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더리 워터스
황혼녘 셰가와 호수에는 바람 소리만 윙윙거린다. 바람은 검은가문비나무와 소나무들을 헤치고 지나거나 차가운 수면을 내려치기도 하고 물수리와 갈매기를 하늘 높이 올려주기도 한다. 나는 미국 미네소타 주와 캐나다 국경에 걸쳐 있는 이 야생지대 근처에 사는데, 어느 여름 날 이곳을 답사해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이것은 아마 3, 4년 전 늑대에게 물려 죽은 무스의 뿔인 것 같다. 고슴도치와 다람쥐들이 칼슘을 섭취하려고 허옇게 바랜 뿔을 갉아먹었고, 새들도 벌레를 잡기 위해 기웃거린다. 하지만 이 캐나다어치가 다가온 것은 나 때문이다. 장난기 많고 남을 쉽게 믿는 습성을 가진 이 새는 사람에게 먹을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나 잘 따르는 것 같다. 녀석은 사촌뻘인 갈가마귀만큼 영리하다. 갈가마귀는 회색어치와는 달리 겁이 많고 의심도 많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갈가마귀의 깃털이 연못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야생이 노래하는 곳." 박물학자 시거드 올슨은 바운더리 워터스(Boundary Waters)를 둘러보며 이렇게 묘사했다. 바운더리 워터스는 미국 미네소타 주와 캐나다 온타리오 주 경계를 따라 숲과 호수들로 덮여 있는 지대를 일컫는다. 시거드는 이 땅이 너무 고요해 야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단순한 오감이 아니라 온몸으로 이 세계를 느껴보면" 영혼에 평온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즉, 아픈 동물이 본능적으로 약초를 찾듯이,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는 침묵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는 것이다. 현자(賢者)였던 시거드 옹(翁)은 1982년에 사망했다. 시거드가 작고하기 전에 나는 그와 함께 이곳 숲을 산책하고 호수에서 카누를 즐기기도 했다. 1978년 슈피리어 국유림의 수십만 ha가 '바운더리 워터스 카누 야생 지역'으로 지정돼 더욱 철저히 보호 받게 된 것은 시거드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이 지역에 도로나 댐 건설을 막고 비행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투쟁해왔는데, 가장 힘겨웠던 싸움은 모터보트 유입을 금지시키는 일이었다. 시거드가 이 사안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자, 그가 사는 마을 엘리에서는 그를 본뜬 인형이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카누냐, 모터보트냐의 문제를 놓고는 아직도 격렬한 논쟁이 일고 있다. 현재의 방침은 소음공해 없는 환경 유지를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에 몇몇 호수에서만 모터보트 운행을 허용하고 있다. 나는 엘리에서 동쪽으로 32km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이곳은 국유림에 둘러싸여 있고 카누 야생 지역과 인접해 있는데, 어떤 해에는 매달 눈이 내리기도 한다. 나는 모든 것을 정화시켜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눈을 아주 좋아한다. 봄이 찾아와 수천 개의 작은 섬들이 떠 있는 호수들마다 두꺼운 얼음이 꺼지기 시작하면, 경관이 너무 급격히 변해서 집 근처에 있어도 마치 장거리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는 눈깜짝할 사이에 여름이다. 이 고위도 지방에서는 여름도 갑자기 닥치기 때문에 날마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중요한 변화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여름철의 하루 하루를 사진에 담기로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오전 4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해가 떠 있어 낮이 가장 긴 6월 하지부터 9월의 추분 때까지 93일 동안 일상의 풍경을 하나하나 촬영했다. 우리 집 창문 밖에서 폭포가 되는 '저드 아저씨의 시내(Uncle Judd's Creek)'에서 출발해 캐나다 퀘티코의 호수까지 다녔다. 안개가 자욱한 6월 아침 푸른가슴왜가리가 가문비나무 위에 올라앉은 광경은 그야말로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위). 물론, 먹파리나 모기의 등살에 여러 날을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기는 아름다운 난초의 꽃가루를 옮겨 가루받이를 해주고 먹파리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테니 모두 자연계의 소중한 존재들이 아닌가! 시거드 올슨은 "정적의 시간이 없다면 깨달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비롯해 어떤 자연계에서든 야생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면 아무리 소란스러운 도시에서도 늘 영혼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시거드는 내가 갖고 있는 그의 저서 중 한 권에 이런 헌정사를 써주었다. "언제나 야생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 머물러 계시기를." 절기상으로 여름의 첫날은 하지이지만, 그 훨씬 전부터 여름은 시작된다. 그럼에도 하지 날 아침 디스커버리 호수에 가보니 들장미들이 현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호수의 온도가 올라가면 흰 수련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데, 아침에는 꽃잎을 활짝 펼쳤다가 해가 지면 움츠러들곤 한다. 분홍바늘꽃은 계절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식물로 초여름에는 낮은 줄기에서 꽃이 피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높은 줄기로 옮겨가며 핀다. 무스 호 주변에서 자라는 아담한 자작나무들을 보니 마치 오지브와 족 카누의 영혼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일광욕 철이 지나고 호수가 5개월간 얼음으로 덮이는 겨울이 찾아오면 비단거북은 진흙투성이 호수 바닥으로 내려가 노란 수련 뿌리 사이에 몸을 숨기고 동면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