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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질학자의 산사태 추적기

글 : 크리스티안 엘리엇 사진 : 코리 아놀드

지구온난화로 세계 전역에서 지반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특히 알래스카주에서는 산사태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선구적인 지질학자가 다음 대규모 산사태가 어디에서 일어날지 파악하고자 긴박하게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높이 약 600m에 이르는 좁은 절벽 끝에서 내려다보면 알래스카주 포티지호의 비취색 수면 위로 144명의 승객을 태운 유람선이 자그마한 흰 점처럼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유람선은 빙하의 가파른 전면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호수 저편 끝자락에는 관광 안내소가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관광 안내소는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뤄진 투박한 모습을 드러내며 물 위로 툭 튀어나와 있다. 그리고 이 절벽 바로 아래에서는 산사태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이 산사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듯 폭우 뒤에 토사가 비탈을 따라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그런 형태가 아니다. 그보다는 거대한 기반암 덩어리가 해마다 2m씩 움직이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언제든 갑작스러운 붕괴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그 아래에서는 쓰나미가 발생해 유람선이 전복되고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가 관광 안내소를 쓸어버리며 계곡을 물로 뒤덮을 수 있다. 심지어 추가치산맥과 케나이산맥 사이의 좁은 산악 고개인 포티지 패스까지 물이 흘러넘쳐 약 6km 떨어진 활주로와 유람선 선착장까지도 침수시킬 수 있다.
 
포티지호에서 촬영된 독립 지질학자 브렛우드 ‘히그’ 히그먼의 모습이다. 히그먼은 알래스카주 전역에 맞춤형 산사태 감시 장치를 설치해 주민과 방문객을 보호하고 산사태 위험을 정확히 파악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모두에게 ‘히그’라고 불리는 지질학자 브렛우드 히그먼은 어느 해든 산사태가 발생할 확률을 30분의 1로 보고 있다. 히그먼은 추가치 국유림의 신임 지질학자인 롭스 패리시와 나를 이번 산사태 조사 현장에 데려왔다. 우리는 언제든 무너질 듯 서서히 미끄러지고 있는 수십 미터 높이의 기반암을 기어오른 끝에 겨우 이 절벽 끝에 당도했다. 히그먼이 이 조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여기가 떨어져 나가고 있는 부분입니다.” 히그먼은 말했다. 앞쪽 툰드라가 크게 갈라져 있었다. 산철쭉과에 속하는 식물 군락이 쩍 벌어진 땅에서 끊겼다. 우리는 갓 녹은 눈이 커다란 점판암 조각들 사이를 흐르다가 여러 균열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히그먼은 발 아래 아득히 깊은 곳에서 약 3000만m³에 달하는 기반암이 아래쪽 빙하 방향으로 조금씩 밀려가고 있다고 본다. 산의 기저부가 우리가 서 있는 정상부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셈이다.
 
앵커리지에서 약 120km 떨어진 알래스카주 남부의 글레이셔 뷰 인근에서 서서히 진행되던 산사태가 잡목 숲을 덮치며 나무들을 쓰러뜨렸다.
이 산은 수십 년간 서서히 움직이다가도 예기치 않게 급속도로 이동하며 대규모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히그먼은 등산 배낭을 열어 나사식 뚜껑이 덮인 유리병에 넣은 맞춤형 감지기를 꺼냈다. 패리시 같은 정부 소속 지질학자들은 우선순위를 가려가며 대응할 수밖에 없다. 주 정부 및 연방 당국과 협력해 먼저 이런 산에서 잠재적으로 위험한 취약 지점을 찾아낸 후 후속 관리와 추적이 필요한지 공식 조사를 의뢰한다. 히그먼은 심층 산사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쓰나미를 진단하는 데 특화된 독립 지질학자로서 자신만의 도구와 기법을 개발해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과학자들 같은 정부 소속 과학자들의 발목을 잡는 관료주의적 체계에 맞서기 위해서다.

지난 10년 동안 히그먼은 과학계의 수호자 같은 인물로 알려지게 됐다. 정부가 늑장 대응을 할 때마다 산사태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한편 다음 대규모 산사태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과학자들이 더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도 연구해왔다. 이러한 재난을 막으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졌다. 알래스카주에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보다 몇 배나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포티지 빙하를 비롯한 수많은 빙하가 전례 없는 속도로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빙하가 후퇴하면 계곡의 벽면을 지탱하는 힘이 사라지는데 이를 ‘지지력 상실’ 현상이라고 한다. 이와 동시에 지반을 단단히 붙잡아주던 영구 동토층은 녹아내리고 있고 폭우가 자주 쏟아지는 추세다.
 
추운 산악 지방에서는 영구 동토층이 녹고 빙하가 후퇴하면서 심층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도 더욱 커지고 있다. 글레이셔 뷰에서는 빅토리 바이블 캠프 위로 솟아 있는 한 산봉우리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르웨이와 뉴질랜드, 스위스,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히말라야산맥, 칠레 등 전 세계적으로 빙하가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심층 산사태가 점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주에서는 이런 현상이 워낙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어 이 지역 자체가 귀한 실험실처럼 여겨진다. 1850년대의 산사태 기록까지 파헤친 히그먼의 연구에 따르면 알래스카주에서는 쓰나미를 유발하는 산사태가 지난 10년 사이에만 약 10배나 늘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산사태 전문가들은 종종 히그먼을 대동해 알래스카주로 몰려들고 있다. 알래스카주에서는 산사태가 워낙 숱하게 발생하다보니 국제 연구원들은 각자의 연구 주제에 맞는 최적의 사례를 직접 골라서 조사할 수 있을 정도다. 해안 지역에서는 빙하가 후퇴하면서 피오르 지형이 얼마나 불안정해지는지 연구할 수 있고 더 내륙으로 들어가서는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산비탈이 무너지는 이유를 밝혀내고 다음 붕괴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히그먼이 만든 300달러짜리 레이더 장치가 밀폐된 유리병에 들어 있다. 이 장치는 근처의 반사판에 쏜 신호를 통해 산사태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감지기는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무선으로 전송한다.
“우리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기 전에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공산이 큽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정말로 도움이 되는 뭔가를 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죠.” 히그먼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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