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 나노
극미세 기술이지만 엄청난 부가가치와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나노기술. 벌써 우리 옆에 와 있는 이 첨단기술의 미래를 살펴보자.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쓰나미를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장이 길고 파고가 낮은 쓰나미의 파괴력은 해안에 이르러서야 그 위력을 드러낸다. 기술혁명의 도도한 물결도 이처럼 부지불식간에 밀려온다. 신기술 역시 대양 한가운데 있을 때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나노기술은 20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실용화의 첫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컴퓨터 혁명은 초라한 과거의 역사가 될 것이다. 나노기술은 우리가 입는 바지에서 전지, 항암치료까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나노기술의 핵심은 작다는 점이다. 정말 작다. 나노라는 말은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나노는 나노미터(nm)의 줄임말로 10억 분의 1m를 가리킨다. 너무 작아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에 비유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쉼표 하나는 50만nm 정도다. 달리 설명하자면 남성이 면도하는 사이 자라는 수염의 길이가 1nm다. 나노기술이 중요한 것은 물질을 나노 크기로 줄이면 특이한 성질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포일을 아무리 잘게 잘라도 알루미늄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작게 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르기를 계속해 크기가 20~30nm까지 줄면 알루미늄 조각이 폭발할 수 있다. 나노 크기의 모든 물질이 이로운 성질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몇 물질은 나노 크기에서 성질이 변하여 아주 유용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공학자들은 이런 물질들을 이용하여 기막힌 신소재를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전도성 플라스틱, 철의 부식을 방지하는 코팅 따위가 좋은 예다. 이를테면 고양이를 계속 축소시키니 어느 시점에 이르러 개로 둔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노 크기가 되면 물질은 마법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탄산칼슘 분자를 톱니 모양으로 배열하면 푸석푸석하고 무른 분필이 된다. 똑같은 분자를 벽돌처럼 쌓아 올리면 전복 껍데기처럼 딱딱한 무지개 빛깔의 단층이 형성된다. 원자구조를 바꾸면 이상적인 성질의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는 정말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자들은 주사터널현미경(STM) 같은 초정밀 기구를 이미 개발했다. 정교하게 연마한 STM의 뾰족한 탐침은 폭이 원자의 지름 정도로 원자를 관찰할 수 있으며 원자의 위치를 옮기는 등 조작도 가능하다. "나노기술은 플라스틱 발명에 버금갈 것"이라고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산하 나노공정센터의 폴 알리비사토스는 말한다. 그는 나노기술이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외과용 메스, 우리가 입는 옷 등 모든 분야에 응용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갭 브랜드의 얼룩 방지 나노바지 한 벌을 갖고 있다. 이 나노바지의 소재는 플루오르화 나노폴리머로 처리한 옷감이다. "오늘 아침 바지에 커피를 엎질렀지만 멀쩡합니다. 커피가 구슬처럼 옷감 표면을 굴러 바닥에 떨어지더군요." 라이스대학교의 한 실험실에서 대학원생 앙드레 고빈이 닭고기 두 점으로 실습 중이다. 닭고기를 서로 가까이 대자 맞닿은 부분에서 초록색 액체가 흘러나오면서 찰싹 붙는다. 초록색 액체는 아주 작은 실리카 구슬에 금을 씌운 '나노셀' 용액이다. 고빈이 적외선 레이저 스위치를 켜고 초록색 선을 따라 적외선을 쏜다. 닭고기를 핀셋으로 집어 들자 닭고기 한 점만이 핀셋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언젠가 외과의들은 나노셀로 수술 중 잘린 정맥을 이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빈은 "신장이나 심장 이식 수술시 가장 힘든 작업이 잘린 혈관을 다시 잇는 것"이라며 "작은 바늘로 봉합해야 하는데 출혈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고빈이 쓴 나노셀 용액으로 혈관 양끝을 붙이기만 하면 완벽하게 봉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용접하듯 간단하게 말이다. 응용 가능한 나노기술 가운데 많은 분야가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지만 나노기술에 대한 투자열기는 뜨겁다. 지난해 미국 정부는 10억 달러 이상을 나노기술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인간게놈 연구가 절정에 이르렀을 당시 할당된 예산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다. 일본과 유럽연합이 지출한 나노기술 연구개발비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밖에도 여러 나라들이 이 신기술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한국의 어느 기업은 냉장고 내장제로 은나노 항균제를 사용하고 있다. 은나노 항균제는 붕대에도 활용할 수 있다. 다양한 산업과 지역에서 이 분야에 합류하고 싶어한다. 미 국립과학재단(NSF)은 오는 2015년 나노기술의 세계시장 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나노기술이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는 진입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실리콘칩을 제조하는 대규모 첨단공장 설립에 필요한 자본이 없어 컴퓨터 혁명에서 소외됐던 나라들도 나노기술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저렴한 태양전지용 나노구조를 개발하고 있는 나노시스 사의 스티븐 엠페도클레스 부사장은 "나노기술이야말로 비커 하나만 있으면 되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원자들이 스스로 감광성 격자구조로 자리잡을 때까지 유리판을 초고온에서 녹이는 기존 방식으로 태양전지를 제조하려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제조공장이 필요하다. 반면 태양전지용 나노구조는 설탕물을 냉장고에 넣을 때 설탕결정이 형성되는 것처럼 생성된다. "비커에서 나노구조를 100달러 상당의 출발시약과 섞습니다." 엠페도클레스의 설명이다. 이어 유리판에 출발시약과 섞은 나노구조를 묻히면 태양열 발전기로 탈바꿈한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컴퓨터의 플라스틱 몸체에 설치할 수도 있다. 사실 100달러만 있으면 누구든 온라인으로 나노입자, 특히 탄소나노튜브 1g을 구입할 수 있다. 주문만 하면 검댕처럼 보이는 물질이 조그만 지퍼식 비닐 주머니에 안전 설명서와 함께 소화물 상자에 담겨 배달된다. (안전 설명서에는 탄소나노튜브가 피부에 닿지 않도록 장갑을 끼고, 폐에 흡입되지 않도록 마스크도 착용하라는 경고 문구가 있다.) 사실 가정에서 극소량의 탄소나노튜브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라이스대학교의 또 다른 실험실에서 탄소나노튜브가 간직한 수수께끼들이 풀리고 있다. 마테오 파스칼리가 검은 실 몇 줄이 담긴 시험관을 들어 올린다. 실이 너무 뻣뻣한 나머지 풀을 먹여 다림질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수십억 가닥의 탄소나노튜브로 이루어진 실로 이론상으로는 방탄조끼 소재인 인조섬유 케블라보다 강도가 높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나노튜브에서 뽑아 낸 실의 강도는 스웨터 소재인 아크릴 섬유 정도밖에 안 된다. 탄소나노튜브 실이 약한 것은 한데 묶인 수십억 가닥 사이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새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파스칼리의 판단이다. 현미경 사진을 보면 머리칼 같은 연회색 섬유가 있다. 일부는 곧지만 끝이 풀려 곱슬곱슬한 것도 있다. "끝이 갈라졌어요. 나노튜브 유연제가 필요합니다." 파스칼리가 한숨을 쉬며 안타까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