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혼이 깃든 에야와디 강
이런저런 고초가 많은 미얀마 사람들에게 에야와디 강은 희망의 원천이다. 미얀마인들은 이 강에서 몸을 씻고 물을 마시며 이 강물을 따라 이동한다. 그리고 여기 에야와디 강에서 기도한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에야와디 강에는 수많은 정령들이 살고 있고 정령숭배는 제법 큰 사업이 되었다. 모터보트로 느긋하게 가다 따야곤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른다. 정령 축제인 '낫 브웨'를 보기 위해서다. 구경꾼들로 큰 초가가 떠들썩하고 악사들은 열정적으로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맞은편에 있는 높은 단 위에는 나무로 만든 조각상들이 있다. '낫', 즉 정령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구경꾼들 틈을 비집고 단 밑으로 들어가니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표 떼 빠인(33)이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낫 거도', 말 그대로 '정령의 부인'으로 무당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게 있다면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장 남자로 입술은 빨갛게 칠하고, 두 눈엔 검은 색 아이라인을 긋고, 두 뺨은 부드럽게 분칠하고 있다. 소 달구지를 타고 마을에 왔기 때문에 내 두 팔과 얼굴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다. 빠인이 공들여 치장한 모습을 보니 내 몰골이 부끄럽다. 나는 매니큐어를 곱게 바른 빠인의 손을 잡고 인사하면서 추한 모습으로 나타나 미안하다는 뜻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웃는다. 낫 숭배는 고대부터 내려온 미얀마의 정령신앙이다. 11세기 아노야타 왕은 상좌부(노력으로 깨달음에 이른 아라한을 이상적 불교도로 보는 소승불교의 한 종파)를 국교로 삼고자 했다. 아노야타 왕은 불경에서 밀교로 간주하여 금하는 낫 숭배를 근절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왕은 낫 숭배를 근절하는 대신 변형하여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37개의 정령을 부처의 하위 존재로 공인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미얀마에는 사찰마다 본전에 딸린 정령 '낫 신'의 사당을 볼 수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여전히 공인된 정령이 아닌 다른 정령들도 숭배하지만 공식 정령들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유랑극단 소속 무용수와 가수, 연주자는 정령들의 격정적인 삶과 뜻밖의 죽음을 재현하여 마치 인간들의 이야기처럼 보여 준다. 하지만 정령의 부인, 즉 낫 거도는 배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낫 거도들은 정령들이 실제로 몸 안에 들어와 자신들을 사로잡는다고 믿는다. 정령마다 각기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의상, 장식, 소품도 달라야 한다. 여자 정령들도 있는 듯하다. 이런 경우 남성 낫 거도는 여자로 분장한다. 정령이 전사나 왕이라면 갑옷과 무기가 필요하다. 대다수 미얀마인에게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업보다. 전생에 큰 죄를 지은 탓이라는 것이다. 많은 미얀마 여성들은 절에서 제물을 바치며 내생에는 남자로 환생하게 해 달라고 빈다. 미얀마 사람들은 남성 동성애자로 태어나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는 모습 중 가장 비천하다고 생각한다. 미얀마의 남성 동성애자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도 이러한 인식 때문인 듯하다. 그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지 내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남성 동성애자들이 낫 거도가 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낫 거도가 되면 자신을 멸시하는 사회에서 감히 맛볼 수 없는 힘과 권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랑극단의 우두머리 빠인에게서 당당함과 자신감이 발산된다. 그의 커다란 가방에는 화장품과 알록달록한 옷이 가득하고 단 밑에 마련된 공간은 분장실 같다. 빠인은 겨우 열다섯 살에 공식 낫 거도가 됐다고 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옮겨 다니며 공연하느라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양곤에 있는 '문화학교'에서 37위 정령의 춤들을 모두 배웠다. 기량을 완전히 습득하는 데 20년이나 걸렸다. 이제 서른세 살이 되어 유랑극단을 이끌면서 축제가 열리는 이틀 동안 110달러를 번다. 미얀마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꽤 많은 돈이다. 빠인은 아이라이너로 눈의 윤곽을 뚜렷하게 살리고 윗입술 위에 정교하게 수염도 그린다. 빠인이 '고 지 쪼'로 분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고 지 쪼는 악명 높은 도박과 음주, 음란의 정령이다. 곡주에 취한 구경꾼들이 고 지 쪼를 어서 등장시키라며 야유하고 고함친다. 몸에 착 달라붙는 녹색 드레스 차림의 남성 낫 거도가 고 지 쪼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불협화음이 들리고 무대 한쪽 밑에선 교활한 인상에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불쑥 올라온다. 하얀 비단 셔츠를 걸친 사내는 담배를 물고 있다. 구경꾼들이 좋아하며 왁자하게 웃고 떠든다. 빠인의 몸이 음율에 따라 흔들린다. 두 팔을 높이 든 상태로 손을 위아래로 날렵하게 움직인다. 그의 몸놀림에는 절제된 긴박감이 감돈다. 당장이라도 신들린 춤이 시작될 듯하다. 빠인이 중후한 저음으로 구경꾼들에게 말할 때면 방금 전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공덕을 쌓으시오!" 빠인이 지폐를 던지며 구경꾼들에게 훈계한다. 사람들이 지폐를 차지하기 위해 밀고 밀리면서 소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혼란은 눈 깜짝할 사이 끝난다. 찢어진 지폐가 퍼레이드용 색종이 조각처럼 땅바닥에 널려 있다. 고 지 쪼는 사라진다.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연기자들이 나타나 접신 의식의 시작을 알리자 음악이 갑자기 빨라진다. 빠인이 구경꾼 중 두 여성을 붙잡는다. 오두막의 주인인 조의 부인과 처제다. 빠인이 여인들에게 기둥에 연결된 밧줄을 건네며 잡아당기라고 명령한다. 겁먹은 여인들이 순순히 따르는 순간 두 눈의 흰자위가 드러나며 몸을 떨기 시작한다. 갑자기 어떤 기운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두 여인은 신들린 듯 빙빙 돌며 춤을 추다 구경꾼들에게 부딪히기도 한다.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이 없는 듯한 여인들이 쿵쿵거리며 정령의 제단으로 걸어가더니 날이 넓은 칼을 집어 든다. 두 사람은 칼을 허공에 휘두르며 내 코 앞에서 춤을 춘다. 어디로 도망가면 빠를까 궁리를 하는데 여인들이 풀썩 쓰러져 흐느끼더니 가쁜 숨을 헐떡인다. 낫 거도들이 여인들을 도우려 달려와서는 두 팔로 안는다. 두 여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구경꾼들을 쳐다본다. 조의 부인은 막 꿈에서 깬 듯한 얼굴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초췌한 얼굴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누군가 그녀를 부축해서 나간다. 빠인은 여인들이 조상신인 정령에 사로잡혔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조상신들이 이제 조의 가족을 보호할 것이라고 한다. 집 주인 조가 정령들에게 '바치려고' 자식 둘을 데리고 오니 빠인이 복을 빌어 준다.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으로 접신 의식은 끝이 난다. 빠인이 무대 밑에서 검정색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와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술 취한 구경꾼들이 휘파람을 불며 빠인을 놀린다. 빠인은 개의치 않는 눈치다. 누가 누구를 불쌍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내일이면 빠인과 무용수들은 적잖은 돈을 갖고 따야곤을 떠날 것이고 마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