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불안한 평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DMZ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2만 미군의 지원을 받는 한국군과 북한군이 서로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오늘은 남북한이 휴전에 들어간 지 1만 8000일째 정도 되는 날이다. 여느 날처럼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병사들이 일과를 시작한다. 곤히 잠든 농촌 마을 외곽의 한 도로에서 남한군 보병 15명이 동트기 전의 매서운 추위를 이기려고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르고는 M4 자동소총에 실탄을 장착한다. 유령들이 행진하는 듯한 군악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들려온다. 휴전선 너머 북한 쪽에 세워진 거대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다. 소대장의 수신호에 맞춰 병사들은 소리 없이 정렬했다가 흩어져 주위의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이들의 임무는 비무장지대(DMZ)의 한 짧은 구간을 정찰하는 것이다. DMZ는 50년 동안 남북한을 가르고 있는 주인 없는 분쟁의 땅이다. 약 50km 후방에서는 남한의 수도 서울이 화려한 불빛으로 타오르고 있지만, 경비탑과 지뢰와 철책이 지키고 있는 이곳 DMZ에서는 남북 병사들이 냉엄하게 대치하고 있을 뿐이다. 무선통신병이 15분 간격으로 소대원들의 위치를 사령부에 보고한다. 정찰대가 북한군 감시탑으로 접근하자 소대장은 부하들에게 경계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재수가 아주 좋으면 북한군 병사가 덤불을 뚫고 나와 국가 기밀을 발설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재수가 없으면 북한군이 발포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불안정한 평화가 깨지며 한반도 전역이 전장으로 변할 수 있다. 수백만 명이 사망하고 중국과 일본, 아니면 전 세계를 핵전쟁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다. 이곳에서는 종말론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세상에는 잠무카슈미르, 체첸공화국, 웨스트뱅크 등 위험 지역이 많지만, 양측이 엄청난 화력을 배치하고 벼랑 끝 전술을 빈번히 구사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DMZ가 가장 위태로운 지역인지도 모른다. 한반도를 양분하는 238km의 휴전선을 따라 세계 최대 규모의 잘 훈련된 양측 병력 수십만 명(남한 주둔 미군 3만 7000명 중 절반 이상 포함)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 지휘관들은 이념을 달리하는 적을 증오하고 결코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병사들을 교육한다. 1953년 7월, 3년간에 걸친 격렬한 한국전쟁이 휴전 협정으로 끝났지만 그 이후 이런 비상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의 발단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합군이 일본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38°선으로 갈라놓았다. 1950년 6월25일, 소련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낸 북한은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어 기습공격을 개시했다. 유엔군이 한중 국경인 압록강으로 진격하자 또 다른 신생 공산국가인 중국은 그해 10월에 참전을 결정하고 병사들을 물밀듯이 북한으로 내려보냈다.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이 휴전협정 체결로 끝난 1953년까지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과 남한군 그리고 북한군과 중국군 중에서 거의 90만 명이 사망했고 2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적대관계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휴전협정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적들을 갈라놓기 위해 DMZ를 만들었다. 너비가 4km인 DMZ는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데, 대부분이 산악지대이며, 이 안으로는 대규모 군대의 집결이나 탱크와 대포 같은 중무기의 진입이 금지된다. 그 중앙에는 군사분계선(MDL)이라고 하는 정치적 경계선이 그어져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이 MDL을 건너는 사람은 누구든 총에 맞을 수도 있다. 오늘날까지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 두 개의 한국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실제로 한반도 전역, 특히 DMZ 부근에 전시의 긴장감이 감도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극적으로 악화되었다. 작년 가을, 미국 첩보기관에 핵 관련 활동이 노출된 북한 정부는 비밀리에 핵무기 제조를 위한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올해 초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으며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핵연료 재처리 시설의 재가동을 시도했다. 그리고 4월에는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측 대표들에게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이곳에 배치된 군은 더욱 긴장하게 될까? DMZ 바로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한 미군 장교는 말한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이미 높은 수준인 우리의 대비태세를 더 높이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