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인스타그램 보기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키즈

매거진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일본의 무사도

전설적인 일본 무사들은 무술에서 다도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에서 그 위상이 확고하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각자의 내면에 있는 사무라이 찾기를 그치지 못한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사무라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시선을 내린 군중들이, 장차 도쿄가 될 에도의 번잡한 길을 거만하게 활보하는 한 명의 무사에게 길을 비킨다. 시간은 18세기 초, 그러나 100여 년 정도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 시대. 만약 일본이 봉건제를 유지했다면 이런 장면은 오늘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사무라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긴 칼 하나와 짧은 칼 하나, 이렇게 두 자루의 칼이 허리에서 삐죽이 튀어나와 있다. 일본 최고의 계급인 무사 계급의 일원으로서 사무라이만이 무자비한 권위의 상징인 두 자루의 칼을 지닐 수 있다. 그는 위쪽이 치마처럼 생긴 너풀거리는 바지와 짧고 헐렁한 웃옷으로 되어있는 기모노를 입는다. 머리 위쪽은 면도가 되어 없고 양쪽과 뒤쪽에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머리 위로 모아 근사하게 틀어 얹었다. 사무라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사무라이는 매년 그들에게 급여로 주어지는 쌀을 보충하기 위해 직업을 가질 수는 있지만 정부는 사무라이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사가 되어 위기 시 정권을 보호하라는 것뿐이다. 일반인들이 감히 사무라이에게 불손하게 굴면 그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거나 그의 칼에 부딪치면 사무라이는 그 자리에서 그 배은망덕한 자를 벨 권리(실제로는 거의 행사되지 않는다)가 있다. 거만한 걸음걸이는 사무라이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권리와 같다. 이들 무사계급은 1185년부터 1867년까지 거의 700년간 일본을 지배했다. 고대 로마나 중세 유럽과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 풍요로웠던 것만큼이나 무자비하고 폭압적인 통치였다. 사실 고대 유럽의 기사는 역사적으로 사무라이와 가장 가까운 친척뻘이 될 것이다. 기사들처럼 사무라이(단어는 '모시는 자'라는 의미이다)는 무력 정예 계급으로 족장이나 군벌, 그들의 휘하에서 싸우는 충성스러운 무사들로 구성되었다. 전통적으로 황제는 일본에서 최상위의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였다. 그러나 사무라이들의 힘이 커짐에 따라 황제는 쇼군이라 불린 최고 사령관격인 군부독재자의 그늘에 가린 명목상의 존재로 추락했다. 이는 사무라이에 의한 지배의 새시대를 알리는 칭호였다. 사무라이와 기사가 전장에서 만나면 서로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공격했으며 칼과 창을 들고 싸웠고 성을 포위했으며 명예를 철칙으로 여기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사무라이와 기사가 달랐던 점은 그 전성시대가 지속된 기간에 있다. 이 일본의 무사계급은 미국 전함이 일본의 항구에 쳐들어와 쇼군이 국가를 방어하는데 무력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놀랄 만큼 오랫동안 지배적 위치를 유지했다. 새로운 황제 주위로 각 세력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고 쇼군의 군대는 쉽게 전복되었다. 사무라이의 통치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