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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빗겨간 마을

글 : 에이미 탠 사진 : 린 존슨

둥족의 노래엔 천년을 내려온 역사와 삶이 살아 숨쉬고 있고 독특한 문화는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뉘엿뉘엿 해는 지는데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마을 어귀 솟을대문 앞에 이르러 고갯마루 흙바람 길에 올라서니 추수가 한창인 골짜기가 눈에 들어온다. 연둣빛 논뙈기들은 드문드문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검은 지붕들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산허리엔 다랑논이 완두콩 고물을 얹은 시루떡처럼 켜켜이 놓였다.

 

열 살배기 여자애 둘이 달려들더니 덥석 팔짱을 낀다. 그러곤 똑 똑 끊어지는 스타카토 리듬으로 손님맞이 노래를 부르며 삼층 나무집들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돌길을 따라 나를 끌고 간다. 문간에선 머릿수건을 두른 노파들이 우릴 쳐다보고 마오쩌둥 모자를쓴 반백의 촌로 셋이 곰방대를 빨다 말고 고개를 든다. 조무래기 한 무리가 따라붙는다. 지나는 길에 보니 곳간들이 있는데 그 아래 오리들이 노는 연못과나무로 만든 돼지우리가 있다. 어떤 곳간 밑엔 장식장 서너 개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알고 보니 장식장이 아니라 저승으로 가는 배, 즉 관이었다. 이 마을에선 아기가 태어나면 나무를 하나 골라뒀다가 늙으면베서 맞춤관을 주문한다.

 

여기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둥족의 마을 디먼. 구이저우 성의 울창한 산자락 깊숙이 자리잡은 이곳엔 다섯 성씨(姓氏)가 각각 집성촌을 이루며 총528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구이저우 성은 가난하고외진 산골이다. 굽이굽이 고부랑길을 버스 속에서 여덟 시간이나 엉덩방아를 찧으며 와보니 얼마나 외진곳인지 알 만했다. 그나마 있는 도로도 폭우로 흘러내린 토사에 쓸려 곳곳이 유실됐다. 2년 동안 계속된가뭄 끝에 갑자기 홍수가 진 것이다. 올해는 긴 추수기간 내내 날씨가 푹푹 쪘다. 새로 사귄 둥족 친구 하나가 구이저우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했다. ‘사흘 내리 해 보기 힘들고, 평평한 땅 세 평이 귀하고, 은전서 푼이라도 있는 집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1935년 할머니가 한평생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으로 손자를 쓰다듬고 있다. 손자가 쓰고 있는 건 은으로 장식한 전통 모자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나가면서 디먼 마을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크는 아이들이 많다.

 

대장정에 나선 마오쩌둥의 군대도 눅눅한 공기 속에서 구이저우의 가파른 산비탈과 골짜기를 넘으며 이렇게 투덜거렸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디먼에 온 것은 음악에 이끌려서였다. ‘캄’이라는 고유어를 쓰지만 문자가 따로 없는 둥족은 천년의 신비한 역사와 전통을 노래에 담아 전승해왔다.

 

둥족 마을에선 남녀노소 아무나 붙잡고 부탁해도 흔쾌히 노래를 불러준다고 들었다. 과연 소문대로 원없이 들을 수 있었다. 침입자를 물리치는 얘기를 담은 손님맞이 노래, 늙어가는 애환을 담은 곡조, 둥족이 좋아한다는 사랑에 눈먼 연인들에 관한 노래 등등. 어떤 노파는 1950년대 중국 골골마다 울려 퍼졌던 공산당가 ‘동방은 붉다’를 쉴 새 없이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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