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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에 휩싸인 섬

글 : 마야 웨이-하스 사진 : 카르스텐 페터 외 1명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의 라팔마섬 일부를 집어삼킨 용암류는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격렬한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지역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줬다.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 다가갈수록 앞쪽에 있는 공기가 열기로 일렁였다. 나는 안내인 옥타비오 페르난데스 로렌소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까맣게 그을린 라팔마섬을 가로질러 갔다. 라팔마섬은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 속한 섬이다.

“우리가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거의 다 왔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한 용암 동굴의 입구를 몇 미터 앞에 두고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우리는 입구를 향해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최근 한 개인 드론 조작자가 이곳의 온도를 170°C라고 기록한 바 있다. 카나리아제도 동굴연맹의 부회장인 페르난데스 로렌소는 서서히 식어가는 이 동굴을 유심히 지켜봐왔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 용암 동굴 속으로 들어가 500년 만에 카나리아제도에서 발생한 가장 파괴적인 화산 폭발에 속하는 이번 분화에 대해 단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2021년 9월 19일부터 거의 86일 동안 라팔마섬 쿰브레비에하 화산 능선이 있는 고지대에서 균열이 발생해 용융된 암석이 흘러나왔다. 이 용암은 강줄기를 이루며 조금씩 아래로 이동했다. 화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화산이 분화하면서 2억m³가 넘는 용암이 분출됐고 지금 우리 일행이 서 있는 지점에 화산재와 암석으로 이뤄진 200m 높이의 원뿔형 산이 만들어졌다. 1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은 집들이 드문드문 자리한 푸른 소나무 숲이었다. 나는 위로 올라가자는 페르난데스 로렌소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위로, 위로, 위로, 위로.” 말을 내뱉을수록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다급해졌다. “이러다 화상을 입겠어요.” 아래쪽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돌풍에 바람의 방향이 바뀐 터라 지독하게 뜨거운 공기가 우리를 덮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현장을 살펴볼 더 안전한 자리를 찾아 원뿔형 산의 가파른 측면을 힘겹게 올랐다.

라팔마섬의 화산은 오래전부터 분화해왔지만 이곳에서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분화는 보통 위험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라팔마섬의 용암은 화학적 특성상 극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강물처럼 느릿느릿 움직인다. 라팔마섬에서 마지막으로 화산 분화가 일어난 것은 1971년이었다. 당시 남부 해안 인근의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용융된 암석이 뿜어져 나왔는데 피해는 비교적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로 라팔마섬의 인구가 늘어 현재는 707m²의 면적에 8만 6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지난해 화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은 건물 2800여 채와 350ha 면적의 농지, 70km에 이르는 도로를 집어삼켰다. 마그마의 열기가 남아 있고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탓에 앞으로 수년간 진행될 재건 작업은 쉽지 않을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6000만 명의 사람들이 활화산 지대에 살고 있다. 세계 인구가 계속 늘면서 라팔마섬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재난은 앞으로 더욱 흔해질 것이다. 어쩌면 이 작은 섬에서 일어난 일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이 섬의 주민들뿐 아니라 이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화산 재해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화산 활동이 라팔마섬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화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페르난데스 로렌소는 말한다.
 
강렬한 빛의 용암류 줄기들이 바다로 흘러들면서 라팔마섬의 해안선이 연장됐다. 화산 분화로 인근의 해양 생태계가 파괴됐지만 영양분이 풍부한 수중 암석들 위에서는 벌써 새로운 생명체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화산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약 80km 떨어진 아열대 군도 카나리아제도의 생명선이다.

영양분이 풍부한 용암류는 수 세기에 걸쳐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냈다. 15세기에 카스티야 왕국이 카나리아제도를 정복했을 때 그들은 원주민들을 약탈하고 토지를 사탕수수 농장으로 전환했으며 이후 그곳에서 다른 작물들을 경작했다. 2021년에 화산 분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라팔마섬의 지역내총생산(GDP) 중 절반은 수출용 바나나 산업이 차지했다.

카나리아제도에서 발생하는 화산 활동의 동인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활동력의 대부분은 열점으로 알려진 깊은 땅속에서 상승하는 뜨겁게 데워진 암석 물질의 기둥에서 얻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판이 이 열 기둥 위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새로운 화산 그리고 나중에는 작은 섬들이 생성된다. 라팔마섬은 카나리아제도에서 역사가 가장 짧고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한 섬에 속한다. 하지만 라팔마섬 북부의 화산들은 휴지기에 접어들었으며 지난 15만 년 동안 이 섬에서 발생한 화산 분화는 전부 쿰브레비에하 화산 능선을 기준으로 덥고 건조한 남부 지역에서만 발생했다.

쿰브레비에하 화산 아래에서 마그마는 장막처럼 솟아오른다. 분화는 같은 경로로 1회 이상 발생하지 않는데 이를 단성 화산 활동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일어난 화산 폭발이 보여주듯 다음에 분화할 곳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능선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주민들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큰 난제다. 게다가 지난 50년간 화산들이 휴지기에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섬이 지질학적 힘을 온전히 발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또한 분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과학자들이 관측한 화산 활동과 대중이 예측한 상황 사이에 격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21년 9월 11일부터 일어난 잦은 지진은 재해 발생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 가지 단서였다. 지반 또한 융기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반 아래에서 마그마가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섬 당국은 신속히 라팔마섬의 화산 폭발 시 비상 계획을 발동했고 이에 따라 여덟 개의 단체 및 대학교들로 이뤄진 과학위원회가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향후 일어날 일을 예측했다.

라팔마섬의 화산 폭발 시 비상 계획은 ‘교통신호’ 네 가지 색(녹색, 황색, 주황색, 적색)으로 점점 높아지는 화산 위험 수위를 알린다. 당국은 9월 13일에 황색 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분화 위험이 커지고 있으니 공식 발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수천 회에 이르는 지진은 진앙이 북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발생 지점이 얕아지고 강도는 더욱 세졌다. “목요일(9월 16일)에 우리 모두는 화산 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게 됐죠.” 스페인 전역의 화산 활동을 감시하는 공식 기구인 스페인국립지리연구소(IGN)의 화산학자 스타브로스 멜레틀리디스는 말한다.

관건은 분화가 언제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인근의 엘이에로섬에서는 2011년 화산이 분화하기 전 몇 달 동안 지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라팔마섬의 상황은 더 빠르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럼에도 과학위원회는 화산 폭발이 임박했다는 합의에 이르지 못 했다. 그러한 합의가 공표됐다면 정치인들이 화산 경보를 주황색으로 격상시키고 대피 작업에 착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피 과정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적기 발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너무 일찍 대피 명령을 내리면 위협 요소가 사라지기 전에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만약 사람들이 대피한 후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향후에 경고를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다.

9월 19일 아침, 당국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거동이 불편한 주민 수십 명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그 뒤로 화산이 폭발했다. 경계 경보는 여전히 황색을 가리키고 있었다.
 
용융된 암석은 아나벨 게르하르츠의 집을 비켜갔지만 대피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집에 딸린 수영장이 화산재로 가득 찬 모습을 발견했다. 모래 알갱이 같은 날카로운 화산재가 해당 지역 전역에 비 오듯 쏟아져 많은 집과 도로를 뒤덮었다.
그로부터 9개월 후의 어느 날, 나는 섀런 백하우스를 만났다. 그녀는 거의 10년째 카나리아제도 주변으로 체험학습 여행을 기획해온 영국 기업 ‘지오테네리페’의 책임자다. 라팔마섬의 참사 현장을 지켜본 그녀는 지역 주민들의 시선으로 화산 분화와 재건 노력을 기록하기 위해 섬에 남았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볼케이노스토리즈’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라라구나유치원 및 초등학교의 잔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발전기와 착암기의 소음이 들렸다. 교장인 모니카 비냐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주며 학교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설명하는 동안 백하우스가 그녀의 말을 통역했다.

비냐는 처음에 용암류가 학교를 비켜갔기 때문에 건물이 파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0월 20일에 학교의 운이 다하고 말았다.

세 동이었던 건물은 단 한 동만 남았다. 이런 혼돈의 상황은 특히 지역적 위험성을 이해하는 데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비냐에게 깨달음을 줬다.

“우리는 용암류가 뭔지는 알았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비냐는 말했다. 그녀는 이제부터 과학자들을 학교로 초빙해 화산 폭발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할 계획이다.


화산이 분화하고 약 1년이 흐른 현재 라팔마섬의 많은 가구들은 여전히 임시 주택에 거주하며 스페인 정부가 약속한 지원금과 재건 계획에 관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급히 대피하는 과정에서 법률 문서를 챙기지 못한 탓에 자신들의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외에도 이렇게 극적으로 변한 땅에서 어떻게 재건 작업을 벌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에 새로 용암류가 흘러간 지역 중 일부는 라팔마섬이 화산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수 있도록 국립공원의 형태로 보존될 가능성이 높다. 용암류에 뒤덮인 나머지 지역은 농업 및 건설 목적으로 개간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용암류가 흐른 땅의 대부분은 주민들이 ‘말파이스(황폐한 땅)’라고 부르는 곳이다. 또한 용암류가 갓 쌓인 땅에서는 농작물이 자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흙을 섬 내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와야 한다.

쿰브레비에하 화산의 예측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번 비극이 미래의 화산 활동에 대비해 교훈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경보 체계를 재정비한다면 대규모 대피 명령 같은 당국의 조치와 임박한 재난의 긴급성을 대중에 적절히 전달하는 조치를 별도로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교훈은 라팔마섬 이외의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나는 이웃한 테네리페섬의 수도 산타크루스에서 화산학자 멜레틀리디스와 함께 휴화산 지대에 사는 데 따르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카나리아제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이곳 테네리페섬에서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화산 분화에 대해 어떤 우려를 갖고 있는지 그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멜레틀리디스가 곧바로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그에 대해 걱정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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