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까지 퍼져간 바이러스
글 : 르네 에버솔 사진 : 루한 아구스티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병원체가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 생태학자 제인 영거는 질병의 전파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지구에서 가장 외딴 대륙에 사는 동물들을 연구하고 있다.
본 협회 소속 탐험가 제인 영거가 불길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영거가 연구선을 타고 남극 웨들해에 떠 있던 때였다. “게잡이물범 사체가 더 발견됐어.” 인근 크루즈선에서 탐험대장을 맡고 있던 친구가 해빙 가장자리에 죽어 있는 게잡이물범들을 발견하고 보낸 문자였다. 영거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조류 독감이 남극 대륙에서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게잡이물범에게까지 전이된 것 같았다.
영거와 과학자들은 물범 사체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지점으로 향했다. 이 팀은 본 협회와 롤렉스가 함께 진행하는 롤렉스 퍼페츄얼 플래닛 해양 탐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꾸려졌다. 지난해 12월, 연구 팀은 얼어붙은 바다를 사흘 반나절 동안 항해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사이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해빙 가장자리가 산산이 부서져 있는 탓에 넓은 지역을 연구선으로 탐사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드론을 띄워야 했다.
곧 드론 카메라에 죽은 게잡이물범 한 마리가 포착됐다. 사체 일부가 유빙 조각에 얼어붙은 채 떠다니고 있었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원 겸 수의학자 아만딘 갬블과 영거는 고무보트를 타고 물범에게 다가갔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는 뇌에 집중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드라이버와 망치로 두꺼운 머리뼈를 조심스럽게 뚫은 다음 긴 면봉을 삽입했다. 그러고는 드러난 뇌 조직을 휘저어 채취한 후 완충액이 든 유리병에 넣어 밀봉했다.
지구 온난화로 더 많은 동물들이 극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이 때문에 질병이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돼 남극 대륙에 사는 야생동물들이 취약한 상태에 놓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범은 수명이 길고 번식 속도가 느린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물범이 사라지면 생태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 여파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죠.” 영거는 말한다.
연구 팀은 물범뿐만 아니라 펭귄과 사체를 먹는 조류들의 시료도 채취했다. 켈프갈매기와 도둑갈매기, 물떼새 등 죽은 동물을 먹는 조류들만이 항체가 있었다. 이는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있으나 감염된 이후에도 생존했다는 뜻이다. 펭귄에게는 항체가 없었다. 펭귄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펭귄은 청소동물과 달리 사체를 먹지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은 낮지만 만약 노출되면 죽는 것 같습니다.” 영거는 말한다.
영거의 장기적인 목표는 자신이 진행한 것과 같은 현장 연구들을 기반으로 남극해에 질병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기상학자들이 대기 정보를 활용해 폭풍을 예측하듯 유전 정보와 현장 조사 자료를 활용해 병원체의 이동을 추적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바이러스로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죽기 전에 과학자들이 미리 손을 쓸 수 있다.
영거는 앞으로 사체를 먹는 조류들이 질병 발생을 조기에 알려주는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 조류들이 백신 접종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영거는 말한다. 펭귄 같은 취약한 개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 녀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남극 대륙은 독특한 실험 장소죠. 전 세계로 확대 도입하기 전에 도구들을 시험하고 개선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영거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