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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는 어디로

9-11 이후 정치적 불안에 빠져 버린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의 발상지이기도 한 이 국가에서는 지금 부족적 전통과 근대화가 안겨 준 부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지금은 정오. 텅 빈 제다 시의 중심가는 이따금씩 홀로 지나가는 사람이 보일 뿐 조용하기만 하다. 제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제2의 도시로 상업의 중심지이자 가장 붐비는 항구이며 가장 국제화된 거대도시다. 그러나 지금은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이라 먹고 마시는 것을 비롯해 모든 육체적 쾌락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금지되어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집에서 기도하고 금식하거나 서늘하고 어두컴컴한 집 안 깊숙한 곳에서 낮잠을 잔다. 매일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밤에는 딴판이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시는 하품을 하며 일어나 활발한 사교 활동과 쇼핑과 폭식에 몰두한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제다의 식당에서 일품 요리를 찾아보기 어렵고, 700g짜리 스테이크, 산더미처럼 쌓인 바닷가재, 15kg짜리 양고기 구이 등을 밤새도록 맘껏 먹는 뷔페가 전형적인 식단이 된다. 새벽 3시. 고속도로와 대로는 해가 뜰 때까지만 영업하는 쇼핑몰로 가기 위해 늘어선 차량 행렬 때문에 수 km나 구간이 정체되어 있다. 대부분 연료 소비가 엄청난 미제 차들이다. 돈 많은 젊은이들은 레저 차량(SUV)을, 그들의 부모 세대는 링컨콘티넨탈이나 셰브롤레를 즐겨 몬다. 쇼핑몰에서는 판매원들이 위성 텔레비전 시청자를 모집하기 위해 틀어둔 뮤직 비디오의 테크노와 랩으로 통로들이 진동한다. 위성 텔레비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도시의 지붕 어디에서나 위성 접시안테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인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아랍어로 된 네온사인만 없다면, 오늘 밤 제다의 거리는 로스앤젤레스나 댈러스, 휴스턴의 중심가로 착각할 수 있다. 현대풍의 탈리야 가에서는 야구 모자를 맵시 있게 돌려 쓰고 발목까지 오는 전통적인 긴 옷 대신 헐렁한 골반바지를 입은 십대 소년들이 차를 탄 채 자가용 운전사가 몰고 십대 소녀들이 가득 타고 있는 차들 옆에서 빈둥거린다. 18세의 안내인 "하산(가명)"과 함께 이 광경을 보고 있는데 녹색 셰브롤레가 천천히 은색 지프차를 지나가면서 두 차량 사이로 종이가 휘날린다. "저게 뭐지?" 내가 묻는다. "연락처를 주고받는 거예요." 하산이 설명했다. "여자가 종이에 자기 휴대폰 번호를 적어 그걸 공처럼 말아서 남자에게 던져요. 그러고는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죠." 이렇게 종이뭉치를 날리고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연애는 사우디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여자들은 아직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바야'라고 하는 검은색 가운을 두르고 얼굴을 베일 뒤에 숨긴다. "그렇지 않으면 '무타와인'이 그들을 추격할지 몰라요." 하산이 1000년 이상 된 신정주의적 법률 시스템을 집행하는 국가 종교 경찰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한밤의 제다는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직면한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앞뒤 양방향으로 동시에 끌려가고 있어요." 신경과 의사 수아드 알-야마니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환자들에게서 지극히 보수적인 사회가 불과 몇 십 년 만에 7세기에서 21세기로 돌변한 데서 오는 혼란의 영향을 발견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전통적인 국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 나라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도들의 신성한 도시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곳으로 이슬람교의 주요 후견인이자 전 세계 13억 이슬람교도들의 영적인 본향 역할을 해왔다. 부족 군주제의 통치를 받고 이슬람교의 성법(聖法) 샤리아의 지배를 받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자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그 왕족은 엄청나게 부유하고, 영향력 있고, 원성을 사기도 하는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해 9.11 테러의 공중 납치범들 중 15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테러리즘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 나라 자신이 빈 라덴의 알카에다 운동이라든가 5개월 전에 수도 리야드에서 발생해서 본국인과 외국인을 막론하고 34명의 사망자를 낸 폭발 사건 같은 내부 테러 공격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가 현대 세계와 만나고, 부족 관습이 휴대폰 소비주의와 만나고, 막대한 부가 불확실성과 소외감과 만나는 곳으로 문화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격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석유로 벼락부자가 된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이슬람교의 심장부에서 나름대로 극심한 혼란과 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세계 각지에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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