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1934-2025)
글 : 데이비드 콰멘 사진 : 제인 구달 연구소 외
환경 보전 활동의 역사에서 제인 구달만큼 자연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놓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은 거의 없다. 본지는 본 협회의 기록 보관소에 남아 있는 사진들을 통해 몇 달 전 타계한 제인 구달의 눈부신 인생과 업적을 돌아보고자 한다. 일부 사진은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한때 인간은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겼다. 인간은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만물의 영장으로 한낱 동물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존재라고 말이다. 제인 구달은 오늘날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이 된 지역에서 야생 침팬지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그러한 인간의 자아도취적인 신념을 무너뜨리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구달은 침팬지와 인간 사이에 뜻밖에도 행동학적인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초석을 다지고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혁명적인 사고, 즉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인간을 만물의 정점에서 끌어내리는 이론을 계속 이어나갔다. 구달은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훗날 유전자 비교 연구를 통해 이 사실이 입증되기 훨씬 전에 세상에 알렸다. 현존하는 침팬지의 가장 가까운 친척뻘은 고릴라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인간이다.
구달은 영생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구달은 지난 10월 또 한 차례의 순회강연을 다니던 중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1986년에 과학자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환경 운동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그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펼치고 수없이 많은 매체에 출연했으며 정치 지도자들을 찾아가고 조용히 어린이들을 만났다. 이 모든 활동은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기 위한 노력, 즉 인간이 자연과 더 온화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구달이 9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며칠 뒤 그녀가 자연사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모호한 문구는 한 사람이 고령이었고 삶은 유한하다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충만한 삶이 마무리됐다고 표현했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긴 생애에서 1960년 7월 14일은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당시 26살이던 구달은 그날 오늘날 탄자니아 영토가 된 곰베에 도착해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적도 아프리카 지역의 고유종인 침팬지의 총 개체수는 약 100만 마리였다. 곰베 보호구역에는 고작 100마리 정도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약 100마리의 침팬지를 개체군을 대표하는 표본으로 볼 수도 있었다.
구달은 이 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생물학과 관련된 자격 요건도, 학위도 없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그녀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비서를 양성하는 직업학교에서 실무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야생동물과 일하거나 어쩌면 기자가 되고 싶다는 비현실적인 꿈이 있었고 맹렬한 투지와 열정도 있었다. 이를 처음 알아본 사람은 저명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였다. 리키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구달을 자신의 비서로 고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리키는 구달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구달에게 더 많은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한 리키는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을 권유했다. 리키는 침팬지의 행동학에 대한 연구를 하기를 원했다. 이를 통해 얻는 통찰력이 인류의 조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곰베에 도착한 구달은 예리하고 끈기 있는 관찰자가 됐고 침팬지들은 천천히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다. 침팬지들의 신뢰를 얻은 덕분에 그녀는 이전에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녀석들의 행동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달 만에 그녀는 세 가지 중대한 발견을 해냈다. 바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하며 또한 육식을 즐기기 위해 원숭이 같은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포식자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는 자연인류학자들이 ‘도구를 제작하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를 정의하는 표준적인 특징으로 여기고 대중은 침팬지를 서커스에서 묘기를 부리는 유순한 바보 같은 동물로 취급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발견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961년에 구달은 본 협회로부터 첫 번째 연구 보조금을 받았다.
구달이 밝혀낸 또 다른 사실은 당시 동물행동학자들이 내놓은 무미건조한 분석과 기존의 통념에 반하는 것이었는데 각각의 침팬지가 고유한 성격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녀 덕에 몇몇 침팬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예를 들면 곰베에서 그녀의 지지부진하던 연구 활동에 물꼬를 터준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프로도’, 구달에 따르면 곰베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큰 사랑을 받은 우두머리 암컷 ‘플로’ 등이다. 구달은 1963년부터 본지에 이 침팬지들과 더불어 새롭게 발견한 내용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이 기사들을 통해 그녀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기사에 함께 실린 젊고 아리따운 영국인 여성이 아프리카 밀림에서 유인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그녀가 명성을 얻는 데 한몫했다. 구달은 학사 학위가 없었음에도 1966년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구달은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고 중요한 일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자연이라는 세계를 온화한 동료애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영감을 줬다. 그녀는 세속성자의 분위기를 발산했지만 한낱 인간이었다. 예의 바르면서도 퉁명스럽고 남을 섣불리 판단할 때도 있었다. 누군가 싸움을 걸어오면 참지 않고 맞섰다. ‘비과학적인’ 감정주의를 내세운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연구원들에게도 맞섰다. 그녀는 날카로운 도덕주의자였으며 채식주의자였다. 하지만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구달이 평생 성인과 어린이를 위해 저술한 20여 권의 책 중 네 권의 제목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그녀는 희망이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기분의 문제가 아닌 의무라고 생각했다. 1977년에 그녀는 제인 구달 연구소(JGI)를 설립했다. JGI는 야생동물 개체군 보전 활동을 펼치는 한편 사육 상태에서 학대를 받다가 구조된 침팬지나 사냥꾼에 의해 어미를 잃은 침팬지 등 개별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에도 힘썼다. 1991년에 구달과 JGI는 ‘뿌리와 새싹’이라는 청소년을 위한 교육 및 활동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수 년 사이 그녀는 대영제국 훈장 사령관 여기사 작위를 받았고 유엔 평화 사절로 임명됐으며 교토상을 수상했다.
구달은 세찬 바람 속에서도 촘촘하게 자라나는 잔디처럼 강인했다. 한번은 그녀와 함께 침팬지 연구 차 깊은 오지에 설치된 캠프로 가기 위해 콩고의 습지림을 통과하며 13km를 걷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나와 제인 구달, 환경 보호 활동가 마이크 페이, 사진작가 마이클 “닉” 니콜스,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촬영 팀이 이곳에 온 것은 본 협회의 지원으로 구달과 침팬지들이 교감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이 같은 지형을 이동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샌들을 신고 반바지를 입은 채 걸었다. 하지만 곰베의 건조림에 익숙한 구달에게 이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날이 저문 후 연구 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발은 군데군데 물집이 잡히고 까져 있었다. “나는 예순여덟 살이에요. 다들 날 죽일 셈인가요?” 구달은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보호 차원에서 욱신거리는 발 부위에 강력 접착테이프를 감은 채 평소처럼 준비를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구달이 이 방법을 마음에 들어 하며 부탁했다. “데이비드, 나한테도 그렇게 해줄래요?” 나는 구달의 발에 강력 접착테이프를 칭칭 감아줬다.
둘째 날 아침, 숲으로 출발하기 전에 나는 구달에게 전날처럼 처치해주겠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제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구달은 말한 뒤 접착테이프를 빌려갔다.
제인 구달은 이 세상에 아들 휴고 에릭 루이스 반 라윅과 세 명의 손주, 여동생 주디스를 남기고 떠났다. 세계 곳곳에 그녀를 흠모하는 사람들과 무엇보다 젊은 여성으로서 그녀의 삶을 본보기로 삼아 희망과 열정, 포부를 키운 수백만 명의 여성들도 남겼다. 그녀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20만여 마리의 침팬지도 남겼다. 비록 침팬지의 개체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녀석들이 집단적으로 처한 위험은 전보다 덜 심각한 수준이며 녀석들이 귀중하다는 사실은 훨씬 더 분명해졌다. 이는 구달이 이 세상에 존재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