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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과테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적이었길래 그렇게 서둘러 떠나야만 했을까? 한창 번영을 누리던 마야 문명의 한 왕가 일행이 갑자기 들이닥친 적을 피해 자신들이 쌓아온 문화유산을 버려둔 채 급히 피신했다. 이제 오랜 세월 깊은 밀림 속에 묻혀 있던 아과테카에서 마야 상류층의 문화가 그 실체를 드러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마야 도시국가의 마지막 통치자였던 탄 테 키니치는 갑작스럽게 권좌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전성기 시절 그의 모습을 새긴 이 석탑이 쓰러졌듯이 말이다. 왕과 귀족들은 적들이 들이닥치기 전 수도 아과테카를 버리고 떠나버렸지만 그들이 누렸던 독특한 왕궁 생활의 흔적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아과테카는 고고학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유적지다. 순식간에 일어났던 도피 및 파괴로 당시의 현장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고고학자들로 구성된 우리 팀은 최근 800년경에 버려진 마야의 상류층 주거지를 발굴했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침입자들은 요새와도 같았던 이곳에 불을 질렀고 거의 모든 건물을 파괴했다. 이곳은 바로 지금의 과테말라(지도 참조) 지역에서 번성했던 수천 마야인들의 정치적 중심지, 아과테카의 심장부였다. 700년경에 성립된 강력한 마야 왕조는 아과테카와 도스필라스에 각각 수도를 건설한다. 그러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빈번해지자(2002년 10월 호 지구촌 이야기 참조) 지배 계층은 아과테카에 정착하게 된다. 쉽게 침략해올 수 없는 절벽 꼭대기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들은 결국 아과테카를 함락시켰고, 왕실 일가는 짐을 싸서 도주했다. 방어를 위해 남았던 충성스러운 신하들도 종국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주하거나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소유물들을 대부분 남겨놓은 채 말이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옥수수를 빻는 돌절구가 여러 개 출토된 점으로 보아 귀족들이 모여서 연회를 열고 의식을 거행했던 장소인 듯하다. 주거용으로 보이는 다른 건물에서는 시커멓게 그을기만 했을 뿐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묻혀 있던 도자기 인형이 발굴되었다. 아마 선조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인 것 같다. 우리는 아과테카 발굴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야의 문자를 통해 일부 귀족들이 예술가인 동시에 필경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를 뒷받침해줄 엄청난 양의 증거들이 나타나자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주거지에서 이들이 양 분야에서 활동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나무뿌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작업을 했던 우리는 한 건물에서 크기가 다른 18자루의 도끼를 발견했다. 마모도(磨耗度) 분석 결과 돌을 깨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왕실의 기념물 제작을 담당했던 조각가가 소유했던 연장 세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가옥에서는 300개가 넘는 황철광 모자이크 거울 파편과 함께 필경사들이 쓰던 도구들이 발견됐다. 규질암 판과 공이, 사암 접시를 이용해 안료를 만든 후 도자기 단지에 담아두고 썼을 것이다. 조개 껍데기로 만든 5cm 길이의 섬세한 원숭이 두상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의복용 장신구였던 것 같다. 마야인의 우주론에 따르면 원숭이는 필경사들의 수호신이었다. 도자기 향로 조각들을 이어 맞추니 또 다른 신의 얼굴이 드러난다(아래). 마지막 화재 때 산산조각이 난 이 향로는 옥수수 절구들과 함께 출토되었으며, 의식 거행시에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이나 기록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마야 통치자들의 의례용 가면이 이번 탐사에서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급히 탈출해야 했던 귀족들의 저택에는 유물이 가득한 반면 왕궁은 봉인된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 방에서 우리는 놀라운 물건을 찾아냈다. 바로 두 조각의 얇은 의례용 도자기 가면 파편들이었다. 마야의 가면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편을 모아 가면 한 개를 부분적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아래). 적의 침입이 임박하자 탄 테 키니치와 여왕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떠날 채비를 하면서 신성한 물품들을 숨긴 듯하다. 돌아올 생각이었겠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유물을 통해 우리는 이토록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어낸 이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적들은 단순히 아과테카를 정복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 도시국가를 지도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어했다. 숲 속에 위치한 이 도시의 마지막 며칠은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왕실 일가는 이미 도시를 빠져나갔고, 의례가 거행되던 시가지는 봉쇄되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귀족들은 음악 연주 등 전통 의례를 행함으로써 절박하게 죄어오는 위험을 잊으려 했을지 모른다. 이들이 연주했던 악기가 집집마다 남아 있었는데, 그 중에는 도자기 피리처럼 희귀하고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한 것도 있다. 남은 이들은 반복되는 일과를 행하며 불안을 떨쳐보고자 애썼을 것이다. 한 필경사는 왕족의 머리띠 장식을 닦고 있었을지 모른다. 쓰러진 석조 비석에서 탄 테 키니치가 예복의 일부로서 이와 유사한 머리띠 장식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침입자들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무자비하게 도시를 불사르고 떠나버렸다. 그 후 누구도 아과테카로 돌아와 다시 정착하지 못했고, 이곳은 재규어들만이 배회하는 열대우림 속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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