명을 성(姓)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네팔에 사는 약 7만 명의 셰르파족 중 대다수가 등산이나 트레킹 업종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업으로 인해 불과 한 세대 만에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셰르파족은 주로 쿰부 지역에 거주한다. 서구인들이 들어오면서 쿰부의 비교적 큰 마을들에는 현대적인 편의시설들이 들어섰다. 남체 바자르에는 당구장, 피자집, CD점, 비디오 대여점이 생겼다. 관광업 덕분에 쿰부의 셰르파족은 비교적 부유해졌다. 부자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이웃 마을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잘살게 된 것이다. 인구의 80%가 자급자족하는 농부들로 구성된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약 1400달러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셰르파족의 평균 소득은 그 5배가 넘는다. 그 결과, 이제 셰르파족은 산길을 따라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보다는 주로 트레킹을 조직하거나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일은 그들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다른 종족들, 특히 쿰부에서 남쪽으로 일주일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지역 출신인 라이족이 많이 맡아서 한다. 내 친구인 니마 누루 셰르파는 수천 명의 다른 셰르파족과 비슷한 성공담의 주인공이다. 최초의 에베레스트 산 등정이 성공하기 8년 전, 니마가 쿰부의 한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가족은 다른 이웃들처럼 감자를 재배하고 있었다. "감자 재배는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돈벌이는 별로 안 돼요." 니마가 말했다. 그런데 그가 10대가 될 즈음인 1960년대 말에 등산업이 모든 셰르파족 소년들의 꿈이 되었다. 성실하고 쾌활하고 언어 습득이 빨랐던 니마는 영어, 독어, 일어를 구사하는 트레킹 가이드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모은 그는 루클라의 임시 활주로에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집 하나를 임대했고, 1993년에 그곳을 '에베레스트 숙박소'로 개조해서 지금은 호텔 및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숙박업으로 돈벌이가 잘되자 니마는 전형적인 셰르파족 성공 노선의 다음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아내 다와 하무 셰르파에게 호텔 경영을 맡기고 작년 가을 쿰부에서 200km 떨어진 카트만두에 '오센틱 에베레스트 트레킹'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호텔과 비행기와 셰르파 가이드를 예약해주고 각 건마다 수수료를 받는 사업이에요."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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