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신의 보물 수호자
호화로운 무덤 하나가 이단적인 통치자였던 파라오 아켄아텐의 흥망성쇠와 함께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위를 잘 유지했던 신전 보물의 최고 책임자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본지에서 최초로 독점 공개하는 놀라운 무덤 하나가 3300여 년 전 이집트의 급진적인 파라오 아켄아텐에 의해 야기된 혼란의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무덤을 사용하려고 했던 사람은 신전의 재산을 관리했던 사람으로 원래의 부조들 위에 아켄아텐과 그의 왕비 네페르티티, 그리고 그들의 수호신인 태양신 아텐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서 이름들은 지워졌고 이 충성스런 신하는 결국 이 무덤에 묻히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오랜 경험과 직감, 그리고 약간의 행운 덕에 나는 사카라 고분에서 이 무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랑스 외무부의 지원 하에 나는 이미 그곳에서 절벽을 파내 만든 매장지들을 이미 발견한 상태였다. 그중에는 람세스 대왕의 고위관리를 위해 마련된 무덤도 있었고(2002년 10월 호 기사 '람세스 대왕의 평화 중재자'참조), 아켄아텐의 계승자였던 유명한 투탕카문 왕의 유모, 마이아라는 여인의 무덤도 있었다. 발굴대원들이 발굴지가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모래주머니를 채워 쌓다가 삽으로 그 바위 속에서 입구 하나를 찾아냈다. 일단 모래를 걷어낸 다음, 나는 조각된 석비(石碑)와 주랑(柱廊)이 있는 장례성소를 경이에 찬 눈으로 둘러보았다. 이 뒤의 절벽에서 우리는 부조들이 늘어선 한 쌍의 방을 발견했고 미완성의 묘실로 향하는 층계도 찾아냈다. 비문은 무덤의 주인이 라이아이와 하티아이라는 두 이름을 가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금 세공 기술자의 아들인 그는 아케트아텐(새 수도)과 멤피스(옛 수도)의 아텐 신전에 봉헌된 보물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집트의 핵심 도시 두 곳에서 아텐에게 바치는 금과 기타 봉헌물들을 관리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위대한 아켄아텐과 가까운 관계였음이 분명했다. 무덤에 있는 상당수의 부조들을 통해 라이아이가 파라오의 극단적인 종교에 헌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부조는 형태가 확실히 바뀌었는데 라이아이의 생전에 수정된 것이 분명했다. 왜 그랬을까? 이집트 최고의 장인들이 조각한 아름다운 부조들이 라이아이의 무덤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목적은 장식,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 부조들이 마력을 지니고 있어 사후세계로 가는 길을 순탄하게 해주고 죽은 자에게 영생을 준다고 생각했다. 미라의 입을 여는 개구(開口) 의식에서 한 사제가 라이아이의 미라에 감각을 다시 불어넣고 있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 친척이 미라를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이런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불멸을 위해 행해진 전통적인 준비 과정들은 아켄아텐의 이단적인 통치기간에도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텐을 섬긴 아켄아텐의 통치기에는 부조의 그림과 함께 새겨진 기록에서 사후세계의 신인 오시리스에 관한 내용은 생략되었다. 사실 무덤 벽의 모든 부조는 아텐에게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반면 이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무덤 입구의 석비에는 여러 이집트 신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석비에는 라이아이와 그의 부인이 오시리스에게 봉헌물을 바치는 장면이 묘사돼 있고 비문에는 멤피스의 수호신인 프타하와, 라이아이의 부인이 찬양의 노래를 바친 아문과 같은 신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이 석비는 무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켄아텐이 죽고 새로운 파라오 투탕카문의 통치 하에 있을 때 라이아이와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전통 방식을 채택하면서 추가로 제작한 석비였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라이아이는 부인을 위해서도 이 무덤을 지었다. 그의 뒤에 그녀가 앉아 있다. 봉헌물인 꽃을 들고 있는 모습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곳에 잠들지 않았다. 라이아이가 미완성의 묘실로 향하는 통로를 지키고 있다. 아켄아텐이 죽은 후 이 무덤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석비 같은 보완물이 추가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매장지를 포기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정치적 연줄로 자신의 위상은 구했던 것 같다. 비문은 부인의 이름이 마이아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서 발굴된 무덤의 주인이었던 투탕카문 왕의 유모 마이아와 동일인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녀의 영향력으로 그는 다시 왕실의 총애를 얻게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부인의 무덤 근처에 결국 새 무덤을 지었을까? 모든 대답은 사카라의 절벽 속에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