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괴물들
글 : 노아 차니 사진 : 시릴 야즈벡
슬로베니아의 고대 전통 축제를 통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가면을 쓴 괴물들이 되살아났다.
이 행렬은 기독교 이전의 이교 의식에 뿌리를 둔 슬로베니아판 사육제 ‘푸스트’의 일부다. 기독교력으로 사순절 40일 전에 열리는 이 전통 축제는 때로는 교회 지도자에 의해서, 이후에는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하고 변경돼왔다. 그러나 축제의 의미가 봄철 자연 세계의 소생을 기린다는 점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결같았다.
오늘날 푸스트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문화 행사에 속한다. 축제 참가자들은 손으로 만든 정교한 의상과 가면을 착용한다. 그중 일부는 허리띠에 소의 목에 다는 방울을 달기도 한다. 방울은 그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때문에 겨울의 기운을 쫓아버리고 봄을 맞아들이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푸스트는 가장 오래된 의식에 속합니다. 이 의식은 슬로베니아에 기독교가 도래하기 수백 년 전에 시작됐어요.” 슬로베니아 출신의 민족지학자 야네즈 보가타이는 말한다.
푸스트는 각 마을과 자치구마다 자체적인 풍습과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모두가 지역 고유의 특징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프투이에서 열리는 ‘쿠렌토바니예 푸스트’는 아마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일 것이다. ‘쿠렌티’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동부 지역에 있는 이 축제의 도시로 수많은 인파를 끌어들인다. 세부 사항들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한 가지는 동일하다. 축제의 핵심이 바로 괴물이라는 점이다.
많은 축하 행사에서 봄을 불러오는 힘을 지닌 이런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아름다운 괴물”과 “추한 괴물”로 나뉜다. 아름다운 괴물(신혼부부와 의사 및 그 밖의 인물로 묘사됨)로 분장한 사람들은 집집마다 방문해 선물을 주고 집에서 직접 만든 독주를 얻어 마신다. 이들의 방문은 그 해의 남은 기간 동안 가정에 행운을 가져다준다.
푸스티예는 기독교 이전의 이교 의식에 뿌리를 둔 뿔 달린 괴물이다.
잡다한 모습의 괴물들이 뒤섞여 마을 외곽으로 행진한 후 그곳에서 짚으로 만든 푸스트를 불태운다.
마을 사람들은 이 유구한 푸스트 전통을 해석하는 방법에 특히 큰 자부심을 갖는다. 카날과 리크 인근의 마을에서는 이 축제를 리스키 푸스트라고 부르며 판금을 두드려 펴 만든 빛나는 가면 ‘바크레니’가 유명하다.
한때 구리로 제작됐던 바크레니 가면과 이를 착용하는 축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금속 공급이 바닥나자 맥이 끊겼다. 그러다 1950년대에 현지 주민들이 개조 공사가 진행되던 한 주택에서 19세기 구리 가면을 발견했다.
파벨 메드베시체크라는 이름의 화가가 보존한 이 가면은 주민인 브란코 즈니다르치치에게 영감을 줘 1980년대에 가면 만들기 풍습과 푸스트 축제가 되살아났다. 현재 브란코는 작업실과 그의 작품 200여 점이 전시돼 있는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파벨 메드베시체크가 보존해둔 문서와 밑그림을 바탕으로 아주 오래돼 기억 저편으로 거의 사라져버린 괴물들을 재구성하기 시작했죠. 파벨이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괴물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그려뒀거든요.” 즈니다르치치는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