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의 희망
본지가 국제 재난 구호활동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와 멕시코 만 해안지대를 휩쓸었다. 본지 기자 크리스 캐롤은 물바다가 된 뉴올리언스로 들어가 미국이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국제 구호활동을 주도하는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이 과연 자국의 재난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보았던 것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2005년 9월 2일 금요일 윌리 메이 데이비스의 모습은 컨벤션센터 대로와 어울리지 않는다. 빨간색 여름 드레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윌리 메이 할머니는 깔끔하고 건강해 보여 마치 손자와 증손자를 데리고 소풍을 떠나는 사람 같다. 하지만 할머니와 그 가족은 다른 시민 수천 명과 함께 뉴올리언스 시내에서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도시가 물바다가 된 지 나흘이 넘었다. 어니스트 N. 모리얼 컨벤션센터의 길이는 약 800m인데, 센터 앞 대로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진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다. 시체들이 그대로 눕혀져 있다. 아기들은 탈수에 시달리고 노인들은 무더위로 의식을 잃고 있다. 도움의 손길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윌리 메이 옆에 있는 나무상자에 앉아 어떻게 견뎌 내고 있는지 물어보니 "우리 아이들이 댄스홀 뒤에서 깨끗한 화장실을 찾아냈어요"라고 말한다. 적절한 이야깃거리가 아닌 것 같다는 말투다. 댄스홀 겸 케이전 레스토랑인 뮬레이츠가 할머니 바로 뒤에 있다. 문은 부서진 채 열려 있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다. "우린 그나마 씻을 수 있었어요. 그런대로 지낼만 해요." 할머니는 배려 차원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오후 2시가 되자 장갑차가 거리를 지나간다. 장갑차에 달린 확성기에서는 줄을 서라는 말이 들린다. 그러나 67세인 윌리 메이는 줄을 설 수가 없다. 허리케인이 들이닥치기 전인 월요일에 노인 전용 아파트에서 대피한 할머니는 이튿날 물이 차오르는 가운데 딸 테리의 아파트에서 구조되어 처음에는 시청으로 들어갔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컨벤션센터로 옮겨 온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뇨병과 고혈압 약이 다 떨어졌다. 할머니는 기진맥진한 데다 발이 너무 아파 거동을 못하고 있다. 오후 3시, M4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아칸소 주 방위군이 처음으로 음식과 물을 배급하기 시작한다. 생존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건 월요일이다. 주차장에서 시작해 거대한 컨벤션센터 건물을 따라 길게 늘어선 줄의 맨 앞에는 젊고 힘센 사람들이 서 있다. 이들은 배급품을 나이 든 친척이나 아이들에게 갖다 주고는 다시 돌아와 줄을 선다. 윌리 메이의 딸 다나(42)도 이런 식으로 먼저 자기 가족에게 배급품을 갖다 준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배급품을 나눠 주고 있다. "다나는 수녀가 됐어야 했는데." 그녀의 형제인 케네스 클라크가 말한다. "좀처럼 자기 자신은 돌보지를 않으니 말이에요." 오늘 일찍 이곳에 왔을 때 다나의 친구인 래리 로드리게스가 과로로 쓰러진 그녀에게 부채질을 해 주며 그녀의 이마에 물을 적셔 주고 있었다. 다나가 활동하는 걸 보니 그 상황이 이해가 간다.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돌봐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윌리 메이가 말한다. 줄리아 가 건너편에는 불구자와 노인, 병자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몸을 수그린 채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도로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가족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할머니가 말한다. SUV 차량에 경찰관 한 명이 타고 있다. 뉴올리언스 경찰서의 프랭크 리주토는 수염도 못 깎았고 눈이 많이 충혈돼 있다. 경찰이 왜 환자를 도와주거나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는지 물어봤다. 냉담한 반응을 예상했는데 오로지 피곤한 기색만 보인다. "대부분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지붕에서, 물에서 사람들을 구해 내고 있죠." 그가 말한다. "구조한 사람을 먹이고 수용하고 돌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리주토가 머리를 흔들며 말한다. 그는 거리를 순찰하기로 되어 있는데 차에 기름이 없다. "물론 돕고 싶죠." 그가 말한다. "하지만 나도 꼼짝 못하는 형편이니." 늦은 오후, 컨벤션센터 건물이 너무 더러워지고 폭력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고 판단되자 경찰은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거리로 이동시킨 다음 문마다 바리케이드를 쳤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도시를 가득 메운 물에서 공포가 스며나오는 듯하다. 이곳 물이 없는 곳에 갇힌 수천 명은 서로에게 더 가깝게 다가선다. 부서진 술집과 레스토랑에서 끌어온 의자에 앉아 밤을 보내려는 가족들은 밤이 되자 젊은 여자와 아이들 주변으로 모여든다. 밤이 되면 강간과 폭행, 살인이 일어난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컨벤션센터 건물 안에 있는 시체의 사인이 모두 질병이나 탈수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케네스와 래리는 대로의 잔디 중앙분리대에 임시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텐트를 '노아의 방주'라고 불렀다. 호텔의 커튼을 거리 표지판 위에 걸쳐 만든 텐트는 이틀 전부터 윌리 메이 대가족의 거처로 사용됐다. "텐트가 영원히 우리 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케네스(47)가 말한다. "버스를 타고 대피소로 갈 거라는 얘기를 매일같이 들었지만 거짓말이더라고요." 오늘 밤에는 윌리 메이의 가족 말고도 수십 명이 텐트 안과 주위에 모여 있다. 컨벤션센터 주변에 있는 가장 허약한 피난민 중 일부가 며칠 전부터 텐트로 모여들었다. 윌리 메이의 가족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게 머물면서 음식과 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래리와 케네스가 시내의 빈 상점을 찾아다니며 음식과 주스, 물, 기저귀, 얼음 같은 생필품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훔친 거죠." 래리가 사실대로 말한다. "하지만 나와 내 가족이 살기 위해서죠. 우린 음식이나 물도 없이 며칠 동안 방치돼 있었어요. 그냥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죠. 훔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뭐든 남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줍니다." 윌리 메이의 자식들이 사람들을 화장실로 바래다준다. "할머니라고 길거리에서 볼일을 보진 않죠." 래리가 말한다. "체면이 있잖아요." 그러나 혼자서는 가려고 하지 않는다. 텅 빈 레스토랑과 술집 뒤쪽에 있는 화장실들은 물이 안 나와 악취가 진동한다. 화장실 한 곳에 가 보니 변기는 오물로 넘쳐나고 바닥은 똥오줌으로 질척거린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둘이 어두운 길거리에서 옥신각신 다투고 있다. 가족들이 할머니들을 떼어 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몸을 흔들며 소리친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가족들이 할머니를 의자에 앉히려고 하자 할머니가 발길질을 한다. 경찰차가 우리에게 자동소총을 겨누며 다가온다. 전조등 때문에 앞이 안 보인다. 길에서 몸부림치는 할머니 바로 옆으로 경찰차가 지나간다. 경찰이 가고 나자 클래런스 호턴이라는 남자가 포장지를 둘둘 말아 할머니에게 베개를 만들어 준다. 아기처럼 몸을 웅크린 할머니는 콘크리트 위에서 곧바로 잠이 든다. 해가 지기 전에 호턴과 얘기를 나눴다. 뉴올리언스의 붕괴가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일부라고 그는 말했다. 종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다. 2005년 9월 3일 토요일 새벽녘, 날이 밝기 시작한다. 윌리 메이의 딸 테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다리를 주문른다. 퉁퉁 부은 다리에서 노란 고름이 나온다. 물을 건너다 생긴 상처가 세균에 감염된 것이다. 왼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노인이 흘리는 눈물이 그의 더러운 내의 위로 떨어진다. "아내가 새벽 2시 20분에 죽었어요." 한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제 보았던 지저분한 침대가 떠올라 다시 보니 짧고 헝클어진 흰 머리가 위쪽으로 나와 있다. 죽은 여인의 남편인 월터 핑크니(54)는 어제 TV 촬영팀이 그녀를 찍으려고 하자 그녀의 부탁으로 얼굴을 덮어 주었다고 말한다. 내 옆에서 그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나는 전혀 몰랐다. 미시시피 다리 남쪽으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차들이 계속 다니고 있다. 왜 이곳으로는 차가 한 대도 오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다. 버스나 군용 트럭, 하물며 개인 차량이라도 이곳에 오면 중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 텐데. 장애물이 있어 진입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여섯 블록 정도 떨어진 호텔(취재진이 묵고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가 몇 시간 뒤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포이드러스 가 모퉁이를 돌아가 보니 청록색 간이 화장실이 길가에 늘어서 있다. 빈 의자가 도처에 널려 있다. 어젯밤 이곳에서 밤을 보낸 사람 가운데 적어도 3분의 2가 보이지 않는다. 카트리나가 몰아닥치고 5일이 지난 뒤에야 버스가 도착한 것이다. 윌리 메이의 가족은 노아의 방주 근처에 있다. 어제의 체념과 절망은 사라졌다. 윌리 메이는 잔뜩 들떠 있다. "존스 의사를 꼭 만나 보세요." 할머니는 말한다. "우리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지 몰라요." 다나가 데이비드 존스를 데려온다. 그는 아칸소 주 방위군 소속 의사로 최근 이라크에 파견되기도 했다. 명랑한 그는 윌리 메이 가족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는 영양제 주사를 놓거나 약을 나눠 줬다. 뉴올리언스와 이라크 중 어느 쪽 상황이 더 나쁜지 존스에게 물어보니 그는 이곳이 더 심각하다고 대답한다. "이라크는 위험하고 폭력이 난무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지는 않아요." 경찰관이 버스로 이동할 시간이라고 알려 준다. 버스를 기다리는 가족 중에는 윌리 메이의 전 남편인 제임스 클라크도 있다. 몸집이 크고 온순한 그는 건강에 문제가 많다. 그는 많이 걸을 수 없어 케네스와 래리는 '마지막 임무'를 위해 자리를 뜬다. 그들은 푸른색 세탁물 카트를 가져와 제임스 클라크를 태우고는 차퍼툴러스 가에 있는 승차장을 향해 카트를 밀고 간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옷가지와 더러운 침대 커버, 아이들 장난감을 챙겨 관광버스에 오른다. 운전기사인 빌 고스는 침침한 눈에 수염도 깎지 않은 모습이다. 그는 이삼 일 전에 뉴올리언스 슈퍼돔에서 사람들을 가득 태웠던 경험이 있다. "혼란 그 자체였죠." 그가 말한다. "아이들을 밀치는 어른도 있었어요." 컨벤션센터의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그에게 물어보니 그의 대답은 빠르고 날카롭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이곳이나 워싱턴이나 마찬가지죠." 그가 말한다. "계획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심지어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요. 조지아로 갈지, 아칸소나 텍사스로 갈지 말입니다. 나도 몰라요." 버스가 10번 주간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내리면서 윌리 메이를 보니 눈을 감고 있다. 2005년 9월 7일 수요일 나흘 뒤 아칸소 주 포트스미스에서 윌리 메이 가족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수도원에 대피해 있었다. 알고 보니 버스 여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처음 도착한 곳은 루이지애나 주 어디였는데(래리는 슈리브포트라고 추정한다) 대피소가 만원이어서 다시 버스를 탔다.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15시간 뒤 포트채피(포트스미스 부근에 있는 곳으로 이전에 군사기지였다)에 도착했다. 테리의 감염은 더욱 악화됐다. 그녀는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며 근처 병원으로 실려갔다. 가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윌리 메이도 병원에 입원했다. 나머지 가족은 버스 안에서 10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포트채피에 뉴올리언스 이재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란색 스쿨버스가 도착했고 사람들은 다음 여행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목적지는 미상이었다. 그때 케네스가 일어났다. "어머니가 이곳 병원에 입원해 있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말했죠." 그가 얘기한다. 스쿨버스는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했고 고스는 자기도 가야 한다고 윌리 메이 가족에게 말했다. "길가에 남은 우리는 정말 초조했어요." 케네스가 말한다. "뉴올리언스에 있을 때처럼요."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오래 머물진 않았다. 사정을 딱히 여긴 어느 여성 주 방위군이 베네딕투스 세인트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의 수녀들을 찾아내 주었다. 수녀들은 군사기지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수녀들은 윌리 메이 가족을 받아 주었다. 포트스미스에 도착해 보니 그들은 수도원 부속건물에 있는 사실에 머물고 있다. 이 사실은 묵상을 할 때 사용하는 방이다. 나를 안내하는 래리는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라 권투선수처럼 움직이며 말을 한다.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돌봐 주고 있어요." 그가 얘기한다. "수녀님들은 정말 크나큰 축복이에요. 우리를 받아 주고 가족처럼 대해 줬죠. 난 일자리까지 얻었다니까요!" 그가 뉴올리언스에서 다니던 재고품 공급 회사의 지사가 직장이다. 회사는 면접도 보지 않고 그를 채용했다. 그를 따라 거실로 가 보니 윌리 메이가 TV로 테니스 경기를 보고 있다. 가슴 통증은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고 한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눈물을 흘린다. 수녀들이 자기 가족을 돌본 얘기를 하면서 큰 소리로 슬프게 운다. 수도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전에도 울고 먹고 나서도 운다. 컨벤션센터에서 할머니는 바위 같았다. 안전한 곳으로 오니 굳었던 감정이 녹아 내리는 것이다. 2005년 9월 8일 목요일 이튿날 수도원에 찾아온 사람은 게리 매트록 코치다. 그는 수도원 부설 가톨릭 학교인 트리니티 중학교에서 미식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미식축구장에서 래리와 케네스를 만났다. 래리와 케네스가 미식축구 연습을 구경하러 왔던 것이다. 그는 이 가족을 위해 옷을 모았다. 그는 포트채피에서 구호활동에 자원했는데 마음만 상한 채 활동을 그만두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이재민은 중무장한 미 특수기동대의 감시 아래 소떼처럼 몰려다녔으며 집과 재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위로와 안식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얘기하면서 감정이 격해진다. 정말 보기 힘든 모습이다. 반바지 운동복 차림에 호루라기와 클립보드를 들고 있는 평범한 중년 남자가 이곳 미국 중서부에서 거의 대량학살에 가까운 상황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구덩이를 파 놓고 사람들을 총살한 다음 구덩이 안에 매장해 버릴 수만 있다면 이 정부는 충분히 그렇게 했을 거란 생각이 기지를 떠나면서 들더라고요." 그가 말했다. "우리 정부는 뉴올리언스에서 탈출한 흑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요. 단지 귀찮고 성가신 골칫거리일 뿐이죠." 2005년 9월 16일 금요일 오늘 아침 포트스미스의 의사들이 테리의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컨벤션센터와 버스에서 그녀를 괴롭힌 통증은 비브리오 불니피쿠스 때문이었다. 테리가 물을 건너다 감염된 이 박테리아는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로 그녀가 컨벤션센터에 있는 동안 그녀의 몸을 망가뜨렸다. 감염 때문에 그녀의 몸은 여전히 불덩이고 너무 많은 진정제를 투여한 상황이라 그녀는 말도 제대로 못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윌리 메이는 테리의 오른쪽 다리는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다. 기자 후기 포트스미스에서 윌리 메이 데이비스 가족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세인트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차를 사고 아파트를 얻고 일자리를 구하면서 새로운 도시에 정착했다. "이곳은 참 좋아요. 계속 여기서 살 겁니다. 정말요." 9월 말에 래리 로드리게스가 한 말이다. 천만다행으로 테리의 오른쪽 다리도 무사했다. 왼쪽 다리를 절단하자 증상이 완화됐던 것이다. 몸은 쇠약해졌지만 병이 많이 나아져 그녀는 지금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