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복음
1700년 만에 발견된 유다복음에 의하면 유다는 배반자가 아니라 예수의 가장 충성스러운 제자였다고 한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로덜프 카세어(78) 교수가 약간 떨리는 손으로 고문서를 집어 들더니 강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페-디-아-칸-아우스 엔타이 플라-나이." 기이하게 들리는 이 단어들은 기독교 초창기 때 이집트에서 통용되었던 콥트어로, 초대교회에서 유다복음을 금서로 선포한 이래로 기독교인들은 이 특이한 언어를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유다복음 필사본 한 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집트 사막에 수세기 동안 묻혀 있다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발견된 것이다. 그 후 골동품 암거래 시장으로 사라졌다가, 한 거래상이 이를 뉴욕 주 힉스빌에 있는 은행금고 속에 16년 동안 방치해 두었다. 카세어 교수가 파피루스로 만든 이 고문서를 손에 넣었을 때 이 문서는 이미 조각조각 바스러져 가고 있었다. 이 고문서에 실린 내용이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세계 최고의 콥트어 전문가 중 하나로 꼽히는 카세어 교수는 문서를 다 읽고 나서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참 아름다운 언어지요? 희랍 문자로 쓴 이집트어예요." 그는 웃으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유다복음 첫 장의 첫 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께서 가롯 유다와 나눈 대화에서 드러내신 비밀을 밝히노라…" 기독교 역사상 제일 미움을 많이 받아 온 인물이 재등장한 것이다. 예수의 측근이자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가롯 유다, 그는 예수에게 입 맞추는 것을 신호로 예수가 누구인지 알려 주고 그 대가로 은화 30냥을 받았다.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겼다는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유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다 목을 매 자살한다. 이런 연유로 유다는 배반의 상징이 되었다. 유다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묘사에는 다소 악의적인 역사적 배경이 있다.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종교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사상가들은 유대인을 예수를 체포하고 처형한 민족으로, 그리고 유다를 그런 민족의 대표로 지목하는 것이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데 편리하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4복음서(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는 유다와 유대인 대제사장들을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본디오 빌라도 로마총독에 대한 묘사는 긍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유다복음은 유다를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영웅이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의 명에 따라 그를 로마당국에 팔아넘겼다. 자신이 증오의 대상이 될 것임을 분명히 알고서도 말이다. 유다복음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기 때문에 성서와 관련된 다른 가짜 유물들처럼 이 고문서도 위조품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러 검사들을 거친 결과 이 유다복음 필사본은 진짜 고문서로 판명되었다. 유다복음 필사본의 복구와 번역 작업을 지원하고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에서는 애리조나대학교에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실험실에 파피루스 사본(코덱스)의 분석을 의뢰했다. 파피루스와 가죽 장정에서 떼어 낸 견본 5건을 검사한 결과, 연대는 AD 220년과 340년 사이로 나왔다. 잉크도 황산철과 재를 섞어 만드는 고대 잉크 제조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콥트어 학자들은 이 필사본에 나타난 독특한 문체로 미루어볼 때 이 문서가 희랍어로 된 유다복음에서 콥트어로 번역됐다고 말한다. 1~2세기에는 대부분의 기독교 문서가 희랍어로 기록되었다. 또 다른 증거는 먼 과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AD 180년경, 로마의 속주 갈리아 지방(현재 프랑스 리옹)의 주교였던 이레나이우스는 '모든 이단들을 논박함'이라는 막대한 분량의 논문을 저술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대해 정통 교회와 견해를 달리하는 모든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배반자' 유다를 숭배한 단체도 그의 공격 대상이었으며, 그는 이들이 "유다복음이라 불리는 가짜 역사"를 지어 냈다고 기록했다. 카세어가 손에 들고 있는 유다복음 필사본이 기록되기 수십 년 전, 이 분노에 찬 주교는 희랍어 원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레나이우스는 수많은 이단들과 싸워야 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교회, 즉 신부와 주교를 중심으로 하향식 위계질서로 조직된 교회는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를 따르는 여러 단체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카세어와 함께 번역작업을 했던 채프만대학교의 성경학자 마빈 메이어는 당시 기독교의 상황을 '정통 교리를 확립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레나이우스가 싸워야 할 이단들 가운데 대다수는 유다복음에 드러난 비정통파 교리를 따르는 영지주의자(그노시스파)들이었다. "그노시스는 그리스어로 '영지(靈智)'라는 뜻입니다"라고 메이어가 설명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선(善)의 궁극적 원천을 믿었어요. 그리고 그 원천이 물질세계 외부에 있는 신성한 정신이라고 생각했죠. 인간은 이 신성한 정신의 한 요소인 신성한 불꽃을 지니고 있지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세계가 이 불꽃을 차단해 버렸다고 믿었죠."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불완전한 이 세상을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 그보다 열등한 조물주의 작품으로 여겼다. 이레나이우스와 같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인 동시에 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반면, 영지주의자들은 평범한 사람들도 신과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간의 영 속에 있는 신성한 불꽃을 지펴 신성한 정신과 재결합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신성한 불꽃을 밝히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한데, 영지주의자들은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즉, 그의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신성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레나이우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신비주의자들이었어요. 신비주의자들은 언제나 제도화된 종교의 분노를 사게 마련이죠. 신비주의자들은 자기 내면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에 중재자 역할을 하는 성직자가 필요없거든요." 메이어는 말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레나이우스는 리옹의 신도들이 마르커스라는 영지주의 설교자에게 현혹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모든 이단들을 논박함'의 집필에 착수한다. 마르커스는 예언을 해서 하나님과 직접 교류한다는 것을 보여 주라고 초신자들을 부추겼던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그런 교리들은 이레나이우스 같은 정통파 성직자들의 신랄한 비난 속에서나 등장했다. 그런데 1945년, 이집트 농부들이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서 토기 항아리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수백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영지주의 고문서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도마복음, 빌립복음, 진리복음을 비롯해 완전히 새로운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들이 12여 권이나 있었다. 기독교 초기에는 이런 비정통파 복음인 외경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복음서들보다 더 많이 읽혔던 것 같다. "우리가 발견한 2세기에 기록된 대부분의 필사본들, 또는 그 필사본들의 일부는 비정통파 기독교 성서들을 필사한 겁니다"라고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종교학 교수인 바트 어만은 말한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초기 기독교의 외경이 재등장한 것이다. 신약성경에 정식으로 포함된 사복음서와 모순되는 '복음서'의 존재에 어떤 이들은 매우 곤혹스러워한다. 나는 워싱턴 DC의 한 식당에서 메이어와 점심 식사 중이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사건이에요." 메이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유다복음은 왜 예수가 제자들 중 유독 유다만을 '친구'라고 불렀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던 거죠." 어느덧 손님들이 다 떠나고 식당에 우리만 남았을 때였다. 지배인이 다가오더니 머뭇거리며 메이어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거기에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가까이 앉아 있던 손님이 메이어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어느 복음서든, 심지어 우리에게 친숙한 사복음서에서도 그걸 쓴 저자들이 정말 자신들이 묘사한 사건들을 목격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카디아신학대학교의 복음주의 기독교 성경학자인 크레이그 에반스는 궁극적으로 사복음서가 다른 복음서들을 압도한 이유는 사복음서가 신빙성 있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고난에 대해 서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개 가난했기 때문에 필사본을 여러 권 소장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신도들은 '요한복음서만 필사해 주세요'라고 말했을 겁니다. 성경에 포함된 복음서들은 신도들 자신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여긴 것들이었죠"라고 그는 주장한다. 아니면 단순히 다른 복음서들이 정경으로 올라서려는 다툼에서 패배했던 건지도 모른다. 유다복음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영지주의파와 정통파 교회 간의 갈등을 생생히 보여 준다. 유다복음의 첫 장면에서 예수는 세상을 창조한 파괴적인 신을 의미하는 "너희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제자들을 비웃고, 제자들을 신전(당시 주류 교회를 가리켰을 것이 거의 확실시 됨)의 성직자에 비교한다. 그는 신전의 성직자를 "내 이름을 욕되게 하며 열매 없는 나무"를 심는 "거짓 성직자"라고 부른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똑바로 보고 그가 진정 누구인지 깨달으라고 촉구하지만 제자들은 외면한다. 가장 중요한 구절은 예수가 유다에게 "나의 육신을 입은 자를 네가 희생제물로 바칠 것이니"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쉽게 말하면 유다가 예수를 죽이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를 위한 일이었다. "사실 육신 그 자체는 예수가 아닙니다. 예수는 육신을 제거함으로써 그 내면에 있던 신성한 존재, 즉 진정한 그리스도를 해방시킨 거죠"라고 메이어는 말한다. 유다에게 이런 임무를 맡겼다는 사실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각별한 사이였음을 시사한다. "너의 눈을 들어 구름을 보라. 그리고 그 구름 안의 빛과 그 주위의 별들을 보라." 예수가 유다에게 직접 심오한 뜻을 전하는 부분이다. "길을 이끄는 별이 네 별 일지라." 결국 유다는 계시를 받고 "빛이 가득한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땅에 있던 사람들은 구름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이 부분의 파피루스가 찢어져 사람들이 무엇을 들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유다복음은 유다가 "돈을 받고" 예수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예수를 넘겨 준다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갑자기 끝난다. 크레이그 에반스에게 이 이야기는 단지 무의미한 소설일 뿐이다. "유다복음에는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유다복음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새롭고 중요한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이 문서는 초기 기독교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기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찾기 위해 복음서들을 연구하는 겁니다." 프린스턴대학교의 종교학 교수인 일레인 페이절스의 말이다. "이건 엄청난 발견이죠. 분노할 사람들이 꽤 많을 겁니다"라며 바트 얼만도 동의한다. 루웨이스 안토니 신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루웨이스 신부는 이집트 동부 사막지대의 성 안토니 수도원에서 27년 동안 살고 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이 친절한 신부에게 단순히 예수의 요청으로 그를 팔아 넘겼기 때문에 결국 유다는 선한 사람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봤다. 루웨이스 신부는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비틀거리며 문을 꼭 잡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전에 신부는 나를 사도교회 안으로 데려갔는데, 우리 발 밑에는 최근에 발굴된 방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이 방들은 성 안토니가 4세기 초에 자신이 설립한 수도원 공동체를 위해 직접 지은 것이다. 성 안토니 수도원의 설립은 이디오리트모스 수도원제도의 발단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역사상 유명하다. 수도원이 설립되고 몇 년 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가 갈대펜을 들고 새 파피루스에 "예수께서 가롯 유다와 나눈 대화에서 드러내신 비밀을 밝히노라…"라고 필사하기 시작했다. 이 필경사는 성 안토니 수도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을 것이다. 유다복음 필사본이 발견된 곳으로 알려진 지역은 수도원에서 서쪽으로 6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수도사였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수도사들은 영지주의 복음서를 소중하게 여겨 도서실에 보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4세기 말에 이르자 그런 책들을 소지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이 되었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지만, 정통파 교회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정통파 교회들은 세금 혜택은 물론이고 부와 특권을 마음껏 누린 반면, 정통파 교리와 견해를 달리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단으로 낙인 찍혀 지원은커녕 많은 불이익을 당해야 했으며 결국 집회까지 금지당했다. 그 당시 이레나이우스는 이미 사복음서를 기독교인의 유일한 필독서로 지명했고 궁극적으로 그의 목록은 교회의 정책이 되었다. 367년에는 이레나이우스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알렉산드리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지금의 사복음서를 포함한 27권의 신약성서만이 성스럽다고 결정하고 이 소식을 이집트 기독교인들에게 통보했다. 이 목록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신약성경이 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문헌들이 자취를 감췄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숨겨진 문헌들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목이 긴 단지 안에 들어 있던 고문서들은 그 근처의 성 파코미우스 수도원 수도사들이 숨겨 놓았던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영지주의 고문서 3권과 함께 묶여 있던 유다복음은 혼자서도 쉽게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고문서들은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사회격동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1983년 5월 초, 로마에서 작업 중이던 대학원생 스티븐 에멀은 동료 학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에멀에게 스위스로 와서 어떤 사람이 팔겠다고 내놓은 콥트어 문서들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까지 이 문서들을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멀과 그의 동료 2명은 스위스 제네바의 한 호텔 방으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영어를 못하는 한 이집트인과 그의 통역을 맡은 그리스인을 만났다. "구두상자 세 통 분량의 문서를 확인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30분 정도였어요. 상자 안에는 신문지로 싼 파피루스 문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이나 메모는 못하게 했어요"라고 에멀은 말했다. 그는 파피루스가 이미 바스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감히 손으로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문서를 들어 올리며 봤는데 유다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에멀은 이 이름이 또 다른 예수의 제자인 유다 도마로 착각했지만 이 문서가 전혀 세상에 알려진 바 없는 중대한 문서라는 사실은 금세 알아차렸다. 에멀의 동료 한 명이 흥정을 하러 욕실로 갔다. 에멀은 5만 달러 이상은 주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고 매각자들은 300만 달러 이하는 절대로 안 된다고 우겼다. "그렇게 많은 돈을 낼 사람은 없었죠." 현재 독일의 뮌스터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에멀 교수는 말했다. 그는 협상 당시 "상태가 양호했던" 고대문서를 기억하며 그 때 이후 문서들의 상태가 악화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에멀은 자리를 빠져 나와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정신없이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17년 동안 에멀은 물론 그 어느 학자도 이 문서들을 볼 수 없었다. 유다복음 필사본의 현 소유주들에 따르면 제네바 호텔방에 왔던 이집트인은 해나라는 이름의 카이로 골동품 상인으로, 그는 고대문서를 찾아다니는 도굴꾼에게서 유다복음 필사본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도굴꾼이 어디서, 어떻게 고문서들을 입수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해나가 사들인 고문서들은 그가 외국으로 반출하기 전에 전부 도난당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문서들은 이집트에서 밀반출돼 다른 거래상의 손에 들어갔다고 한다. 후에 해나는 유다복음 필사본 등 도난당한 문서 몇 점을 다시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옛날에는 진귀한 유물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밀반출되었는지 조사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떤 외지인이든 유물을 손에 넣어 외국으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유물이 풍부한 나라들은 현재 개인이 유물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문화유산이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려고 한다. 박물관처럼 신뢰할 만한 구매자들도 유물의 기원이나 출처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도난이나 밀반출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노력한다. 도난 사건이 발생한 1980년 초에는 이미 이집트에서 미등록 유물을 소지하거나 정부의 승인 없이 유물을 해외로 반출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이 법이 정확히 어떻게 유다복음 필사본에 적용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도난 사건 이래로 출처에 대한 의문이 유다복음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해나는 유다복음을 최고가에 매각할 작정을 했다. 제네바에서 만난 학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자 유다복음의 가치를 확인한 그는 재력가를 물색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하지만 해나는 매각에 실패하고 결국 뉴욕을 떠나기 전에 뉴욕 롱아일랜드의 힉스빌에 있는 시티은행 안전금고를 빌려 유다복음을 비롯한 고대 파피루스 뭉치를 넣어 둔 채 그냥 카이로로 돌아온다. 금고 안에서 고문서들이 훼손되는 동안, 해나는 다른 구매자들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항상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불렀다고 한다. 마침내 해나는 2000년 4월 고문서들을 매각한다. 구입자는 이집트 태생의 그리스인 프리다 누스버거-차코스였는데, 그녀는 파리에서 이집트학을 공부한 후 경쟁이 매우 치열한 유물업에 뛰어들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 인물이었다. 그녀는 유다복음의 구입가가 30만 달러라는 소문은 "틀렸지만,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예일대학교의 바이니키 희귀본 도서관에서 고문서들을 구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도서관의 필사본 전문가인 로버트 배브카크 교수에게 고문서들을 맡겼다. 며칠 후, 차코스가 취리히 집에 가려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맨해튼을 나섰을 때 배브카크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전한 소식은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휴대전화로 들려 오는 그의 흥분된 목소리였다. 배브카크가 얼마나 흥분했었던지 맨해튼의 러시아워 소음 속에서도 차코스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이건 엄청난 문서'라며 '유다복음 같다'고 말했는데, 내 귀에는 지나치게 흥분돼서 떨리는 그의 목소리만 들리는 거예요." 차코스는 나중에 어두운 대서양을 건너면서 비로소 자신이 그 전설적인 유다복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인들은 '모이라(운명)에 대해 얘기한다. 그 후 몇 달 동안 차코스는 자신의 모이라가 유다복음과 함께 재수없는 방향으로 꼬이는 걸 감지하기 시작한다. "마치 저주처럼…". 바이니키 희귀본 도서관에서는 유다복음을 5개월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배브카크 교수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출처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구입 포기 의사를 밝혔다. 차코스는 예일대학교에서 발길을 돌려 오페라가수 출신의 고문서 거래상인 브루스 패리니가 있는 오아이오 주 애크론으로 향했다. 패리니는 유다복음을 포함한 다른 고문서들에 대한 대가로 차코스에게 그가 소유하고 있는 니모라는 회사와 맺은 매매계약서 1장과 125만 달러 어음 2장을 내놓았다. 취재를 위해 패리니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보려고 몇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통화하지 못했다. 패리니가 유다복음을 갖고 있는 동안 이 고문서를 본 사람들은 그가 순서를 바꿨다고 말한다. "문서를 더 완벽하게 보이게 하고 싶었을 겁니다." 문서 복원을 돕고 있는 콥트어 전문가 그레이고 벌스트의 추측이다. 하지만 유다복음의 훼손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차코스는 이 거래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친구인 마리오 로베어티가 '니모'는 라틴어로 '아무도 아님'을 뜻한다고 얘기하자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재치 있고 매력적인 스위스인 변호사 로베어티는 골동품 거래상들의 세계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메세나 고미술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차코스의 얘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말한 그는 기꺼이 그녀가 유다복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마침내 2001년 2월 차코스는 유다복음을 돌려받아 스위스로 갖고 왔다. 그리고 5개월 후 그녀는 카세어를 만난다. 그 순간, 유다복음은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뀌었다고 차코스는 말한다. 카세어가 파피루스 조각에 적힌 콥트어를 힘들여 번역하기 시작하자, 로베어티에게 출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원본은 이집트로 반환하기로 약속하고 번역과 방송 판권을 판다는 것이었다. 현재 유다복음을 관리하고 있는 메세나 고미술재단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53쪽 참조). 유다복음의 매매 문제에서 해방된 차코스는 마치 자신이 영지주의자인 양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어요. 유다의 이미지를 회복시키라는 사명이 내게 맡겨졌던 거예요"라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제네바 호숫가에 있는 한 건물 2층에서 고문서 복원전문가가 아주 작은 파피루스 조각을 조심스럽게 제자리로 옮겨 놓자 고대 문장의 일부가 완성된다. 유다가 세상과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