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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탐험기

글 : 햄프턴 사이즈

노르웨이의 프리드쇼프 난센은 북극 탐험의 선구자였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공개합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시내에서 여객선을 타고 조금만 가면 나오는 쌀쌀한 피오르드에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오슬로 시에서 바위로 뒤덮인 이곳 뷕되위 반도에 유명한 배들을 위한 일종의 공동묘지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며칠 동안 근사한 박물관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들 박물관에는 고대 바이킹들이 타던 큰 배와 19세기 어선은 물론 토르 헤위에르달(태평양과 대서양을 횡단한 노르웨이 탐험가)의 발사나무(뗏목에 많이 쓰이는 목재) 뗏목인 콘티키 호에 이르는 각종 선박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오슬로의 선박 박물관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안가에 거대한 A자 모양으로 솟아 있는 유리와 금속 골조의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 안에는 1892년에 건조된 튼튼한 목재 스쿠너선(2~4개의 돛대에 세로돛을 단 서양식 범선) 프람 호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한몸에 받으며 잠들어 있다.

 

‘전진’을 의미하는 프람 호는 노르웨이의 오랜 항해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선박이자 극지 탐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선박만 놓고 봐도 기술적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강한 선체는 3년 동안 북극의 빙하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망가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다. 당차고 씩씩한 이름에 걸맞게 프람 호는 종전의 다른 어떤 선박들보다 극점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프람 호의 위대한 탐험을 이끈 것은 두뇌가 명석하고 성미가 까다로운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프리드쇼프 난센이었다. 프람 호 건조를 의뢰했으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북극으로 항해를 떠났던 난센은 지금까지도 노르웨이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비록 오늘날엔 로버트 피어리(1909년 최초로 북극점 도달), 로버트 스콧(1912년 남극에서 사망), 로알 아문센(1911년 최초로 남극점 도달)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난센이야말로 앞서 언급한 탐험가들보다 널리 알려져야 할 사람이다. 그가 바로 현대 북극 탐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다른 탐험가들은 난센의 ‘아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무작정 영광을 좇아 너도나도 탐험에 뛰어들던 당대의 몽상가 무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실력 있는 저술가이자 인기 강연자였던 난센은 일류 동물학자 겸 저명한 정치가로도 두각을 나타낸 팔방미인이었기 때문에 가히 ‘만능 바이킹’이라 불릴 만했다. 최소 5개 국어에 능통했고 사진기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그는 아름다운 지도와 삽화도 남겼다. 과학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서신도 주고받았으며 탐험 중 결정을 내릴 때도 매우 치밀하고 꼼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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