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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밝혀지는 중국 초기 문명

고대 중국의 귀중한 유물이 발굴되면서 중국 문명의 기원이 다시 쓰여지고 있다. 기존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야기 또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중국의 고대 도시들이 자취를 감추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때, 안양(安陽) 역시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20세기의 전쟁과 혁명은 황허 강 평원에 자리잡은 이곳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곳곳에 흔적을 남겨놓았다. 안양의 외곽에는 1910년대에 잠시 동안 중국을 지배한 위안스카이 장군의 묘가 있다. 흰색 타일과 파란색 유리가 인상적인 안양의 신시가지는 또 다른 정복자, 즉 개혁 이후 등장한 중국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묘지와 시가지 사이에는 오래된 작은 비행장이 들어서 있다. 이 비행장은 1930년대에 중국을 점령한 일본이 건설한 것이다. 비행장 바로 아래에는 300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가 묻혀 있다. 2000년 9월에 내가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하 도시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 중 하나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징즈춘은 서둘지 않았다. 중국과 미국에서 고고학과 지질학 학위를 받은 36세의 징즈춘은 자기 방식대로 일을 진행했다. 그는 신중하고 치밀했으며 잘 웃었다. "자연의 힘이 이곳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세요." 옛 비행장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옥수수밭을 지나가며 징즈춘이 내게 말했다. "3000년 전에 이곳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땅에는 수없이 많은 작은 구멍들이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가 지원하고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미네소타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발굴팀이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발굴팀은 긴 막대에 파이프 모양의 날이 달린 '뤄양(洛陽) 삽'으로 지름 5cm가량의 구멍들을 파놓았다. 수직 2.5m 깊이의 이 구멍을 통해 과거 문화의 흔적을 담고 있는 퇴적물 샘플을 충분히 추출할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샘플을 보고 지표 아래에 있는 것이 성벽인지, 무덤인지, 아니면 쓰레기 구덩이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징즈춘과 동료들은 이 유적을 '환베이(환 강 북쪽) 은나라 도시(洹北商城)'라고 불렀다. 1996년 이곳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발굴팀은 지하에 주거지가 묻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고 뤄양 삽으로 주거지의 전반적인 윤곽을 파악했다. 1999년에는 약 470ha의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옛 도시의 성벽을 찾아냈다. 유적은 기원전 14세기경의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이 시기는 기원전 1600년에서 1045년까지 황허 강 평원에서 번영을 누렸던 은나라 문화의 절정기에 해당한다. 환베이가 이 지역 최초의 도시 주거지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유적 발굴을 통해 중국 초기 문명의 모습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베이는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은나라와 그 밖의 청동기시대 문화 유적 가운데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100년 전만 해도 은나라는 이 고대 도시처럼 잊혀진 존재였다. 은나라가 멸망한 후 등장한 주나라의 역사 문헌에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역사 문헌의 기록을 인정했지만, 서구 학자들은 이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단순한 신화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은나라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규모 청동 유물과 정교한 갑골문자, 희생 제물로 바쳐진 수천 명이 묻혀 있는 매장지 등이 발굴되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유물이 발견되면서 문헌 기록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국 역사는 은나라로부터 시작한다. 은나라 사람들이 사용한 문자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됐다. 중국의 역사는 항상 은나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현대 중국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 고대 문화의 본모습을 찾기 위해 힘썼다. 징과 같은 고고학자들은 과거의 유물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간에 이루어지는 미묘한 상호작용도 찾아낸다. 징은 구멍투성이의 발굴 현장 한가운데서 잠시 멈춰 섰다. 그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고고학자들이 지표면의 형상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고 내게 말했다. 언덕은 무덤이고, 능선은 고대 성벽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곳 허난성(河南省) 지역에서는 강물이 범람하고 황토층이 쌓이면서 과거의 역사가 지표 아래 깊숙이 묻혀버렸다. "우린 삼차원적으로 고대 주거지의 흔적을 찾고 있어요." 징즈춘은 설명한다. "외형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거기에 삼차원적 요소를 포함시켜야 하죠. 바로 시간이라는 차원 말이에요."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옥수수대, 콩밭, 벽오동나무를 바라보았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은 이 지역 최초의 도시였어요. 시간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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