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영혼이 깃든 탱고
갈망과 회한의 정서가 가득 배어 있는 탱고가 경제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한 나라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탱고는 약 100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점령했다. 그리고 지금은 '포르테뇨(항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민)'의 정서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슬프고 간절하며 오페라 분위기를 풍기는 탱고의 서정미가 이 영욕의 도시에서 사는 삶을 부분적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암울한 시기였던 2002년에 탱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났던 것 같다. 1990년대 초반 짧은 기간이나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화려하게 만들었던 경제번영 이후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세금을 내기 위해 혹은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과 춤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쉽지도 경박하지도 않은 것이 시대와 맞아떨어졌다. 쇼핑몰은 사교춤을 배우는 데 어울리지 않는 장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최신식 쇼핑센터는 탱고의 유령으로 가득하다. 도시의 중앙 시장인 '메르카도 데 아바스토'의 일부 부지에 자리잡고 있는 쇼핑센터는 지은 지 몇 년밖에 안 된다. 여전히 이 구역에는 블루칼라들이 살고 있다. 19세기 말 무렵, 유럽 이주민이 물밀듯이 아르헨티나로 밀려들어왔고 그중에는 이탈리아인이 가장 많았다. 이주민은 대부분 이곳 시장과 그 주변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사업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감미로운 선율(오페라풍이라고도 하는)이 한 단순한 음악과 시끌벅적한 춤에 접목되면서 또 하나의 예술이 탄생했다. 바로 탱고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주민의 도시로 확고히 자리잡았으며 1920년대까지 탱고는 이 도시에서 널리 인정받는 음악이 되었다. 해방된 아프리카 노예의 원형 댄스에서 강한 리듬이 비롯되었고 아코디언과 비슷한 독일 악기 반도네온은 탱고 음악의 전형적인 구슬픈 소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한 프랑스 뮤직홀의 염세적인 스타일도 탱고 음악에 영향을 미쳤는데, 많은 부분 샤를 가르드 덕택이다. 189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3살 때 어머니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보내졌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로맨스를 노래로 구현한 장본인인 카를로스 가르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뛰어난 가수 겸 작곡가인 가르델은 음란한 매음굴에서 탱고를 건져내 불후의 애가로 승화시켰다. 그는 고국과 부모, 고향의 골목길 등 사람들이 이주로 잃어버린 것을 모두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는 맑고 서정적인 바리톤으로 사라져 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변두리 전원지대를 노래하고 멋진 옷으로 명성을 얻으려고 애를 쓰는 포르테뇨를 끊임없이 비웃었다. 그는 인간의 슬픔도 잊지 않았다. 실패와 덧없는 세월, 그리고 사랑과 신뢰의 종말을 노래했다. 가르델은 아바스토의 거친 술집과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아 위대한 스타가 되었다. 다투기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지금도 유일하게 국민적 인사로 추앙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가르델이다. (가르델과 탱고가 자기 나라에서 탄생했다고 계속 주장하는 우루과이인도 마찬가지다.) 가르델은 예전의 외설스러운 탱고 멜로디에 가사를 새로 붙였다. 그로 인해 탱고 음악이 세련되고 에로틱하며 비극적이면서 대담해지자 곧이어 탱고 작사가들은 특별히 그를 위해 이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가르델은 1935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십 곡의 노래를 작곡했고 다른 이들이 만든 수많은 노래를 취입했으며 8편의 장편영화도 만들었다. 가르델은 단순히 위대한 음악가로만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정장과 낙타털 코트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들어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스타일을 창조하기도 했다. 피부가 흰 지배 계층은 가무잡잡한 피부에 죽어라 일만 하는 이주민을 경멸했다. 이주민은 심하게는 네그리토 아니면 조금 나은 말로 모로초(피부가 검은 사람)라고 불렸다. 가르델에게도 평생 "아바스토의 모로초"라는 호칭이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턱시도가 잘 어울렸고 그의 세련된 스타일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중동 이주민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는 강했으며 명랑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매우 도회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