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지하 유적
동굴탐사가들이 오랜 세월 잊혀졌던 하수도 안으로 들어가 물 속을 첨벙거리며 나아가거나 통로를 기어다니며 고대도시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루카가 머리를 하수구로 들이밀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씩 웃는다. 네르바 포룸(광장) 한가운데 있는 캄캄한 구멍 속으로 다리를 집어넣으며 말한다. "오늘은 하수구 냄새가 그렇게 심하지 않네." 그의 낙관적인 예상에도 불구하고 검은 구멍에서는 소변과 디젤, 진흙, 그리고 죽은 쥐 썩는 냄새가 뒤섞여 구역질이 날 만큼 악취가 풍겼다. 즉, 2500년 간 사용해 온 하수구에서 날 법한 그런 냄새가 난다. 어두컴컴한 구멍 아래 있는 응회암 터널 속이라고 해서 더 나을 건 없었다. 루카가 국방색 물 속을 걷기 시작하자, 신전의 파편들과 오랜 세월 동안 강물에 씻긴 탄산석회 조각들 외에도, 담배꽁초, 비닐봉지, 일회용 라이터, 고무 젖꼭지 등 현대인의 생활쓰레기들이 밟힌다. 한 모퉁이에서 그는 2000년쯤 된 깨진 암포라(항아리)를 가리킨다. 바로 옆에 일주일 전쯤에 깨진 듯한 페로니 맥주병이 진창 속에 놓여 있다. 이 모든 사례를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하수구에 쓰레기를 버려 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루카 안토놀리(49)는 동굴탐험가들이 결성한 '로마 소테라네아'라는 단체에 속해 있다. 이들은 로마 시의 위임을 받아 로마제국 멸망 이후 후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대로마의 신전, 도로, 가옥, 수로들이 잠자고 있는 엄청난 지하공간을 탐사하고 있다. 포룸 로마눔 지하에 있는 '클로아카 막시마(대형 하수구)'의 건축시기가 역사가들의 추정대로 BC 6세기가 맞다면 로마의 현존 구조물 중 최고(最古)는 아닐지라도 그에 가까운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아카 막시마를 완전히 탐사하고 측량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루카 안토놀리의 원래 직업은 외과의사다. 그는 우리에게 물이 피부에 닿지 않게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지상에서 흘러내린 물과 처리되지 않은 오수가 섞여 독하기 때문이다. 진지하고 신중한 루카는 이런 위험을 고려해 장갑, 장화, 모자 달린 방풍복, 마스크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틈새는 강력 테이프로 밀봉했다. 그가 가리키는 다른 관들 중에는 하수구로 맑은 지하수를 쏟아 내는 관들도 있고, 오수를 흘려 보내는 관들도 있다. 갈색 폐수가 졸졸 흘러내리는 경사 구간을 통과하는데, 이 위험한 장벽 너머에 깊은 구덩이가 있다. 지난 2000년 사이 어느 시점에 침식작용으로 바닥이 쓸려 나간 탓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절벽을 따라 가슴까지 차오르는 부유물로 가득한 물 속을 조금씩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뼈, 도기 파편, 진흙 따위로 하수구 전체가 막히다시피 해 더 나아갈 수가 없다. 하수구의 둥근 천장은 어둠 속 너머로 계속 이어지는 게 확실해 보인다. 도무지 얼마나 멀리까지 이어질지 궁금할 정도다. 로마 소테라네아는 이 장벽 너머를 조사하기 위해 원격조종 로봇을 보낼 계획이다. 루카는 클로아카 막시마가 북동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목욕탕'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최근 고고학자들이 이곳과 비슷한 하수구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초대형 두상을 발굴한 사실을 강조하며 이 하수구에도 귀중한 유물이 없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두상의 발견으로 황제들의 기록을 말살시키는 고대로마의 관습에 최초의 그리스도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가 희생되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클로아카 막시마와 같은 지하 공간은 로마가 확장을 거듭하며 스코틀랜드 남단에서 바그다드에 이르는 제국을 다스리며 서양사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성장한 과정에 대한 단서가 된다. 어둠 속에서 가는 물줄기가 파편들 사이로 흘러내린다. 한 사람이 더러운지 깨끗한지 묻는다. 루카는 어둠 속 저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더럽긴 하지만 아주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