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의 생태
글 : 마거릿 델 쥬디체 사진 : 루이스 A. 마사리에고스
초소형 몸집에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벌새는 조류 세계의 페더급 챔피언이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반짝이는 사파이어색과 파드득거리는 날개. 자그마한 새(아니 무슨 곤충 같기도 하고)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모습이 신기루를 보는 듯하다. 잠시 뒤 녀석이 다시 나타난다. 이번엔 훨씬 잘 보인다. 그래, 녀석은 분명히 새다. 엄지손가락만 한 놈이 정신 없이 날개를 파닥거린다. 일 초에 80번이나 날갯짓을 해대니 희미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나팔 모양의 밝은 오렌지색 꽃을 말똥말똥 쳐다보는 녀석. 바늘같이 뾰족한 부리에서 실처럼 가는 혀가 날름거린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는 화려한 깃털은 양지 바른 창가에 매달린 보석처럼 눈부시다. 어느 누구라도 벌새를 보는 순간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욱 놀라운 건 가냘퍼 보이는 벌새가 동물계에서 가장 강인한 동물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에는 330여 종의 벌새가 다양하고 거친 환경에서 잘 자라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 아르헨티나까지, 그리고 미국 애리조나 주의 사막에서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해안까지, 또한 브라질 저지대 산림에서 안데스 산맥의 4500m가 넘는 설선(雪線)까지 널리 퍼져 살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벌새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볼 수 있다.)
“녀석들은 척추동물의 생존이 가능한 한계선에 살고 있습니다. 극한적인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거죠.” 독일 알렉산더 쾨니히 동물연구소와 브렘 재단에서 일하는 조류학자 카를 슈크만이 말한다. 슈크만은 사람이 키우던 벌새가 17년이나 살았던 것을 본 적이 있다. “5~6g밖에 안 나가는 생명체가 그렇게 오랫동안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는 말한다. 일 분에 보통 500번 박동하는(가만히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크랜베리만 한 심장이 45억 번이나 뛴 셈이다. 70세 노인의 평생 심박 수보다 약 두 배 많은 수치다.
그러나 이 작은 새는 살아 있는 동안만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녀석이 죽으면 속이 텅 비고 무른 뼈는 대부분 화석이 되지 않는다. 벌새의 조상이 포함되었을지 모르는 3000만 년 된 새의 화석 더미가 최근에 발견돼 학계가 들썩거린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요즘 벌새처럼 화석 표본 또한 길고 가느다란 부리와 마디로 덮인 짧은 상완골을 가지고 있다. 뼈가 마디로 덮여 있어 어깨 관절에서 날개 뼈를 회전시키면서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화석이 발견된 장소도 놀랍기만 했다. 벌새의 현재 서식지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 남부였던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러한 발견을 통해 그 옛날 벌새가 아메리카 이외 지역에서도 살다가 멸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화석은 벌새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슈크만 같은 회의론자들은 다른 종류의 새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벌새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새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진짜 벌새는 브라질의 동부 산림에서 꽃의 꿀을 놓고 곤충들과 경쟁을 벌이며 진화했다고 슈크만은 말한다. 수천만 년 전 정지 비행 기술을 터득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꽃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나선 것이다.
“녀석은 곤충과 새의 세계 사이에 놓인 다리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에서 벌새의 비행을 연구하는 더그 알출러가 말한다. 알출러는 벌새의 날갯짓을 관찰한 결과 날개 근육을 움직이는 활동전위가 새보다는 곤충과 유사하다는 점을 밝혀 냈다. 이런 까닭에 한 번의 날갯짓으로 그처럼 강력한 힘을 내고 단위 질량당 힘도 척추동물 중 가장 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알출러는 벌새의 신경 경로 속도가 녀석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칼새처럼 아주 날렵한 새에 버금갈 정도로 빠르다는 걸 알아 냈다. “꼬마 프랑켄슈타인 같다고나 할까요, 정말 놀라운 녀석이죠.” 알출러는 말한다.
벌새는 정말로 괴물 같은 녀석이다. 작은 몸집을 감안하면 자연에서 가장 호전적인 놈일지 모른다. “벌새들이 쓰는 말은 100% 욕일 거예요.” 애리조나 남동부 조류관측소의 동물학자 셰리 윌리엄슨은 말한다. 벌새의 공격성은 격렬하게 영역 다툼을 벌이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몇 분마다 꿀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영역 싸움은 피할 수가 없다. 벌새들은 서로 싸움을 걸고 괴롭히면서 경쟁을 벌인다.
싸움은 산 속에서 흔히 일어나며 특히 고도에 따라 생태계가 풍부한 적도 근처의 고산지대에서 자주 관찰된다. 남북으로 뻗은 아메리카 대륙의 산맥은 끝없이 펼쳐진 꽃밭을 품고 있어 벌새들에게 훌륭한 이동 경로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윌리엄슨은 말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 종은 먹이가 부족한 넓은 평지를 건너가는 데 적응하기도 했다. 붉은목벌새는 멕시코에 모여 벌레와 꿀로 배를 가득 채운 다음 미국과 캐나다를 향해 험난한 봄철 이주를 떠난다. 멕시코 만 상공으로 날아오른 녀석들은 20시간 동안 쉬지 않고 800km를 이동해 건너편 해안에 도착한다.
전 세계 벌새 종 가운데 95%가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대 이남에 산다. 에콰도르 키토의 공항을 나서면 뺨에 보라색 물감을 칠한 듯한 푸른귀벌새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길 것이다. 아마존 강 유역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키토의 동쪽에서는 칼부리벌새가 기다란 부리를 들어 올린 채 숲 속을 날아다닌다. 녀석은 체구에 비해 가장 긴 부리를 지닌 새로 전체 몸길이의 반이 넘는 부리를 갖고 있다. 키토 남쪽에 있는 코토팍시 화산의 비탈에서는 에콰도르산벌새가 4500m 지점 상부에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녀석은 밤이 되면 동굴에 들어가 휴면 상태에 빠진다. 굶어 죽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사율을 조절하며 새벽까지 버티는 것이다. 날이 밝아 햇빛에 몸을 녹인 에콰도르산벌새는 원기를 회복해 먹이를 찾아 나선다.
“벌새를 연구하게 되면 녀석에게 홀리지 않을 수 없어요.” 셰리 윌리엄슨은 말한다. “정말로 매력적인 작은 동물입니다. 녀석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이젠 벌새의 피가 아예 내 몸 속에서 흐르는 것처럼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