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인스타그램 보기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키즈

매거진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몽골 유목민의 대장정

아시아의 외딴 산악지대에서 지금도 가축떼를 몰고 험난한 이주 여행을 하고 있는 유목민. 이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과연 새로운 삶이 도래할 수 있을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노인은 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의 아내가 최근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동안, 노인은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워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녀는 산맥을 넘어 겨울 거주지로 가는 데 7일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노인은 말을 탈 기력조차 없다는 것이다. "영감을 데리고는 가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장대로 만든 들것에 노인을 묶고 소가 끌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바위가 많은 험한 지대인 데다 기온은 이미 영하로 내려간 상태다. 푸레브시라는 이름의 그 노인은 얼굴에서 이불을 걷어내고는 일어나 앉기 위해 "다아, 다아아···"라고 소리를 내며 아들을 부른다. 가족들의 부축으로 야윈 몸을 일으켜 세운 푸레브시는 방 안을 둘러본다. 노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가 산을 넘다가 죽으면 어쩌나 염려하는 것을 말이다. 몽골 북부에서는 사람들이 산맥을 넘어 이동하는 전통이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다. 이동을 하다 죽는 사람도 있다. 다르하드 계곡에 가을이 찾아오면, 수많은 가족이 소에 짐을 싣고 양과 염소, 소들과 함께 겨울 거주지로 향한다. 그곳은 가축들이 겨우내 뜯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풀이 넉넉하다. 날씨도 따뜻해 기온이 10'C나 더 높다. 3500 면적의 계곡과 겨울 거주지 사이에는 3000m 높이의 장벽이 놓여 있다. 이 눈 덮인 산봉우리들은 아름답지만 매우 험하다. 10월 초순에 사진기자인 고든 윌트시와 나는 산맥을 통과하는 4개의 루트를 따라 이동하려는 가족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이들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을 본 것은 처음이다. 우리와 함께 푸레브시의 게르(펠트로 덮은 둥근 천막을 가리키는 몽골어) 안에 있는 클리프 몬테인은 고든의 친구로, 다르하드에서 소규모로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매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일을 6년째 해오고 있다. 이는 몬태나주립대학에서 자신이 시작한 지역발전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클리프는 푸레브시 가족의 난처한 상황을 잠시 생각해보더니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겨울 거주지까지 트럭으로 데려다줄 사람만 구한다면, 자신이 휘발유값으로 120달러를 대겠다는 것이다. 차로 가는 길은 산을 돌아가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다. 푸레브시의 아내인 체그메드가 이방인의 제안을 남편에게 설명하자, 침을 삼킨 그의 입이 떨리기 시작한다. "이분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해요." 그녀가 조용히 말한다. 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클리프가 한 일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계산'의 결과다.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했던 물건을 생각하고 있었죠. 130달러를 주고 조끼를 샀거든요." 나중에 클리프가 한 말이다. "도저히 그냥 나올 수가 없더라구요." 하지만 우리는 클리프의 행동이 일종의 아이러니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남아 있는 이주 전통을 취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소 대신 트럭으로 이동하게 되는 건 어쩌면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 가족이 트럭으로 이주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나는 몽골에 오기 전에 울타리도 없고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따라 몽골의 이 끝에서 다른 저 끝까지 계속해서 말을 타고 달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흠뻑 빠져 있었다. 거의 덴버에서 내가 사는 워싱턴 DC까지 가는 거리다. 국토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2030년까지 전 국민의 90%가 도시에 정착하게끔 만들겠다는 남바린 엔크바야르 몽골 총리의 계획을 신문에서 접했을 때 난 기분이 씁쓸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사는 총리의 눈에 몽골은 시대에 뒤떨어진 나라였다. 따라서 현대로 진입하는 것이 필요한 국가였다. 교통이 혼잡한 워싱턴에 사는 나의 눈에 몽골은 개발로 파괴되지 않은 마지막 장소였다. 그러나 문화변동의 결과에 대해 구원이나 파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문화가 변한다는 것은 복잡한 현상이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타협과 절충은 반드시 한 번에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소련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소련은 1990년까지 60여 년 동안 몽골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모스크바의 지시를 받은 사회주의 정부는 몽골의 불교 문화를 말살했다. 수천 명의 라마를 살해하고, 대부분의 마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절과 수도원을 파괴했다. 또한 정부는 유목민의 가축을 강제로 집단농장에 몰아넣고, 시계나 관리장부 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부과했다. 한편 몽골인은 대부분 글을 몰랐다. 그러나 소련의 도움으로 몽골 전역에 학교가 세워지면서 거의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연금과 무상의료혜택,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급료 덕분에 유목민은 보다 편하고 안정된 삶을 누렸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소련이 중국을 몰아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외몽골을 자국의 영토로 간주했다. 하지만 1921년 소련의 도움으로 중국군을 내쫓으면서 몽골은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몽골은 사회주의의 장단점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거의 70년 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다. 사회주의에서 벗어난 지금 몽골은 총체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다르하드 계곡에 일어난 가장 커다란 변화는 태양열을 이용한 위성 TV의 등장이다. 해마다 2m 높이의 위성 안테나가 대초원에 몇 개 더 설치되고 있으며 밤이 되면 안테나 옆의 게르에서는 아무런 소리 없이 작은 흑백 TV의 불빛만 새어 나온다. 위성 안테나는 몽골 TV 채널만 수신하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곳 주민들은 MTV나 울란바토르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채널도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성 안테나 수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다르하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대부분 아직도 예전 방식대로 놀기를 좋아한다. 바트나산의 가족도 그중 하나다. 3대가 모여 사는 이 가족의 가장은 49세 여성인 바트나산이다. 바트나산 일가는 계곡 중심부에 있는 렌친룸베 근처에 살고 있다. 이들은 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는 여행에 내가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바트나산 가족의 게르에서 보내고 있는 첫날 밤. 일곱 살 난 라그와나가 내게 노래를 불러줘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본다. 아무렴.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아버지는 말 타는 사람'을 부른다. 우렁차고 째지는 목소리는 할머니와 비슷하다. 아이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보다 최근에 나온 노래를 부른다. "저 높은 곳에서 형이 나를 불러요. 형은 하늘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나도 형처럼 건설 노동자가 되어 저렇게 높은 건물에서 일하고 싶어요." 아이는 노래를 다 부르더니 "나도 도시로 가고 싶어."라고 말한다. 으레 하는 말인 것 같다. 유목민이 되고 싶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라그와나가 대답한다. "왜 내가 유목민이 되고 싶어해야 하죠? 난 이렇게 살지 않을 거예요! 도시로 가서 예쁜 옷도 입으면서 살 거라고요!" 바트나산 일가의 생활은 힘들다. 바트나산의 남편은 1996년에 죽었고 그녀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그녀는 다 자란 두 딸과 아들 내외, 그리고 세 명의 손주와 함께 살고 있다. 손주 둘은 갓난아기다. 일손은 당연히 부족하다. 소를 몰아오거나 밧줄로 잡아매야 할 때는 아기들을 게르 안에 묶어 둔다. 아기들이 울어도 일이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가축을 돌보는 것은 대개 남자들의 일입니다." 통역을 맡은 아치트가 말한다. "하지만 이 집은 그럴 형편이 아니죠." 다행히 바트나산은 강인한 여성이다. 다음 날 오후 그녀는 게르 위쪽의 언덕에 앉아 러시아제 쌍안경으로 말들을 찾으면서 1990년 이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1990년은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소련이 몽골 재정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해였다. 그녀는 하트갈에서 110km 떨어진 국영 섬유공장의 일자리를 잃었다. 이 공장은 20년 동안 일한 직장이었다. 하트갈의 학교에서 근무하던 그녀의 남편도 일을 그만두었다. 유사한 처지에 놓인 몽골 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이들도 어릴 적에 경험했던 유목생활로 되돌아갔다. "다시 가축을 돌보는 건 좋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져야만 합니다. 가축은 있어도 돈이 없어요." 유목민을 도시로 다시 이주시키려는 총리의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말한다. "가축을 기르며 살지 않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자리 없이 생계를 꾸려가는 게 힘든 건 사실이에요."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 해 수입을 한 달 만에 번다고 한다.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